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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임의 정부과제 수행기] 1화_연구소로 간 이 주임
Bio통신원(이 주임)
2002 월드컵 때, 이 주임은 분석장비 업체 영업부서에 입사하여 여러 분석장비를 소개하고 팔러 다녔다. 자외선-가시광선 분광광도계, 적외선 분광광도계, 수질 자동측정기, 기타 연구소모품과 액세서리 판매를 하려 전국을 누볐다.
하지만 평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은 항상 불안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업을 한지 3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이 주임은 퇴근길 버스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이러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이 주임은 속으로 계속해서 자문자답을 했다.
순간 대학원 때 실험실에서 늦게 실험을 마친 후 홀로 자취방으로 가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 주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맞아 그때가 참 즐거웠어. 실험에 몰두 할 때가 제일 즐거웠어...... ”
이주임은 바로 다음 날 영업팀장님한테 찾아가 저녁약속을 잡았다.
저녁과 반주를 먹으며, 분위기가 달달 해질 때 술기운을 빌린 이주임은 팀장님께 여쭈었다.
"팀장님 저 영업대신 연구소 일을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보직 이동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실 수 있으세요?"
팀장님은 술이 확 깬듯한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야 인마 고작 영업 3년하고 벌써 지친 거야, 너한테 뭐라 그러는 사람 있냐? 너 영업 못하는 것 아니잖아, 몇년 만 더 같이 하자"
이 주임은 여기서 물러나면 평생 보직이동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제발 연구소로 보직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요즘 정말 힘듭니다."
이 주임의 계속되는 부탁에 팀장님께서는 퉁명스럽게 말씀하셨다.
"알았어, 다음에 사장님 뵐 기회 있으면 애기는 해볼게, 하지만 보직 이동은 내 권한이 아니라 장담은 못한다. 그 애기 이제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그렇게 한 주가 담쟁이 넝쿨 자라듯 천천히 흘러갔다.
따르릉 하며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이 주임, 사장님 면담입니다."
옳거니, 올게왔구나. 이 주임은 옷맺음새을 단정히 하고 부리나케 사장실로 달려갔다.
똑똑똑~~노크를 하니, 크고 힘찬 사장님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드르와~"
"영업팀장한테 듣자 하니 이 주임이 연구소 일을 하고 싶다며~~"
"네~"
"이 주임! 지금 회사 형편상 연구소보다 영업직 인원이 모자라니, 지금 하고 있는 영업을 더 하도록 하세요~"
"넵~"
이 주임은 졸보였다. "네"란 말만 두어 번 하고 사장실을 나와야 했다.
회사는 필요에 의해 이 주임을 뽑았다는 명제에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명제를 뒤집을 수 있는 논리적 센스에 기반한 말발도 없었다.
인생이 자기 맘대로 다 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좀 허탈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일, 이 주임은 연구소에 가든 못 가든 진정성만큼은 사장님께 날려보자고 다짐했다.
'말이 안되면 글로라도 해보자'란 오기가 생겼다.
그날 이후 이 주임은 퇴근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빨도 그닥 자신 있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흘렀다. 약 80페이지 분량의 글이 만들어졌다.
제목은 '세계 광 분석 계측 산업의 동향과 사업성이 기대되는 아이템 발굴 및 개발에 대한 보고서'이다. 정말 집중 했는지 일주일 후딱 지나갔다.
작성한 보고서 양식의 글에는 이 주임 나름대로 파악한 광 분석계측장비의 동향과 분석, 광 분석 계측장비의 특성, 현재 기술의 동향, 전망있는 사업 아이템 , 그리고 이 주임이 지금까지 해온 일 등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었다.
이 주임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글의 맺음에 이주임이 연구소로 가면 영업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야 연구소에 갈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글에 오타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출력물을 3공 바인더에 정성스럽게 철했다.
이 주임은 약간은 따뜻한 렛츠비 캔 커피를 비서실장님께 건네며 살포시 말했다.
“ 비서실장님~~ 제가 가져온 바인더를 사장님께 결재서류 드리실 때 같이 전달 부탁 드립니다.”
이 주임을 바라보는 비서실장의 눈은 측은해 보였지만, 바인더를 전달하고 돌아오는 이 주임의 마음은 한결 후련하였다.
비록 마음 한 구석엔 이번에도 안되면 어쩌지? 란 불안감이 있었지만,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이주임은 총무부서로부터 메일이 왔다.
메일 제목은 '사령장'이었다.
이 주임은 설레는 마음으로 첨부파일을 열어봤다.
그 메일에는 ‘사령장’이 보기 좋게 첨부되어 있었다.
안도의 한 숨과 함께 어느 부동산 재테크 강사가 말한 '사람은 자신이 그린 데로 삶을 산다.'란 말이 떠올랐다.
이 주임의 글엔 연구소 일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하고는 못 배길 것 같은 표정이 배어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것이 사장님의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그렇게 이 주임은 가고픈 연구소에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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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장비 제조업체에서 연구개발과 더불어 정부과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했던 정부과제 업무를 '이 주임'이란 가상인물을 통해서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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