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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에 관심이 있는가?
오피니언 구본경 (2017-08-17)

구본경(University of Cambridge)

모든 나라가 연구를 할 필요는 없으며, 어떤 국가에게 과학은 필수이기 보다는 일종의 취미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제대로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식의 '과학=발전원동력'은 한계가 있기에 국민들이 과학에 가지는 관심과 국민들의 과학적 소양이 높아져야 한다. 한국 과학의 문제는 정부에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에 있다고 본다. 더 추가하자면, 종교/K-POP/식탐도 원인이 된다. TV를 통해 만들어진 일률적인 대중문화가 너무 소비하기 쉽고 즐기기 쉽게 되어 있어, 깊이 있는 철학과 과학을 멀리하거나 피하게 만든다. 이 또한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국민들이 가져보길 기대한다. 사실 과학의 원동력은 호기심, 특히 세상과 삶에 대한 의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왜 과학을 잘 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이 나를 영국으로 향하게 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며, 그들이 과학을 소비하는 태도와 방식을 몸소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에서 많은 국민들이 신앙을 갖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이 나라는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과학적 사고와 철학으로 무장한 이들이 캠브리지와 옥스퍼드라는 두 도시에서 과학이 우리가 삶과 세상에 가지는 많은 질문을 종교를 대신해서 대답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는 또한 비판적인 사고와 환원주의적인 접근방식이 세상과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나아가 더 많은 흥미로운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국은 과학을 하는 단체들에게 국민들의 기부가 많은 나라이다. 교회나 절에 가서 내는 성금처럼 과학자들에게도 주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삶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궁금증을 종교인들이 풀어 주었지만, 지금은 과학자들이 해결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국민들이 직접 과학자들에게 후원해 주는 펀딩의 규모가 정부출연연구비와 견줄만한 나라이니,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영국 과학자에게는 산업적인 활용성보다는 삶과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고, 인간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국민들에게서 받은 의무이기 때문에 기초과학의 힘이 인구대비 가장 강력한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과학자는 행복하기 어렵다. 우리는 대부분 산업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주로 받고 있으며, 삶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따위는 아무짝에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국민들은 기복신앙에 젖어 있어, 신(이라고 쓰고 종교인이라고 읽음)에게 바치는 돈이 자신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이것의 불합리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당연히 터부시되고, 심지어 이렇게 얻은 수입에 대해 세금을 내는 것조차 일부에선 거부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도 우리는 잊고 산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결국에 죽는다.' '인간은 우주에서 외로운 존재이다.'라는 문장들은 듣기 싫거나 무의미한 소리일 뿐이고, 오직 그날의 화려함과 즐거움을 쫓으며 우리의 유한성을 잊고자 발버둥 친다. 가장 큰 가치는 돈에 있으며, 이에 따라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자 경쟁을 하고, 많은 청소년들이 K-POP스타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사회의 지식인들도 ‘돈이 필요하면 사업을 해서 벌고, 그 돈으로 연구도 해라’라고 말한다. 돈을 위한 연구가 연구를 위해 돈을 마련해주는 구조에서 우리가 기초과학과 삶과 세상에 대한 근원적 호기심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21세기의 계몽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기복신앙이 가지는 허무함, 자본을 향한 욕망의 허무함, 화려하고 밝은 인생으로 가려지지 않는 죽음과 절대적인 외로움을 국민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을까? 연구비와 보고서에 쫓기는 한국의 과학자들조차 과학을 한다는 것의 근원적인 의미를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을까?

나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다수는 아니지만, 과학을 제대로 즐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국민들이 읽는 교양도서 중에 과학을 바탕으로 신앙이 불필요한 인간상을 제시하는 책들도 있기 때문이다. 여유와 풍요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자본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이 다가온다. 우리 과학자들은 그렇게 깨어나는 국민들을 위해서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한국의 21세기 계몽의 시작은 개인과학재단의 등장과 국민들과 함께 하는 연구비조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과학을 잘 소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어쩌면 정부의 과학관련 정책을 한두 개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집에 돌아가서 가족/친지들에게 물어보시라. 과학을 위해서 본인이 100만원이라는 금액을 기꺼이 기부할 수 있는지, 과학으로 사기 치는 무리에게 말고, 이름 없는 무명과학자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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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jys0818  (2017-08-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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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쌓인 곳에서는 호기심을 만족 시켜주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내놓는 부자들과 기업들이 많아요. 가족 친지들 100만원 모아서는 어림도 없어요. 과학은 까르띠에 시계랑 같은거에요. 사치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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