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새로운 주제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에 연재할 주제는 “줄기세포”입니다. 유전자가위가 사람을 포함한 동물이나 식물의 유전자 수준의 교정을 가능하게 했다면 줄기세포는 세포 수준에서 또는 조직이나 장기 수준에서의 직접적인 치료 또는 교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줄기세포도 어느 날 갑자기 개발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을 여러 과학자들이 피땀 흘리며 연구한 덕분에 좀더 쉽고 정확하게 유도하는 방법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연재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작성하고 싶어서인데 실제로 그렇게 집필하는 것이 가능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2016년 8월 8일 땡칠이닥터 드림
줄기(stem)의 일부만 심어도 완전한 개체로 복구될 수 있는 식물의 놀라운 능력
아래 사진은 필자가 1년 전인 2015년 7월 13일에 집에서 키우던 크레이프 자스민(Crape Jasmine)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너무 무성하게 자라 보기에 좋지 못해 가지치기를 한 다음에 잘라진 가지를 물이 잘 빠지는 흙에다 심어본 사진이다. 잎도 없고 뿌리도 없는 줄기를 그냥 땅에 꽂아 두었을 뿐인데 약 열흘 정도 지났을 때 뿌리가 잘 났는지 잎도 새로 나고 최근엔 향기로운 하얀색 꽃을 피우기까지 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집에 약 10종의 자스민 나무를 키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더운 여름에 주로 피는 크레이프 자스민의 향기는 강하진 않지만 향기가 기품있는 편이다. 열매도 없고 씨도 만들지 않는 이 나무가 지구상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지 끝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의 꽃과 줄기의 강력한 다분화능력 (pluripotent)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필자는 식물의 줄기를 삽목(줄기를 심어 번식시키는 것을 삽목이라 한다- 필자 주)해서 마른 가지 끝 가까운 곳에 새로운 싹이 트고 잎이 새로 나는 것을 보면서 종종 생각에 잠기곤 했다. ‘식물은 어떻게 일부만 심었을 뿐인데 완전히 새로운 개체로 자랄 수 있는 걸까? 왜 사람은 도마뱀처럼 절단된 부위가 새로 재생되지 않는 것일까?, 사람이나 동물이 신경이 손상되었을 때 그 신경 부위를 재생시킬 수 있다면 장애우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등등…
Figure 1. 필자가 2015년 7월 13일에 집에서 키우던 크레이프 자스민(Crape Jasmine)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너무 무성하게 자라 보기에 좋지 못해 가지치기를 한 다음에 잘라진 가지를 물이 잘 빠지는 흙에다 심었던 사진과 최근에 다시 찍은 사진이다. 잎도 없고 뿌리도 없는 줄기를 그냥 땅에 꽂아 두었을 뿐인데 약 열흘 정도 지났을 때 뿌리가 잘 났는지 잎도 새로 나고 최근엔 향기로운 하얀색 꽃을 피우기까지 했다.
줄기만 땅에 꽂아도 새로운 개체로 자라날 수 있는 식물의 능력을 보면서 다른 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세포에게 줄기세포란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포를 연구하는 도구라고 해봐야 겨우 배율 높지 않은 현미경과 끈질긴 관찰밖에 없었던 150년 전에 현미경에서 보이던 특정 세포를 “줄기세포”라고 이름 짓는다는 것은 보통 직관이 아니었다. 최초로 “줄기세포”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150년 전, 독일로 가보자.
줄기세포 (stem cell)라는 용어를 인류 최초로 사용한 과학자 Ernst Haekel (1868년)
줄기를 땅에 꽂았을 때 뿌리가 나는 것처럼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동물 또는 사람에게도 식물의 줄기처럼 어떤 세포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의 세포가 있음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린 과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Ernst Haekel로 독일인 과학자이자 철학가였다.
그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화가에 가까웠다. 그가 남긴 그림들은 1868년에 출간한 원래 그의 저서 “Natural History of Creation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에 잘 나와 있었다. 그의 저서와 과학적 성과들을 조사하다 보니 인터넷으로 그의 150년 전 저서를 모두 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
https://archive.org/details/natrlichesch1868haec 참조). 아쉽게도 책의 내용이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어서 부족한 필자의 독일어 실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운좋게도 Ernst Haekel의 책 내용이 2006년에 발간된 “진화에 대한 그림들과 사기 혐의 (The Pictures of evolution and Charges of fraud)”라는 논문에 일부가 잘 설명되어 있었다 (Hopwood 2006).
Ernst Haekel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독일에 전파시켰으며 훗날 반복발생설(recapitulation)을 주장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복발생설이란 Ernst Haekel이
각 동물의 초기 중기 태아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발생과정에서 진화된 경로를 따라 어류-파충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가설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반복발생설 (recapitulation)이다. 먼저 그가 남긴 그림을 보도록 하자. 필자가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본 것은 1991년 킴볼 생물학 책에서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일반생물학’이라는 한글로 된 책을 교과서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원서였는데 2~3가지 색깔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 책의 앞부분에 Ernst Haeckel의 삽화가 들어 있었다. 각 동물의 발생기 과정을 추적 관찰하던 Ernst Haeckel은
각 동물의 초기 중기 태아의 모습이 닮아도 너무나 닮아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유사성이 진화과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발생과정 중 진화된 경로를 따라 어류-파충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삽화를 그리는 과정 중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을 약간 자신의 주장에 맞게 수정을 가했다고 의심받기도 했고 실제로 그는 사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Hopwood 2006).
다시 줄기세포로 돌아가서 그는 그의 연구에서 2가지 용도로 “줄기 (stem)”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하나는 Figure 6과 같이 모든 생물종이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했다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그림의 이름을 “Stammbäume”이라고 불렀다. 이 독일어는 영어로 “family tree 또는 Stem tree”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최초의 단세포가 모든 생물종의 근원이라는 뜻 또는 수정란(fertilized egg)이 한 생물체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Stammzelle”라는 독일어로 불렀는데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바로 stem cell이다 (Ramalho-Santos and Willenbring 2007).
이는 인류 최초의 공식적인 줄기세포라는 용어의 첫 시작이었고 ‘모든 세포로 분화 가능한 최초의 세포’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150년 전에 발생학 연구를 통해 이러한 자료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을 도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랍다.
다른 세포로 분화되는 능력을 가진 세포를 줄기세포라 명명한 Valentin Häcker (1892년)
Ernst Haekel의 책이 발간되고 약 이십여년 뒤, Valentin Häcker 라는 독일인 과학자는 갑각류의 발생과정을 연구하다가 다른 세포보다 큰 세포를 발견했는데 이 세포가 발생중인 배아의 안쪽으로 이동해서 비대칭적인 세포분열을 통해 난자 등 생식세포 계열 세포가 되거나 또는 중배엽을 이루는 것을 관찰하고 이 큰 세포를 줄기세포라고 명명하였다 (Ramalho-Santos and Willenbring 2007).
오늘날에는 이와 같이 난소에서 난자를 생성할 수 있는 세포들을 줄기세포라고 부르지 않고 원시생식세포 (primordial germ cell) 또는 생식세포 줄기세포 (germline stem cell)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세포단위에서 모든 동물의 시작에 다양한 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줄기”기능을 하는 세포가 있다라는 사실을 추측해냈다는 측면에서 정말 대단한 연구성과가 아닐 수 없다.
EPILOGUE
유전자가위 연재를 마치고 어떤 연재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줄기세포는 관심은 많이 받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주제가 까다롭고 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주제를 선택함에 있어 주저하게 되었다. 처음 유전자가위 연재를 할 때도 5~6편을 계획하고 원고 작성을 시작했는데 좀더 쉽게 쓰려고 풀어 쓰다 보니 20편을 채우게 되었다. 이번 줄기세포 연재도 “바이오 신기술”의 한 종류로 과거부터 쭉 리뷰하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다만 전편 연재 “유전자 가위”때 보여주셨던 관심과 또 전문가 분들의 조언으로 방향을 수정해 가면서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는 연재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다음 연재에서는 조혈과정에서의 줄기세포에 대한 초기 역사에 대해서 좀더 살펴볼 예정이다.
참고문헌
Haeckel, E. (1868).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 Gemeinverständliche wissenschaftliche Vorträge über die Entwickelungslehre im Allgemeinen und diejenige von Darwin, Göthe und Lamarck im Besonderen, über die Anwendung derselben auf den Ursprung des Menschen und andern damit zusammenhängende Gründfragen der Natur-Wissenschaft. Mit Tafeln, Holzschnitten, systematischen und genealogischen Tabellen, Gg. Reimer.
Hopwood, N. (2006). "Pictures of evolution and charges of fraud." Isis 97(2): 260-301.
Ramalho-Santos, M. and H. Willenbring (2007). "On the origin of the term “stem cell”." Cell stem cell 1(1): 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