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번가 작은 카페 창가에는 동그란 안경을 낀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는 한 노인이 있다. 그는 익숙한 7 번가의 냄새를, 그 7 번가에서 마주쳤던 누군가를, 그 7 번가에서 마셨던 커피 한잔을, 그 7번가에서 맞았던 빗방울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의 뇌에서는 의식의 성찰, 기억, 연상의 능동적이고 선택적인 정보 제공이 이미 이루어졌고, 7번가를 바라보는 그의 지각에 영향을 주었다. ‘올리버 색스’는 그의 마지막 저서 [의식의 강]에서 때로는 강물처럼, 때로는 영화 필름처럼 흐르는 그의 의식을 통해 평범한 7번가가 아닌, ‘올리버 색스’만의 7번가를 만들어냈다.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 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신경과 의사로서 그가 써왔던 글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자연을 자연으로 그대로 바라보는 그 만의 통찰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감정이나 주관이 배제되어있는, 그러나 섬세한 관찰, 시대를 넘어선 문헌 조사와 인간애를 담고 있는 그의 가슴을 통해 그의 손끝으로 완성되는 글들은 그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훌륭한 관찰자가 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활동적인 이론가가 될 수 없다.”
그의 마지막 책의 처음은 다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다윈을 좋아한 이유는 어쩌면 다윈의 관찰자적인 탐구과정이 의사로서의 자신의 삶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학자들의 식물을 확인하고, 분류, 명명하는 과정과는 달리 식물의 구조와 행태를 관찰하고 팩트 what 뿐만 아닌, 과정 how과 원인 why을 찾아가는 탐구 과학자의 길을 걸었던 다윈은 진화와 자연선택의 강력한 증거들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지향성이 없는 변화는 영겁의 세월을 통해 이 세상에 엄청나게 풍부하고 다양한 존재를 만들어 냈으며, 색스는 이 진화라는 힘의 중독성을 찬양한다. 다윈에게 생명나무(Tree of Life)가 있다면 색스에게는 진화라는 ‘투명한 유리창’이 생명의 역사를 바라보는 도구가 되었다. 중단되지 않고 반복되지 않으며 후진하지 않는 진화는 삶이 더 소중하고 경이로운 현재 진행형 모험 (Ongoing adventure (glorious accident))임을 증명해준다.
오랫동안 기억과 의식에 대한 연구를 했던 그는 이 책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기억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던 프로이트를 선택했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프로이트는 무려 20년 동안 신경학자 겸 해부학자로 살았다. 그에게 기억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고 평생 동안 재조직되는 과정’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층위화 과정을 통해 탄생하며, 기억 흔적의 형태로 존재하다 시시때때로 새로운 환경에 알맞도록 재배열되는 과정이며, 이는 개인의 정체성 형성의 핵심이며, 지속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구성된다”
색스는 기억이란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기억되었던 ‘2차 기억’은 언어적 기술을 이미지로 번역해 그의 뇌에 1차 기억으로 각인되는 오류였다. 이러한 인간의 오류를 범하기도, 취약하기도, 불완전하기도 한 기억은 반대로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해 자신의 1차 기억으로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힘, 그 힘은 인간이 함께 공동의 뜻과 보편적인 지식 연방을 구성하게 해 준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매우 위협적이거나 혐오스러워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접근하는 것이 거부된다.” 프로이트
색스는 과학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예외적인 것에 주목하지 못하고 망각과 무시로 어쩌면 보물 같은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무시되는 것이 과학계의 암점이다. 이 과학계의 암점은 과학자들의 미성숙뿐만 아닌, 지식 상실, 통찰력 망각, 퇴행을 통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즉,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 공간과 범주를 만든 후, 새로운 아이디어를 완전하고 안정적인 의식 속에 집어넣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 과정은 과학자들 간의 우호적인 경쟁과 수용을 통해 깨끗한 과학 clean science으로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과학은 그가 찬양하는 생명의 진화사와 많이 닮았다. 분자생물학, 양자물리학, 신경과학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려 본다면, 과연 그 역사가 동일하게 반복되어질 수 있을까? 갑자기 폭발한 발견으로 과학의 모습이 바뀌고, 장기간에 걸친 공고화기와 정체기를 거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은 과학은 필연적 과정이 아닌 극단적인 우연의 연속임을 일깨워준다.
“만약 지구 상에서 생명의 진화사를 재방송한다면, 본방송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 책이 색스가 직접 참여한 마지막 책임을 기억한다면, 10편의 글들을 관통하는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저서와 글들을 남겼어도 다시 한번 강조하고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가장 알고 싶었던 인간의 뇌와 의식에 대한 것이었음을,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는 것처럼, 그의 의식이 삶의 끝을 향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N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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