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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올리버 색스와 함께 ‘낱말의 호수’에서 수영을
종합 양병찬 (2018-09-03)

고인이 된 올리버 색스의 지극한 '낱말사랑'은 특유의 생동감을 내뿜으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NYT에 올리버 색스 서거 3주기를 추모하는 칼럼을 기고한 필자 빌 헤이스는 『인섬니악 시티』의 저자다. 『인섬니악 시티』는 '저자의 뉴욕 생활'과 '올리버 색스와 6년간 나눈 교감'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회고록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신경학자 겸 저술가 올리버 색스는 다방면에 두루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중 몇 가지를 꼽아보면 양치식물, 두족류(cephalopod), 모터사이클, 광물, 수영, 훈제연어, 바흐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유별난 낱말 사랑love of words에 견줄 수는 없었다.

【사진 1】 젊은 날의 초상

스물여덟 살 적인 1961년 뉴욕에서 촬영한 사진. 당시 청년 올리버는 바이커, 약쟁이, 근육맨, 그리고 과학도였다

올리버가 낱말을 사랑했다는 사연은,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저술들(예컨대, 『깨어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에서 보석 같은 언어를 구사했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비록 책 쓸 일이 없더라도, 올리버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거대한 사전과 돋보기를 지참했던 괴짜였다. 어원 찾기에서 환희를 느꼈고, 동의어/반의어, 속어, 비속어, 회문(예: 소주만병만주소), 해부학 용어, 신조어를 좋아했지만, 원칙적으로 축약어에는 반대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동형이의(homograph), 동음이의(homonym), 동음이자(homophone)의 엄밀한 차이를 분석하며 마냥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H'자가 들어가는 세 낱말들을 독특한 영국식 억양으로 소리 내어 읽어주며 희희낙락했다.

"나를 깜놀하게 만드는 낱말이 하루에 하나씩은 꼭 나온다니까." 언젠가 불현듯 낱말 하나를 떠올린 올리버가 헤벌쭉 웃으며 중얼거린 말이다. 그는 종종 수영을 즐겼는데, 배영을 하다가 문득 아이디어나 구절이 떠오르면 수영장 가장자리나 발판으로 직행하여 종이에 적어놓곤 했다. 곧 개봉될 댐프시 라이스 감독의 멋진 다큐멘터리 영화 <올리버 색스의 생동하는 마음>(참고 1)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처럼 말이다.

【애니메이션】‘낱말의 호수’에서 헤엄쳤던 올리버 색스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 수년 동안 늘 그래왔던 것처럼 - 자신이 읽는 책 귀퉁이 여백에 생각과 아이디어를 빼곡히 적어 넣었다.

【사진 2】 올리버 색스의 독서습관
올리버 색스가 읽었던 노암 촘스키의 『데카르트 언어학』. 그는 떠오르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책 귀퉁이에 수시로 적어 넣었다.

올리버와 교감을 나누던 6년 동안, 나는 종종 그를 '걸어 다니는 OED(<옥스퍼드 영어사전>)'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단어의 스펠링과 정의를 매우 정확하게 읊조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비범한 어휘력에 전혀 우쭐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날 때는 OED 20권 전집이나 <체임버 사전>을 찾아 분명히 확인하고 넘어갔으니 말이다. <체임버 사전>은 아홉 번째 생일날 가장 좋아하는 이모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OED보다 훨씬 작지만 알차고 특색 있는 영어사전이었다.

올리버는 낱말을 워낙 사랑한 나머지 낱말에 관한 꿈을 자주 꿨고, 때로는 꿈속에서 듣도 보도 못한 낱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나는 6년 전 어느 날 아침, 그가 주방의 화이트보드에 적어놓은 구절 하나를 발견했다. "새벽 다섯 시, 구름증(Nepholopsia)."

"저게 대체 무슨 소리죠?" 나는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올리버는 히죽 웃고는 전날 밤 꾼 꿈을 자세히 말해줬다. 어느 외계 행성에 꼼짝없이 갇혔는데, 의인화된 구름(anthropomorphic cloud)이 위협적인 태도로 돌변하더니, 자신이 몰던 랜드로버 차량을 난폭하게 뒤집어엎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그런 꿈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구름에 관한 악몽 하나 추가!"라고 덧붙였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뜨자마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적어둔 것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가에게 자신의 꿈을 보고하곤 했다.) 그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구름증이란 '구름을 본다'는 뜻도 되고, '구름에 포위된다'는 뜻도 돼." 그 순간 그가 이맛살이 찌푸린 것으로 보아,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듯했다. 그런 경우에는 잠시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믿을 만한 사전에서 찾아봐야겠군." 그래서 우리는 곧장 OED 전집이 꽂혀있는 서재로 달려갔다. (독실한 무신론자인 올리버는 종종 OED를 '나의 바이블'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OED에서 구름학(nephology: 구름을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하며, 구름을 뜻하는 그리스어 nephos에서 유래함)의 파생어를 여럿 발견했지만, '구름증'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구름증'이란 언어감각이 뛰어난 그가 구름학의 어근(Nephol)에 옵시아(opsia)라는 접미어를 붙여 지어낸 단어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한바탕 웃었지만, 사실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례로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도 올리버가 만든 말이다. 그것은 '음악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뜻하며, 그가 2007년 발간한 책의 제목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는 '음악혐오증'을 뜻하는 뮤지코포비아(musicophobia)라는 용어가 일찌감치 영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뮤지코포비아가 자신의 발명을 칭찬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자기한테도 뮤지코필리아라는 어엿한 반의어가 생겼으니 얼마나 흐뭇하겠어?")

2009년 봄 뉴욕으로 갓 이사 온 내게 올리버가 한 충고는, 그 특유의 지극한 낱말사랑(올리버 식으로 말하면 '어원사랑'을 뜻하는 에티모필리아(etymophilia)라고 할 수 있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올리버의 낱말사랑은 '글쓰기사랑'과 일맥상통했으며, 그는 글쓰기를 사고의 한 형태(a form of thinking)로 간주했다. 그는 내게 "일기를 꼭 쓰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는데, 내게는 그게 충고가 아니라 일종의 명령으로 들렸다. 나는 그의 충고를 즉석에서 받아들여 “일기를 꼭 쓰자. 올리버”라는 말을 허드레 종이에 적어뒀고, 지금까지도 그 종이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십대 이후 일기를 전혀 쓰지 않았지만, 뉴욕 생활에서 느낀 점과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도저히 흘려보낼 수 없었던) 올리버의 말을 시간 순서대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올리버의 말은 내 일기장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였다. 한마디로 그는 일상 자체가 어록(語錄)인 사람이었다.

나의 "뉴욕 일기"는 해가 갈수록 두꺼워졌지만, 내가 '나의 뉴욕 생활'과 '올리버와 나눈 교감'에 대한 회고록을 집필하기로 결정할 때까지 두 번 다시 읽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게 나의 기억을 되살리는 촉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나는 다시 펼쳐든 일기장에서 진정으로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내가 집필하고자 했던 책의 일부가 이미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올리버와 내가 함께 나눴던 수많은 몸짓들과 긴 대화들이, 언젠가 내가 다시 펼쳐 들여다볼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올리버는 살아생전에 그 책 - 『인섬니악 시티』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단언하건대, 그는 그 책이 내 일기장을 모태로 하여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자신이 저술한 많은 에세이, 논문, 저서의 아이디어도 그가 손 글씨로 쓴 일기장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올리버가 세상을 떠난 2015년 8월 30(참고 2, 참고 3)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가 했던 많은 말들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며 나를 미소 짓게 하고 감동시킨다. 예컨대 말기암 진단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그는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지적·창의적·비판적·연상적인 글쓰기를 통해 '지금 이 시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숙고하는 것이야." 그때는 밑도 끝도 없는 말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나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영원히 잊히지 않는 말이 되었다.

【동영상】 올리버 색스의 책상

☞ 한글자막이 달린 동영상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http://blog.naver.com/psychosabana/220390056387

올리버의 말을 들을 때, 나는 그게 나 한 사람만을 위한 말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것은 올리버 색스만큼 낱말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사진 3】 올리버 색스의 독서습관

올리버 색스가 1957년 읽었던, 로렌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


※ 참고문헌
1. http://theanimatedmindofoliversacks.com/
2. https://www.nytimes.com/2015/08/31/science/oliver-sacks-dies-at-82-neurologist-and-author-explored-the-brains-quirks.html
3. /myboard/read.php?Board=news&id=264293&SOURCE=6

※ 출처: 뉴욕타임스 2018년 8월 29일 https://www.nytimes.com/2018/08/29/opinion/oliver-sacks-the-man-who-loved-word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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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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