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암(癌)에게서 배우다] <98회> 살살 달래기
Bio통신원(바이오휴머니스트)
ⓒ Pixabay License
종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생태 시스템으로 볼 수도 있는데, 암을 연구할 때, 특히 항암치료에 암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할 때 이러한 진화 생태학적 관점은 유용한 접근법이 되기도 한다. 진화 생태학이란, 종간 또는 종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중에 일어나는 선택, 적응 등 진화적 변화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종 자체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는 과학 분야이다.
이 분야에 NCI(미국 국립암연구소, National Cancer Institute)가 지원한 한 연구에서는, 비소세포폐암의 실험 모델을 구축하여 표적치료제에 민감하거나 저항하는 종양 세포들 간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진화 게임 분석법(Evolutionary game assay)’을 개발했다. 연구자들은 조건이 달라지면 세포들 간의 상호작용도 달라지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세포들이 하는 게임 즉, 세포 간 상호작용의 유형을 변화시키면 항암제 저항성 세포들이 항암제 민감성 세포들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진화를 유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암환자를 도울 수 있다고 제안했다.
NCI가 지원하는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진화적 역동성에 의해 발생하는 항암제 저항성을 항암제 용량과 투여시기를 조절함으로써 감소시킬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항암제에 민감한 세포들이 일정 비율 살아남을 수 있는 수준으로 항암제 용량을 다소 낮추어 투여한다면 이들이 종양 내 존재하는 항암제 저항성 세포들과 경쟁하여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항암제 저항성 세포들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응요법(Adaptive cancer therapy)을 통해 종양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제어 불가능한 약물 저항성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면서 종양을 비교적 안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아직까지는 가능한 고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하여 암세포를 최대한 사멸하는 것이 통용되는 항암치료의 주된 전략이다. 실제 백혈병 등 일부 악성 종양 치료에는 이러한 방식이 주효하다. 하지만 모든 암에 이 방법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많은 고형암의 경우에 있어 항암제 투여는 종양의 일시적 축소를 일으키나, 머지않아 항암제 저항성을 가진 세포가 급속히 증식해버려 더 이상의 치료법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강경책 일변도의 항암치료에 있어서도, 그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마치 암을 살살 달래가며 치료해보려는 듯, 이와 같은 진화생태학적 관점의 유화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육아 고민을 나누다가 지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어휴, 애를 너무 느슨하게 잘 해주기만 하니까 그렇죠. 예전에 저희 어머니는 저보고 같이 산에 올라가자고 합디다. 계속 말 안 들을 거면 같이 목매달고 죽자고요. 아이한테 좀 단호하게 해보세요. 저희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이긴 하지만 아빠인 제 말만큼은 꼼작 못하고 따릅니다. 잘못했을 땐 따끔하게 혼을 내거든요.”
내가 너무 부드럽게만 아이들을 대하니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예전에는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어기면 벌을 주는 강경책도 써봤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야 통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이후부터는 소용이 없었다. 종종 내가 서툴러 감정 조절을 못해서인지, 얼마든지 아빠 마음껏 처분해보란 식으로 아이가 반응을 보여 그만둔 적이 많다. 내가 엄하게 대하면 그나마 아이에게 남아있던 마음의 부드러운 부분마저 딱딱해져 저항감만 더 키우는 듯했다. 마치 강력한 항암제에 민감한 세포는 다 죽어버리고, 저항성을 가진 세포만 남듯....
육아도 게임이다. 암연구자들도 암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암세포들을 상대로 이기는 게임을 고민하듯, 부모는 성장기 변화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서로가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강경책이 듣는 아이가 있고 유화책이 통하는 아이가 있다. 때론 성장 시기마다 강경책과 유화책을 달리 사용해야 하는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암연구자들이 항암제의 강도와 시기를 세심히 조절하듯, 아이 마음의 말랑말랑한 부분이 마저 모두 굳어버리지 않도록 살살 달래야 한다. 역시 쉽지는 않다.
사랑하는 아이를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을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시월의 어느 멋진 가을날에....
* 참고자료
https://www.cancer.gov/research/annual-plan/scientific-topics/drug-resistance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인생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함.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