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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기성장 Self-Discovery Lab] 나는 오리보다 못한 카이스트 대학원생, 싱가포르 날다 <7부>
종합 닥터헬렌킴SG (2021-02-23)

-프롤로그-

상처받은 영혼의 울부짖음

-닥터헬렌킴SG

그날 나는 상처받은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돌이켜보니 가장 만만한 너에게 화를 내었다.

화를 내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지금의 나였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네가 있어 가능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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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Morgan Basham @ Unsplash


<제1 장> 꿈에 그리던 신약개발 스타트업에 조인하다

K 고속과의 업무를 아쉽게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가족과 함께 한국에 다녀왔다.

부모님은 축 처진 딸의 어깨를 다독여 주시며 거한 생일상을 마련해 주셨지만, 나는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끝내 울고 말았다.

15년간의 경력을 가지고 파트타임을 전전하는 나 자신이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회적 직함이 없는 나 자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새해가 밝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왔을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 박사, 내주에 시간 되나요? 같이 만나서 할 얘기가 있는데…”

전화를 주신 분은 우리 부부를 싱가포르로 올 수 있도록 자리를 알아봐 주시고, 한국에 계신 은사님과도 자주 교류하시기에 나에게 있어서는 신뢰가 깊은 분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교수님을 뵈었고, 얼마 전 설립하신 파킨슨 신약 치료제 개발 스타트업에 내가 합류하는 것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속으로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신약개발에 스타트업을 통해서 더 가까이 갈 수 있구나!

나는 금전적 보상의 크기보다도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기회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자 했다.

지금껏 내가 기대해 온 일인 만큼 배워가면서 잘 할 거라고…

 

<제2 장> 미국에 살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

교수님을 통해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는 회사의 대표를 소개받았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타트업 사업개발 경력이 있기에 이번 사업을 맡게 되었다고 들었다.

나 이외에도 싱가포르 난양공대에서 바이오 NMR 학위를 받고 유럽 포스트닥 경력을 가진 닥터 R은 먼저 합류하여 그가 온 나라 인도의 CRO 와 전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메일과 전화 인터뷰를 거쳐서 나는 신약개발 스타트업의 COO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월급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2000년도에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삼성동에 있는 작은 벤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받았던 돈과 같은 금액이었다), 하고 싶은 업무였고 나 또한 투자하는 마음으로 이 기회를 기꺼이 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첫 미팅 때 미국에 있는 대표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나는 왠지 모를 고압감을 느꼈다.

그는 웃음이 없었고, 심각했다.

나는 이곳은 스타트업이고, 내가 아는 사람들로 채워진 안전지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대표가 너무 딱딱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하는 닥터 R에 비해서 나이도 어리고 게다가 우리 둘은 포스트닥 경력을 가진 박사이고, 그는 바이오와 전혀 상관없는 파이낸스 전공 및 IT업계의 스타트업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현재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했다. 

나는 그러한 우리 태생적 차이점을 면밀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매주 Zoom 미팅을 통해서 그와 미팅을 할 때마다 꽤나 긴장을 했었다.

그는 내가 제출하는 보고서나 우리의 논의에서 흡족함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에게는 돌보아야 할 아이가 둘이 있었고, 특히 나의 둘째는 특수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는 오전 11시까지는 나는 업무에 임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우고 나는 길 건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남편이 일하는 대학 캠퍼스의 한 건물에 가서 혼자 또는 동료와 함께 만나서 업무를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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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대학교 캠퍼스 건물의 나의 사무실과 노트북. 그래도 좋았던 시절


그때 우리가 한 일은 ‘사업 계획서’를 쓰는 일이었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사업 계획서를 처음 써보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업 계획서에 들어가야 하는 것에 대한 이해조차도 제대로 잘 못하고 있었다가 맞다.

우리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신약후보물질의 비임상 및 임상시험 계획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 향후 그 파이프라인을 어떤 식으로 경제적 가치를 일으킬 수 있는가 (보다 규모가 큰 제약사에 라이선스 판매 또는 공동 개발 등)에 대한 계획을 적었어야 하는데.

나는 그제서야 임상 시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물질의 MoA 대신 단백질 레벨에서의 어려운 메커니즘에 관한 학술 논문들을 찾아서 읽고 이해하느라 (나는 여전히 아카데믹 연구원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는 대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시간에 그 결과를 제출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현실이었고, 내가 풀타임 근무할 때의 20%에 해당하는 급여만 받으면서도 내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내고 있고 배우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말했다.

회사는 배우는 곳이 아니고, 와서 업무를 해내는 곳이라고…

 

<제3장> 엄마의 꿈을 지지해 주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매일 오전 11시에 버스를 타고 가서 오후 5시면 학교 건물을 나서야 했다.

딸아이의 스쿨버스보다 내가 먼저 정류장에 내려서 기다려야 하니까 혹여 늦을까 버스 안에서 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신데렐라의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들 녀석에게 저녁밥을 앉혀 달라고 부탁했다.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아이에게 동생이 오는 스쿨버스 정류장에 나가 달라고도 했다.

아이는 우울했던 엄마가 뭔지 모르게 바쁘고, 다시 예전처럼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 좋았는지

“엄마 걱정 마, 내가 밥 앉혔어~" 씩씩하게 대답하고, 저녁마다 정류장에 앉아서 동생을 기다렸다.

고사리 손을 빌려서라도 꼭 지켜내고 싶은 꿈이었기에, 아이의 도움이 마냥 고마웠고 저녁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함께 퇴근하는 시간이 힘들면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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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그 당시 나와 초등학교 4학년 아들, 지금 보니까 동글동글 4학년 아이의 얼굴이 더욱 앳되어 보인다. 그때 엄마를 지지해 줘서 너무 고맙다.


<제4장> 황당한 미국식 해고를 싱가포르에서 당하다

9월 중순이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날 싱가포르 스타트업 페스티벌 행사장에 가서 이곳의 생태계도 알아보고 특히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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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2017년도 마리나베이샌즈 전시장에서 개최된 SGINNOVATE 스타트업 교류행사


그곳에서 나는 싱가포르 코트라의 투자담당 B 과장님을 만났다.

나의 얘기를 듣고 소개 자료를 보내어 주면 코트라와 연계된 투자자에게 한번 알아봐 주겠다고 한 터라 상기된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전화기에 미국에서 온 부재중 전화가 두어 통 와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던 차, 나는 집에 와서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그동안 수고해 줘서 고맙고, 당일 날짜로 근무를 그만두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연결된 미국 대표와의 통화는 내가 이메일을 읽었는지에 대한 확인과 그날까지 일한 급여를 추후 보내준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보통 3개월 또는 1개월 노티스 조항이 있어서 나에게 급작스러운 통고로서 해고 절차를 마무리하는 대표의 행동이 매우 황당하고 불쾌했다.

게다가 박사학위를 가지고 포스트닥 경력이 있었는데, 고작 대졸자 아르바이트 급여를 받고 있었고, 그것은 내가 경험한 생애 첫 당일 해고였다.

오늘 이 시간부로 당장 나가!

나의 퍼포먼스가 그의 기준에 들지 않았다는 그의 설명 따위는 내게 안중에 없었다.

그가 지금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해고 통고를 했는가 그것에 나에게는 문제였다.

그날 이후 자면서도 벌떡 일어날 만큼 나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운이 없었는지 그가 나의 마지막 두 주치 급여는 싱가포르로 오는데 여러모로 일이 꼬였다.

자기는 돈을 보낸 송금장이 있으니, 돈이 들어오지 않는 부분은 싱가포르 수신은행과 해결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태도에 이메일로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교수님을 CC로 해서 그가 그동안 했던 언행의 불쾌함을 몰아붙이며,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물어뜯을 듯 글로 싸웠다.

송금이 지연되는 나의 마지막 급여를 어서 처리하고 아직 내 이름이 올라간 회사의 홈페이지를 정리하며 그동안 마땅히 지급해야 할 싱가포르 국민연금도 지급하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계약조건에 국민연금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는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싱가포르에서 영주권자에 대한 국민연금 지급은 해외에 있는 고용주라도 의무를 지는 조항을 들어서 나는 그를 압박했다.

왜냐하면 그는 끝까지 자신이 나에게 마지막 한 해고 통고의 방식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태는 회사 대표와 그동안 신뢰했던 포스트닥을 연결했던 교수님의 중재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남편은 내가 교수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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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juan camilo guarin@unsplash


나는 그때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호랑이가 뛰쳐나오는 경험을 했다. 내가 참아주는 것도 정도가 있어!

 

<제5장> 지금의 내가 해석하는 그때의 일

돌이켜보면 그가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내가 가진 열등감 때문이었는지 그냥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계속 거슬렸다.

그가 말하는 블루하우스에 있는 대단한 그의 친구들이…

그가 투자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급히 검토하라고 했던 이메일이, 태국에서 온 스캠(SCAM) 메일이었던 것…

아이를 돌보다가 밤을 새워서 일을 해야 하거나, 아이가 아파서 일을 못하는 날이 있어도 공감이나 이해의 말을 표현하지 않는 대표가 야속했다.

나는 북유럽 보스가 운영하는 아카데믹 랩에서 받은 가족 중심적 인간적 대우를 경험했고, 아침에 통보하고 짐 싸게 만드는 미국 업계에서 훈련된 대표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미숙했고, 상처 주었고, 막 시작된 스타트업이 가지는 어려움을 다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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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 michaela @unsplash


그가 비록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했더라도, 신약개발 스타트 업의 대표를 맡겠다고 한 것은 바이오에 대한 이해 및 임상시험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가 신뢰하는 과학자문 위원이 있고 채용한 두 박사들이 그가 부족한 바이오 부분의 일을 대신에 잘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가졌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깨달았다.

그 또한 임상시험이 무엇인지, 그것을 제대로 반영한 사업 계획서를 쓰기 위해서 어떠한 경력을 가진 인력을 채용해야 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각별한 사이의 교수님께서 권해준 인력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지만, 그것이 단돈 백만 원이라도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는 돈을 준만큼 결과를 빠르게 뽑아내고자 하는, 아니 대표로서 그래야먄 하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 출신으로 후천적으로 미국인이 된 그가, 자신보다 연배도 있고 경력이 있었던 한국인 포닥을 채용했을 때, 설사 퍼포먼스가 그의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그렇게 실리콘밸리식의 해고를 했어야만 했었나?

나는 그 점이 아쉽고 서운했던 거 같다.

그 일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향후 내 노동의 가치를 아무리 그 기회가 좋다고 하더라도 헐값에 내어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경우는 대표가 그 사업을 할 만한 역량과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체크하고 되도록 지인의 사업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결심까지도…

그리고 내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채용되고 내가 그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도 확신을 가지고 취업에 임한다.

쉽게 채용된 '묻지 마 취업'을 통해서 교훈을 얻었기에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일을 가슴에 두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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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헬렌킴SG (씨엔알헬스케어글로벌, Antifragile성향(어려울수록 더욱 강해지는)의 전략적 헬스케어 글로벌 사업개발, GM)

카이스트에서 Bio NMR을 전공하고 싱가포르 A*STAR 신약개발 연구소에 취업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온 세상이 장미빛. 뷰리풀~그러나 5년의 포스트 닭(Post-Doc) 기간 동안 나는 랩에서 평생을 보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울면서 맞이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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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6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밀가루빵  (2021-02-23 12:48)
1
안녕하세요! 연재 재밌게 보고 있고 공감도 많이 되네요~ 다음 회가 궁금해서 댓글올려요 :)
회원작성글 닥터헬렌킴SG  (2021-02-23 16:57)
2
밀가루빵님,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다음회가 마지막이에요~ Stay Tune!
회원작성글 만박사  (2021-02-23 17:33)
3
잘 읽었습니다. 마음고생 좀 하신듯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님의 경험을 잘 새기겠습니다.
회원작성글 닥터헬렌킴SG  (2021-02-23 22:20)
4
왜 이런글을 쓰는가?

http://m.blog.naver.com/ttkkiiaa/222253776556
회원작성글 뉴로  (2021-02-25 10:00)
5
채용공고에 지원하면서 희망연봉란이나 연봉협상을 할거란걸 보면 어디가 나의 적정 능력인가 늘 고민하는데
닥터헬렌킴SG님 글이 많이 영감을 주네요.
회원작성글 lily09  (2021-03-25 01:38)
6
"향후 내 노동의 가치를 아무리 그 기회가 좋다고 하더라도 헐값에 내어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 글귀가 콕 가슴에 박히네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이직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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