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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많은 대학원생의 피땀눈물] COVID-19를 바라보는 대학원생의 자세
Bio통신원(변서현)
#1. 1월 20일에 국내 첫 확진 환자가 발생했고, [1] 설 연휴가 지났다. 확진 환자가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연휴 동안 공항을 오갔더니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혹시나 싶어서 연구실에서 마스크 구매를 담당하는 후배에게 재고 확인을 부탁했다. 다행히 큰 박스 하나가 남아있었다. 마스크가 없으면 실험에 차질이 생긴다. 없어도 가능은 하겠지만, 쥐 털을 잘못 들이마시면 알러지에 걸릴 수도 있다.
#2. 2월 20일. 갑자기 대구를 중심으로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더니, 대구에서 1시간 반 거리인 포항에서 첫 확진 환자가 나왔다. [2] 하필 연구실에서 차로 5분 밖에 안 걸리는, 연구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이 확진 환자의 동선에 포함되었다. 어…… 음…… 어떡하지 이거↗?
#3. 2월 23일. 결국 캠퍼스 안에 확진 환자가 나왔다. 일요일이었는데, 다음날인 2월 24일 하루동안 ‘휴교’라는 공지를 받았다. [3] 헐? 내일 컬쳐 마무리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대학원생도 출입을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교수님의 허가와 책임 아래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휴교 조치는 하루 연장되어 25일까지 이루어졌다.)
#4. 원래는 월요일에 세포 배양을 끝내고 분석은 화요일에 하려고 했지만, 최대한 캠퍼스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월요일에 잠깐 연구실에 나와 빠르게 모든 실험을 마치고 나왔다. 필자가 있는 생명공학연구센터 건물은 비어 있는 곳이 많이 보였는데, 다른 학과의 연구실에는 평소와 같이 나와있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심지어는 교내 게시판에 출근을 강요당했다는 대학원생의 글이 올라와 기사화되기도 했다. [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COVID-19, 코로나19) 확산의 중심인 대구/경북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니, 포항의 대학원생들은 예상치 못했던 ‘휴교’까지 경험했다. (지진도 겪어본 동네라서 웬만한 재난에는 무디게 반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무서운 건 똑같다.) 많은 세미나와 워크샵들이 취소되었고, 다른 연구실에서는 마스크 주문을 못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필자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은 꽤나 일찍부터 출입구와 엘리베이터에 에탄올 분무기가 비치되었는데, (실험실에서 보는 그 분무기가 맞다.) 그때부터 엘리베이터의 층 버튼들은 항상 에탄올에 젖어 있었다. 그 때문에 SARS-CoV-2는 연구센터 입구에서 이미 소독 당해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대학원생 친구들끼리 모여서 저녁을 먹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코로나19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모였기 때문인지 대화 주제가 공포나 불안, 영화적인 상상들보다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흘러간다. 우리 또한 현장에 있지 않기 때문에 “검체 채취는 어떻게 하는 걸까?”, “바이러스 DNA는 어떻게 뽑지?”, “양성 판정은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질문들이 오간다. 그러면 대화 중에 인터넷을 뒤져서 바로 그 방법을 찾아낸다. 그러고는, “viral DNA prep kit만 있으면 되겠는데?”, “이미 NCBI에 whole sequence 올라와 있고, PCR primer도 다 나와 있대!”라는 대화가 오가더니 결국에는 “Primer만 주문하면 우리가 검사할 수 있겠는데.” “PCR은 내가 돌릴게, 검체 체취는 누가 할래?”의 경지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 대화는 그저 '대화'일 뿐, 절대 따라해서는 안된다. 바이러스의 검체 및 바이러스 유래 물질에 대한 실험은 생물안전등급에 따라 허가된 실험실에서 안전 보호 장비를 충분히 갖춘 후 진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의심 환자의 코와 입 안에서 비말을 얻고, 침과 바이러스가 뒤섞여 있을 샘플에서 DNA를 분리해 PCR을 돌리는 과정이 어찌 쉽겠는가. 손을 움직이는 것은 쉬울지 언정 그 마음가짐은 한없이 무거울 것이었다. 특히 하루 수천 건이라는 세계 최고의 진단검사 역량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연구원들은 지금 밤을 새워가며 PCR을 돌리고 있다. 그 와중에 샘플이 섞이면 안되고, False positive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수 나노그램의 DNA로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니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실험은 실패할 수 있지만 진단검사는 실패할 수 없다. 언론 기사에서 연구원들이 파이펫과 PCR 튜브를 들고 검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 행위가 얼마나 부담되는 일인지 알고 있는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너무나 안쓰러울 때가 많다.
그러면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의무는 아니지만, 일반인들보다 관련 지식을 조금이나마 더 아는 사람이니까 이 혼란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필자는 특히 면역학 전공이다 보니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이 ‘의사 비슷한 애’ 취급을 하실 때가 많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 바이러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감염되면 어떻게 되는건지,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쉽고 정확하게 설명해드리는 것이 필자의 역할이었다. 어른들이 카톡으로 받아오는 가짜뉴스를 팩트 체크해드리고, 우리나라가 진단검사를 이렇게 많이 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비록 바이러스나 면역학 전공은 아니더라도 생명과학 전공 대학원생은 배경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어 쏟아지는 정보들을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당장은 일개 대학원생이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정부의 조치에 잘 협조하는 것 밖에는 없지만 우리가 연구하는 내용들이 수십 년 뒤 또 다른 병원체의 대유행이 다가올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과학 관련 SNS에서 주목받은 한 트윗이 있었다. 미국 Scripps Institute에서 감염병 연구를 하는 Kristian G. Andersen 박사의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5]
중국에서 감염병이 발견된 지 정확히 1주일만에 바이러스의 동정과 염기서열 분석, 유사 바이러스 서열 분석, 진단법 개발, 혈청 분리, 바이러스 분리,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에 있는 수용체 확인까지 모두 해낸 것이다. SARS나 MERS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엄청난 속도다. 눈부시게 발전한 염기서열 분석기술, 진단키트의 발달, 바이러스학과 면역학의 발전이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 소리 없는 성장 속에는 선배 대학원생을 포함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감염병의 등장과 함께 밤을 새워 데이터를 뽑아냈을 동료 대학원생들과 포닥들, 연구원들이 있을 것이다. 이 트윗을 보면서 어렸을 때 꾸었던 ‘인류에 기여하는 과학자’의 꿈을 다시 떠올렸던 것도 같다.
당장은 비록 스스로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작은 연구 하나하나가 지금 같은 위기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실험실에 있으면서 경험한 재난이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작은 희망을 가지고, 불안한 뉴스들과 쉴 새 없이 울리는 재난문자들 사이에서 침착하게 할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의료진과 정신없이 PCR을 돌리고 있을 연구원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참고문헌>
[1] 연합뉴스, <국내서 '우한 폐렴' 확진자 1명 발생…위기경보 '주의'로 상향(종합)>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11346398&date=20200120&type=1&rankingSectionId=102&rankingSeq=20 (2020-01-20)
[2] 경북매일, <포항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38978 (2020-02-21)
[3] 포항공과대학교, < [총장 메시지] 친애하는 포스텍 가족 여러분께>
http://www.postech.ac.kr/%ec%b9%9c%ec%95%a0%ed%95%98%eb%8a%94-%ed%8f%ac%ec%8a%a4%ed%85%8d-%ea%b0%80%ec%a1%b1-%ec%97%ac%eb%9f%ac%eb%b6%84%ea%bb%98/?pageds=1&k=&c= (2020-02-23)
[4] 동아일보, <코로나19로 휴교해도 대학원생은 출근 요구 논란…“교수 갑질 끊어야” >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226/99890540/1 (2020-02-26)
[5] 트위터, Kristian G. Andersen (@K_G_Andersen)
https://twitter.com/K_G_And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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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으로 이미 출판된 지식이 아닌, 지식이 만들어지는 연구의 과정을 현장의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필자가 경험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 연구자들 간의 대화 등을 소재로 한국의 연구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작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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