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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마음의 들꽃 이야기]16. 남도의 향기, 히어리를 찾아서
Bio통신원(푸른마음)
- 세명고등학교 생물과 교사 김태원 -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을 들라고 하면 주저없이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을 든다. 얼음도 채 녹기도 전에 샛노란 꽃을 땅위로 불숙 올리는데 그 꽃이 복수초이다. 복수초는 얼음과 함께 피어난다 해서 얼음새꽃이라고도 하는데, 그 만큼 빨리 피어난다는 뜻일게다. 얼음새꽃이 피어날 즈음에 나뭇가지들은 아직 황량한 겨울잠속에 빠져 있다. 4월초가 되면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들은 이미 씨앗을 달고 다른 식물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 줄 즈음, 나무의 꽃들도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산수유 비슷하게 생긴 생강나무도 야산 언덕배기에서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 즈음 지리산 언저리 그리고 순천 쪽 야산에 고상틱한 노란 꽃이 나무에서 도리깨를 달아 놓은 듯,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달린다. 이름하여 히어리, 히어리? 무슨 영어로 지어진 이름인 것 같다.
[히어리 접사↑]
이 나무는 순천 송광사에서 첨 발견되어 송광납판화라는 이명도 가지고 있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밀랍형의 얇고 쭈굴 쭈굴한 연노란 종이로 여러 겹 곱게 접어놓은 모양이라 납판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작지만 빨간 꽃술이 참으로 매력적인 꽃인데 위 꽃은 빨간 꽃술이 이미 사라지고 없다. 꽃이 핀지 2-3일정도 지났을 것 같다. 그런데 히어리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지? 히어리는 '희다'는 뜻의 하야리, 허여리에서 변형된 이름이라고 하는데, 꽃이 엷은 노란색의 꽃과 초록색의 잎을 가지고 있으니 색깔로는 의미가 없을 듯하고, 그럼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 나무일까?
엉뚱하게도 이 나무는 순천쪽에서 '시오리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길이를 재는 단위로 사용된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시오리 즉 십오리(6km)마다 이 나무를 심어 거리를 표시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오리나무처럼), 이 나무의 학국명은 모 박사께서 그 지역에서 사용했던 시오리나무를 히어리나무로 개칭하여 히어리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히어리, 받침이 없으니 부드럽게 부를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이 나무를 발견할 당시는 한국에만 자생하는 학국특산식물 이였나 보다.
[히어리↑]
학명이 Corylopsis coreana Uyeki 인데, 일본인 식물학자 Uyeki가 최초로 발견하여 coreana라는 종명을 넣었으나 최근 일본에도 이 식물이 자생한다는 보고가 있어 지금은 특산식물에서 제외된 식물이라고 하니,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일본에만 자생하여 일본특산식물로 알려져 있던 식물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 나무가 있어 각광을 받은 나무가 하나 있다. 주걱댕강나무가 바로 그 나무인데, 꽃이 참 아름다워 한번 보면 정신이 혼미할 정도이다.
[주걱댕강나무↑]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기 전엔 주걱댕강나무는 일본특산식물이였다. 우리나라 남쪽에서 이 식물이 발견됨으로써 일본특산식물 하나가 사라진 샘이다. 물론 히어리가 일본에서 발견되어 한국특산에서 제외되었듯이 말이다. 나중에 저 주걱댕강나무에 대해서도 글을 한번 쓸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히어리↑]
아직 다른 나무엔 꽃눈이 형성되기도 전인 이 시기에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히어리가 장관이다. 가느다란 가지마다 가지보다 훨씬 커다란 꽃다발을 주렁주렁 매 단 나무에서 올해도 풍년 농사를 예측해 주고 있다. 그래 무엇이든 풍성하면 보기도 좋다. 저 커다란 나뭇가지에 살갑게 꽃이 몇 개만 피어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그리웁지는 않을 것인즉.
이 히어리는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따뜻한 남쪽에만 있는 꽃으로, 상대적으로 추운 중부지방에는 살지 못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었는데, 경기도 수원 근교의 광교산과 강원도 백운산에서도 이 나무의 군락지가 발견되어, 이 나무의 자생 북방한계선이 중부지방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추운 환경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항 인근 야산에서도 이 꽃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으련만, 때로는 보고 싶은 꽃이 멀리 있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그걸 찾아 떠나는 여행은 더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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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세명고등학교에 부임한지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03년도부터 산행을 하면서 산꽃 들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울릉도, 제주도, 백두산 등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야생화 촬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그 결과 BRIC에 '푸른마음의 들꽃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2013년 5월엔 '꽃따라 벗따라 들꽃산책'이라는 자연과학 수필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cafe 주소 : http://cafe.daum.net/smhs-flower (김태원의 들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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