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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올리버 색스, 베토벤, 그리고 『의식의 강(江)』
종합 양병찬 (2017-10-30)
올리버가 살아생전에 보지 못한 마지막 과학 에세이 『의식의 강』이 탄생하는 현장에 있었던 빌 헤이스가 들려주는, 죽음을 앞둔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순간들

Oliver Sacks contemplating a Bach piece he’d been learning to play
Oliver Sacks contemplating a Bach piece he’d been learning to play. / @ Bill Hayes

나는 올리버 색스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건 내가 그를 사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저항할 수 없는 피사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성한 턱수염, 안경 속에서 반짝이는 눈망울, 다정다감한 손, 벌어진 치아를 드러내는 해맑은 미소, 팔십대에 들어섰는데도 장거리를 거뜬히 헤엄칠 수 있는 근육질 몸매, ...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는 평소와 사뭇 다른 점이 있었다. 사진 속의 그는 내 눈을 응시하지 않고, 떠받친 손에 머리를 의지한 채, 그 동안 부단히 연습해 온 바흐의 피아노곡 악보를 분석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나는 이틀 후 사진을 인화하여 그에게 보여줬다. 그는 사진이 별로 잘 나오지 않았다고 여기면서도, 그 사진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 사진이 『옥스퍼드 음악 안내서』 1938년판에 수록된 '나이 든 베토벤의 판화'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소년 시절 좋아하는 숙모에게 선물받은 것인데, 그는 책의 내용을 모두 암기할 뿐만 아니라 삽화와 설명까지도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베토벤의 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돈되지 않은 방에, 나이 든 작곡가가 한 명 앉아있었어. 병색이 완연하지만, 불굴의 의지가 엿보였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병색이 완연하지만, 불굴의 의지가 엿보였지"라는 그의 음성이 메아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심신 상태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2015년 8월 중순, 올리버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을 때였다. 7개월 전 진단받은 전이성 암 때문에, 어쩌면 곧 죽을 수도 있었다. 그는 쇠약하고, 구역질을 했으며, 거의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매우 또렷했다. 그날 오후, 그 사진에 나온 바로 그 책상에서, 올리버는 나와 마주앉아 마지막 저서가 될 책의 목차를 불러줬다.

나는 그 순간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오후 날씨는 칙칙하고 습기가 차서 왠지 서글펐는데, 올리버가 갑자기 원기를 회복했다. 마지막 저서를 정리한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의 '끔찍한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가운 기분전환 거리였기 때문이리라. 올리버에게 '지루함'이란 그가 그 동안 견뎌온 '불편함'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기력이 없어서 더 이상 긴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수영도 산보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밤잠은 물론 낮잠도 잘 수 없었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정신만큼은 멀쩡하고 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의식의 강(The River of Consciousness)』

올리버의 마지막 저서 『의식의 강』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가 즉석에서 떠올린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신중히 생각해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제야 비로소 책을 내기로 마음먹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를 비롯한 몇 명의 편집자들이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기를 바랐다.

그는 이 책이 기존의 신경학적 사례연구나 비망록과 구별되는, 과학 에세이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쓴 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세이 몇 편을 손수 골랐다. (특히 "잘못듣기"의 경우, 그가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스>에 연재한 여섯 편의 에세이 중 하나였다.) 그가 1장과 2장으로 지목한 것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찰스 다윈에 관한 에세이로, 다윈의 독특한 연구주제를 다룬 것이 돋보인다. 하나는 꽃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렁이에 관한 것인데(아이러니하게도, 지렁이에 관한 책은 다윈의 마지막 저서이다), 둘 다 흥미로우며 다윈에 대한 올리버의 이해도가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케 한다.

다윈은 올리버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올리버가 다윈을 얼마나 찬미했는지를 설명하는 있어서, '다윈은 올리버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다윈과 올리버의 관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1장에 나온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어보면, 올리버가 다윈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윈은 종종 ‘신성한 의미나 목적을 배제함으로써, 세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 (그러나) 진화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심오한 의미와 만족감을 제공했으며, 그것은 신의 계획에 대한 믿음이 지금껏 제공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베일에 가려졌던 세상에는 이제 투명한 유리창이 생겼고, 우리는 그 유리창을 통해 생명의 역사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진화는 지금과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 즉 공룡이 아직도 지구를 배회할 수 있고, 인간이 아직 진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삶은 더욱 소중하고 경이로운 현재진행형 모험(ongoing adventure)처럼 느껴졌다.


올리버는 자신의 삶과 경력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봤다. 즉, "예측할 수도 없고 미리 정해지지도 않았으며, 예기치 않은 사건과 새로운 경험에 민감한 것"으로 말이다. 그는 예기치 않은 사건과 새로운 경험을 '드러내놓고 허기진 듯' 받아들였다. 물론 그는 자신이 특정한 지적·창의적 재능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연계에서 으레 그렇듯) 행운의 여신이 다행스럽게도 자신에게 종종 미소를 지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예컨대, 낯선 신경장애 환자를 다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괴상망측한 제목의 책이 1980년대 중반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올리버 색스 박사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 할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 역시 자신의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후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진정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참조)

2년 2개월 전인 2015년 8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올리버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유고집에 대한 ‘설계도’를 완성했다. 자신이 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는 『의식의 강』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것은 이 책에 수록된 열 편의 에세이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랜 친구이자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자인 밥 실버스에게 이 책을 헌정했다. 올리버는 실버스에게 편지를 보내 이 소식을 전했고, 며칠 후 애정 어린 답장을 받았다. 실버스와의 서신 왕래를 끝으로, 그는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느낀 듯했다. (실버스는 올해 세상을 떠났다.)

올리버는 마지막 며칠 동안 자택에 머물며 밤낮으로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口述)하며 소일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절친한 친구 몇 명이 돌아가면서 그가 좋아하는 책들을 크게 읽어주는 소리를 들었다.

Oliver Sacks swimming in Iceland
Oliver Sacks swimming in Iceland. / @ Bill Hayes

※ 필자 빌 헤이스는 『인섬니악 시티』와 곧 발간되는 사진집 『How New York Breaks Your Heart』의 저자다.

※ 출처: https://www.nytimes.com/2017/10/24/opinion/oliver-sacks-a-composer-and-his-last-work.html?smid=fb-share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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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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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쀼쀼  (2017-1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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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 읽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항상 그렇듯 좋은 번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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