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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많은 대학원생의 피땀눈물] 외국인을 위한 학교는 없다
Bio통신원(변서현)
(학생은 이렇게나 다양한데, 학교는.
https://www.thecowl.com/opinion/develop-pcs-diversity-proficiency-students-require-more-knowledge-on-social-issues)
4년 전쯤 일이다. 연구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학과에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학과 행정팀에서 연락이 왔다. ‘외국인 학생들 것은 주변 한국인 학생들이 같이 해서 내주세요.’ 확인서를 발급받는 사이트가 한국어로만 되어 있으니 일일이 통역해 주고 공인인증서까지 받아 대신 프린트해 주어야 한다. Bilingual Campus를 표방하고 수많은 외국인 대학원생의 입학을 허가한 학과의 행정팀이 왜 이 일을 한국인 학생들에게 맡기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행정팀 직원과 전화를 붙잡고 대판 싸웠다. 그 직원은 “다른 연구실은 다 알아서 잘 제출하는데 왜 학생만 그렇게 열을 내세요?”라고 하더니 결국은 “그럼 학생네 연구실만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답을 받았다.
이후에도 대학의 여러 행정적 절차에서 외국인 학생에게 필요한 일을 한국인 학생에게 맡기는 모습이 보이면 바로 담당자한테 연락해 시정을 요구했었다. 학과에서 제출하라고 하는 다른 서류도 한국인 학생의 도움을 당연하듯 명시해 놓으면서 필요한 양식도 HWP로 보내는 바람에 한국어와 영어로 병기하고 파일은 PDF나 WORD로 다시 보내 달라고 했고, 안전교육 미수강시 페널티에 대한 내용을 한국어로만 공지했길래 이것도 마찬가지로 전화를 걸어 영어로 된 공지를 한 번 더 해달라고 했다. (필자의 대학은 7월 말까지인 안전교육을 6월 말까지 수강하지 않으면 연구실이 있는 건물의 출입권한을 박탈하는 규정이 있다.) 이렇게 보이는 대로 바꿔보려고 하고는 있지만, 고쳐지지 않은 부분은 너무나 많다. 학내 안전관리 시스템에 ‘안전교육’ 관련 내용만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있고, 위험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영어로 되어 있지 않길래 담당자에게 문의했지만 ‘외국인은 MSDS를 볼 일이 별로 없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온 적이 있고, 동물실험을 하는 학생이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동물실험계획서는 영어로 작성했다간 심사가 무기한 딜레이되고 만다. 어느 날은 학과에서 대학원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행사를 하는데 외국인이 여러 명 있는데도 통역을 하나도 제공하지 않아 그저 멀뚱멀뚱 앉아있어야만 했다. 과제와 관련한 행정, 업체와의 연락, 일상생활의 도움까지 모두 한국인 학생이 관여해야만 한다.
2018년 브릭과 한겨레신문, 과학기술인단체 ESC가 한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1] 외국인과 함께 연구한 경험을 한 응답자가 72%로 이미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외국인 동료의 존재가 연구실의 연구 문화, 국내 연구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답변이 77%로 높았다. 특히 최근 일부 대학을 제외한 지방 대학들은 외국인 대학원생이 신입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2] 이미 외국인 연구자는 한국의 연구실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동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머나먼 타지에 연구하러 온 외국인 대학원생이나 함께 생활하는 한국인 대학원생이나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대학원생은 언어적, 문화적인 장벽이 아주 강력하다. 학생식당에서 메뉴를 영어로 확인할 수 없거나, 행정 직원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 화학물질 누출이나 재난 등 위험 상황에서 영어로 안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병원에 가야 하거나 아이가 있어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경우에도 모든 단계에서 의사소통을 못해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당사자인 외국인 대학원생 입장에서도 매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곤혹이 아닐 수 없다. [3] (사족이지만, 이런 내용을 대학의 고위급에 계신 교수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외국인 대학원생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할 때에 부모와의 연락을 주고받는 일까지 한국인 대학원생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그 고위급 교수님은 이렇게 답했다. “그걸 왜 학생이 해요? 국제학생지원센터에서 하면 되지?” 그 국제학생지원센터는 연구실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어서,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를 대신 받아줄 수조차 없다.)
외국인 대학원생과 함께 생활하는 한국인 대학원생들도 고충이 만만치 않다. 브릭이나 김박사넷 등 대학원생들의 커뮤니티에는 외국인 대학원생이 연구실에 들어오는 바람에 행정업무를 도맡아 하게 된 한국인 대학원생의 하소연을 자주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도 외국인 학생이 들어온 이후 행정 업무나 통역 등 일이 늘었다는 답변이 많이 있었다. [1] 한국인들끼리 있을 때는 나누어 하던 일들을, 외국인 학생이 들어오니 한글이 가득한 서류를 맡길 수 없어 모두 떠안게 되는 것이다. 잘 조율한 경우에는 한국인 학생들이 커뮤니케이션과 행정 쪽 일들을 맡아서 하되 외국인 학생들이 통역이 필요 없는 일을 담당하는 연구실도 있지만, 그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문화적 차이로 채식을 하는 동료가 있을 때에는 회식을 할 때 채식이 가능한 곳으로 가거나 고기를 모두 빼고 조리가 가능한지 일일이 물어야 하는데, 사실상 그런 곳이 거의 없는 한국 문화에서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장벽이 존재하는 외국인 동료를 도와주는 것은 인정, 배려의 차원에서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일들이 과중하거나, 자신의 일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도와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탁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매번 부탁하기 어렵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외국어를 통역/번역하거나 행정 상의 도움을 주는 행위는 분명히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비용을 치러야 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쌍방의 고충 사이에 개입할 책임이 있는 대학과 학과는 한국인 학생의 도움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외국인 학생과의 의사소통을 직접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외국인 연구자와 대학원생을 감당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들을 온전히 주변에 있는 한국인 대학원생이 수행해야 할 당위는 도덕 이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은 인력을 늘리고 외국인 학생의 한국어 행정을 전담하는 담당자를 배치해 외국인 대학원생들의 지근거리에서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부분 대학의 외국인 관련 부서는 외국인의 입국 및 비자, 초기 주거 문제 등까지는 적극적으로 돕지만,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마주하는 연구행정과 생활에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최소한 건물 당 1명, 또는 학과 당 1명 등 필요할 때 당사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행정서류나 주문 방식 등 또한 아예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쓸 수 있도록 바꿔 놓으면 매번 통역하는 수고 없이 서로 수월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가피한 다양성의 시대에,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 모두 대학이 아끼고 보살펴 인재로 키워내야 하는 ‘우리 학생들’이다.
<참고문헌>
[1] 한겨레, <연구실의 외국인 동료, 가장 좋은 점은?>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42799.html (2018-05-01)
[2] 한국일보, <한국어 못해도 장학금 줘 가며 ‘무늬만 유학생’ 모시는 대학원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260851074563 (2019-04-29)
[3] GIST신문, <소외된 원내 외국인 대학원생>
http://gistnews.co.kr/?p=3719 (20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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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으로 이미 출판된 지식이 아닌, 지식이 만들어지는 연구의 과정을 현장의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필자가 경험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 연구자들 간의 대화 등을 소재로 한국의 연구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작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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