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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노트] 익숙해진다는 건
Bio통신원(곽민준)
익숙해진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서툴기만 하던 실험이 이제 조금씩 능숙해지고, 약간은 불편하던 연구실 환경이 점점 편안해진다. 아직 한 학기 밖에 안 되었지만, 그래도 천천히 진짜 과학자의 길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해 약간 뿌듯한 마음도 든다.
어제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실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뒤늦은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얼마 전 뜨거웠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다시 보기로 시청했다. 어린 초등학생 시절 장래희망 칸을 매번 ‘의사’로 채웠지만, 어느 순간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건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 마음을 접었던 나로서는 의사들의 삶을 다룬 이 드라마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의사는 아니어도 나름 생명을 다루는 연구를 하고 있다 보니, 괜히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 더 몰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에 푹 빠져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하던 중, 드라마 속 의사 채송화 선생의 한 마디가 내 머리를 크게 울렸다.
‘긴장하라고. 수술하고 환자들 대할 때 항상. 긴장하라고 그러는 거야. 이 일이 힘은 드는데 금세 익숙해져. 근데 익숙해질 게 따로 있지. 우리 일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단순히 익숙해지는 건 무조건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은 매일 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안 된단다. 당연한 얘기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가 오가는 수술을 받게 됐는데, 의사가 그 일에 너무 익숙해져 긴장하지 않고 가볍게 툭툭 작업하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면? 아, 정말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너무 슬프게도, 누군갈 죽도록 증오할 수밖에 없게 될 듯하다. 그러니 의사는 익숙해지면 안 된다. 항상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한다.
그럼 나는?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대부분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중 많은 이들은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다룬다. 나도 마찬가지다. 신경유전질환 연구를 위해 모델 생물로 쥐를 이용해 많은 실험을 진행한다.
당연히 많은 쥐가 죽어 나간다. 처음에는 이게 너무 힘들었다. 일단 손으로 쥐를 잡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원래 겁이 많은 편이라 동물을 편하게 다루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시간이 걸리는 중이다. 저 아이가 내 손을 물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 동물이랑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그냥 쥐 자체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사실은 큰 쥐들을 보면 약간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무서운 마음은 없어졌다. 익숙해지는 건 정말 금방이었다. 그런데 더 힘든 일이 생겼다. 내가 쥐에게 위해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우리 연구실의 주된 실험 대상은 임신한 쥐다. 그래서 짝짓기를 기다리고, 임신이 확인되면 귀에 구멍을 뚫어 표시해줘야 하는데, 아파하는 아이들을 보는 게 정말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느 날은 쥐를 누른 상태로 귀에 구멍을 뚫어주고 손을 뗐는데, 이 아이가 많이 놀란 건지, 아니면 아파서 그런 건지, 순식간에 내 눈높이보다도 훨씬 더 위까지 뛰어올랐다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테이블 높이에 쥐장 높이까지 더하면 1m가 훌쩍 넘는 높은 곳에서 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습에 정말 깜짝 놀랐다. 다행히 가벼운 쥐의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태연히 바닥에 떨어진 쥐의 꼬리를 잡아 다시 원래 집에 넣어주고는 다시 실험실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 높은 곳까지 튀어 오를 정도로 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줬다는 사실에 실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게다가 내 손으로 직접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야 할 때는 더욱 힘들었다. 경추탈골로 쥐를 처음 잡은 그 날밤, 내 꿈에는 수십 마리의 쥐들이 등장했다. 너무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백 마리 이상의 많은 쥐를 죽여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훨씬 많은 수의 쥐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꿈에 쥐가 등장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너무 힘들지 않냐고? 놀랍게도 처음 그날 이후로 더는 꿈에 쥐가 나오지 않았다. 불과 한두 번의 살생 만에 완전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익숙해진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유전질환 연구를 하며, 오히려 수많은 생명을 죽여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불과 몇 달 만에 완전히 적응해버렸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의 윤리적 문제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중 확실한 정답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어떤 이들은 동물실험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글쎄다. 그건 조금 어려운 일 아닐까? 살아있는 동물보다 훨씬 더 나은 실험 모델이 등장하고 학계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면 모를까, 아직 동물실험 없이 생명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무리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물실험은 나쁘니 생명과학 연구를 관두자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동물실험은 당분간 지금처럼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실험하자니, 그것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오랫동안 동물실험을 해온 선생님들은 실험동물을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그냥 실험 대상의 하나로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던데, 나는 그건 별로다. 아무리 그래도 멀쩡히 숨을 쉬고 있는 하나의 생명인데, 어떻게 다른 도구와 똑같이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논리를 떠나 내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면 뭐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동물실험을 관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살아있는 생명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아마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나는 이 고민에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할 것 같다. 수십 년 후에도 내가 여전히 비슷한 과학을 하고 있다면, 그때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어제저녁, 채송화 선생님 덕분에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긴장해야 한다는 것. 의사들은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긴장해야 하지만, 우리는 소중한 생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희생해야만 한다면, 그 희생이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지 않을까?
오늘도 두 마리의 쥐를 죽여야 한다. 거의 매일 하는 일이라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그러지 않을 거다. 나는 오늘도 속상한 마음으로 쥐를 잡을 것이고, 그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 실험에 임할 거다. 지난번처럼 전선을 뽑고 전기충격을 가하는 어이없는 실수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최고의 방법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꼭 가야 하는 길이기에, 망설이기보다 자신 있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그러나 이 방법의 문제점을 잊지 않으며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해, 언젠가 먼 미래에는 그 누구의 희생도 없이 과학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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