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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결국 semantic quibble 아닌가요?
이덕하
substantive debate에서는 서로 말하는 내용이 다릅니다. 반면 semantic quibble에서는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개념을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바이올로기 님의 생각을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semantic quibble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1. 논의의 편의상 무지막지한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환경이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돌연변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red queen이나 frequency dependent selection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가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전체(genome) Ga로 이루어진 개체 A와 유전체 Gb로 이루어진 개체 B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A의 적합도(fitness) Fa와 B의 적합도 Fb를 따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selfish genetic element가 하나씩 발견되면서 Fa나 Fb는 근사(approximation)로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같은 유전체로 이루어진 같은 개체라 하더라도 locus L1에 있는 유전자 a의 입장에서 본 적합도와 locus L2에 있는 유전자 b의 입장에서 본 적합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력한 drive를 발휘하는 selfish genetic element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매우 큽니다.
개체 선택과 구분되는 유전자 선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 개체 선택 개념이 아니라 유전자 선택 개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전체 Ga로 이루어진 하나의 개체 A의 적합도가 locus에 따라, 유전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2. selfish genetic element에 대한 연구는 엄청나게 축적되었습니다. Burt & Trivers에 따르면 수만 개의 연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야기한 책에서 그 연구들이 요약되었으며 Nature와 Science에 대단한 호평이 실렸습니다.
『Genes in Conflict: the Biology of Selfish Genetic Elements(2006)』, Burt, A. & R. L. Trivers
이 책은 단지 selfish genetic element와 관련된 실증적 연구만 요약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진화 논리에 대해서도 요약하고 있습니다. 사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테마가 있으며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selfish genetic element는 같은 개체에 있는 다른 locus에 있는 유전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gene pool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에 “selfish”라는 단어가 들어가며 어떤 사람은 “outlaw”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locus에 있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selfish genetic element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그래서 selfish genetic element의 “못된” 행동(개체의 번식에 해를 끼치면서 자신은 잘 나가는 것)을 막는 suppressor가 진화할 때가 많다.
3. 만약 바이올로기 님이 selfish genetic element의 존재도 인정하고 그것과 관련된 진화 논리도 받아들인다면 저와 의견이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개체 선택을 서로 다르게 정의할 뿐입니다.
집단 선택 논쟁의 상당 부분은 집단 선택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semantic quibble입니다. 제 느낌으로는 집단 선택의 정의는 대략 10 개 정도나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집단 선택 논쟁을 할 때 쓸데 없는 입씨름을 벌이지 않으려면 정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selfish genetic element와 관련된 Burt & Trivers의 요약을 대체로 받아들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현상도 개체 선택이라고 부르겠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저와 개념을 다르게 정의하시는군요”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4. selfish genetic element와 관련된 현상을 개체 선택이 아닌 유전자 선택(또는 gene’s eye view)이라고 부르는 저명한 진화학자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극소수의 극단파”라고 부르기 힘들다는 것까지 인정하신다면 “누가 주류인가?”를 둘러싼 논쟁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킨스의 생각에 대해서는 좀 오해하신 것 같은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도킨스로부터 시작해서 진화 생물학을 배웠으며 입문자에게는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킨스를 꽤 많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도킨스부터 시작해야만 진화 생물학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킨스는 입문 단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긴 글로 답변드리려고 했는데 만약 바이올로기 님의 생각에 대한 제 추측이 맞다면 이 논쟁은 여기에서 접고 다른 문제로 논쟁하는 것이 더 영양가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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