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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망원경; Telescope in my brain]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아서(1), 떠돌이
종합 김민환 (2021-06-01)

“나, 직장을 잃을지도 모르겠어" 아기 유모차를 끌며 저녁 먹고 늘 가던, 블랙베리가 가득한 옆동네 산책로에서 난 아내에게 좀 망설이면서 말했다. 망설였던 만큼 아내가 무슨 대답을 할까 아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봤을 때, 아내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별로 버는 것도 없는데, 직장 다니나 마나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유모차를 끌고 갔고,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난 너무나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당신밖에 없어,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 장면은 포닥 4년 차 정도 되었던 때의 내 안에 남아있는 선명한 기억이다. 그때는 한국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첫 박사후 연구원 (post-doctoral, 혹은 포닥) 생활을 시작했고, 아내와 결혼은 포닥 생활 2년 차 때였으며, 결혼 후 바로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 아이가 2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

사실 잠시 나의 박사과정 때를 돌아보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간단한 이유는 그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교수님들로부터, 자네는 지금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변변치 못한 학생이었다. 특히 박사자격시험이 까다로운 물리학과에서 물리 이론 수업을 듣고, 공부하면서, 생물물리학에 열정을 가지고, 의대 생리학과에서 연구를 하셨던 교수님 지도하에 생물학 논문을 읽으며 보냈던 시절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아서


내가 속해 있던 물리학과 대학원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조그만 소보로 빵 (아님 그 비슷한)과 차를 대학원생들에게 제공하면서, 정기적인 초청 세미나 강연이 있었고 (아마도 매주), 세미나의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초청 연사 소개시켜 주시는 교수님의 초청 연사분에 대한 칭찬 일색 (지금 생각해보면 의례적인 것일수도 있지만)은 아직 기억에 남는다. 이 연자분이 얼마나 학부 때 공부를 잘 했고, 똑똑하셨던 분이셨는지 등등, 그때마다 든 생각은, 난 그럼 대학원에서 공부를 잘 못 했으니, 미래에 저런 자리에 설 수 없는 걸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었다. 물론 공부도 잘하고, 연구도 잘해 좋은 논문을 많이 쓰는 주변 동료들도 보았지만, 난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좀 둘러보면, 학위 과정이 그리 순탄하기만 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어떻게 난 계속 공부하는 학위 과정을 하겠다고 선택한 걸까? 나도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한 2-3년 정도 공부하고 연구해, 논문을 쓸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 잘해서 선택했다기보다는 어쩌면, 느리고 깊이 생각하는 작업일 수도 있는 연구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석사학위 초기에 운이 좋아서 지도 교수님을 따라서, 해외에 나가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다. 서른을 바라봤던 나이에 처음 해외란 곳을 나간 곳이 미국 실험실이었고, 한 한 달 반 정도의 해외 실험실 생활, 그쪽 실험실 동료와의 만남, 랩미팅 등의 경험은, 개인적으로 참 충격이었고, 돌이켜 보면 말도 잘 못 하니, 얼마나 민폐 학생이었나 하는 생각과, 그런 경험을 갖게 해주신 지도교수님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든다. 그렇게, 정식 유학생이 아닌,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거나 하는 형태로 잠시 머무르는 방문 학생/연구자로, 1-2년에 한 번, 짧게는 2개월 다음엔 3-4개월 등등 한국을 오가며. 그렇게 학위 과정을 보냈다.

그렇게 이쪽, 저쪽 생활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현지 유학생들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열심히 영어 공부해서, 현지 대학원에 이공계 학위 과정에 장학금을 받고 정식으로 입학하셔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시는 분들. 그래서였는지, 현지에서 공동 연구를 목적으로, 정규 소속이 아닌, 방문 학생/연구자로서 늘 현지 학교에서 외부인 취급을 받던 내 상황이 참 싫었던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나도 정식으로 유학을 오거나, 아니면 빨리 학위 받고, 정식으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석박사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고, 합쳐서 8년 반이란 시간을 보냈다.

학위 과정 중 연구했던 신경내분비계 (neuroendocrine system)의 이온 채널 및 호르몬, 신경전달 물질 분비기작 연구는 자연스럽게 신경세포 및 뇌과학 쪽으로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학위 과정 때 논문에서만 자주 보던, 나와 같은 실험 방법으로, 열심히 신경세포를 연구하는, 논문 읽으면서 상상만 해봤던 연구소에 우연히 알게 된 교수님과 연이 닿아 그곳으로 첫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아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학위 지도교수님께서 박사후연구원은, 모든 것은 박사학위 받은 시간부터 카운트되는 것이니만큼 아주 좋은 실험실로 가야 한다는 진심어린 조언을 뒤로하고, 조금은 서둘러서 성급하게 결정 (이유는 지겨운 대학원 생활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월급 받고 독립하고 싶어서) 했었던 거 같다. 지도교수님께, 저는 최하급 논문만을 출판하면서 살더라도, 뇌과학 쪽 연구를 할 수 있다면, 만족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다고, 아이처럼 투정 섞인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망막신경 (synaptic physiology in the retina)에 관한 연구.

포닥 지원 당시, 방문 학교 내에서 한 두 분 정도의 조언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흥미로웠던 것은 박사학위 받고, 처음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하는 초년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참 다양했다는 점이다. 한 교수님께서는 (내가 싫어서일까?) 학위를 받았으면, 스스로 그 분야에서 중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 실험을 계획하고, 논문을 쓰고 출판할 수 있어야지. 맞는 말씀이셨다. 다른 한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호감이 있으셨던 걸까?) 학위를 지금 받았는데, 아는 것이 무엇이 있냐, 지금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배우면 된다. 맞는 말씀이셨다.

과연 학위 과정을 마치면서 갖추어야 할 요건은 무엇일까? 그건, 물론 스스로 연구주제를 찾아서 연구하고, 논문을 쓸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같은 주제 다른 실험실과 그리고 같은 실험실에 다른 포닥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그 학위 한 사람의 경력과 연구 분야 경력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다. 실험 과학자라면, 배운 한 실험을 잘 하는 경우부터, 스스로 배워 여러 실험기술을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학위 과정 동안 한 분야의 연구 기술을 익혀 다른 분야로 넘어가 그곳에서 새로운 시도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포닥 생활 시작한 지 한 1년,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 그냥 이 실험실에서 하는 건 다 알겠고, 더 배울 것이 없잖아라고 생각했던 건, 돌이켜 보면 분명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같은 학교 다른 비슷한 신경기관을 가지고 연구하는 실험실에 찾아가 랩미팅도 참여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공동 연구를 시도했다. 그래서 좋았지만, 빨리 논문을 내고, 다른 훨씬 좋은 실험실로 옮겨가야겠다 막연히 생각도 했었다. 이건 나의 역마살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는 룰 (rule)은 한번 들어온 실험실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나가야 하며,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음 좋은 실험실로 옮겨갈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속한 분야는 한 프로젝트당 실험 계획, 실험, 논문 작성을 합하면 쉽게 3-4년, 5년까지도 걸렸다. 그래서, 열심히 맡은 프로젝트 실험과 논문을 읽으며 보냈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첫 포닥 실험실 교수님은 참 자상하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조언을 해 주시는 분이셨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무렵 두 번째 포닥 실험실에 여러 곳 지원했으며, 또다시 날품팔이 보따리 연구원의 인터뷰 경험을 몇군데 하게 되었고, 거절도 몇 군데 당하다 다행히 한 실험실에서 오퍼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있던 실험실에서는 이미 몇 개월 후 나가기로 정해졌고, 나를 대신할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난, 그 당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4년을 보냈음에도, 새로운 연구실에서 배울 것들에 대해서 참 많이 들떠 있었었다. 그래서 가기로 한 실험실 교수님께서 새로 내신 책을 바로 구입해서 꼼꼼히 읽고 열 개가 넘는 오타 (typing error)도 발견해서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갑자기 가기로 한 실험실에서 연구비가 예상치 못하게 끊겨,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거 같다는 일방적인 연구실 합류 거절 통보를 받았다. 계약직 연구원으로서는 참 난감한 상황임이 틀림이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는데, 첫 포닥 실험실에서는 6개월 이내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늘 새로운 도전은 그만큼의 변수도 따르는데, 그 변수의 순간들에 가족의 무심한 말 한마디의 배려는 참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내 책상에 앉아서, 정말 내가 원하는 연구는 뭘까? 하면서 열심히 논문들을 찾고 읽었다. 이런 그룹에서는 이런 연구를 하는구나 하면서. 사실 이 시기에 미국 내에서 가능하면 좀 더 오래 연구를 해보고 싶어서, 취업비자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는, 영주권을 신청 중이었다. 그래서 막연히 미국 내에서 두 번째 포닥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정말 멋진 논문을 읽게 되었다. 아직도 그 논문을 프린트해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실험실에 가서 연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논문 저자들의 소속을 봤는데 영국이었다. 그때 나의 상황은 다른 원하는 좋은 실험실로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직장 잃을 수도 있고, 전 세계 어디든 좋은 연구하고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보자 하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참 많은 곳에 이력서 및 지원서를 보냈었다. 

하물며 영국은 영어를 쓰지 않는가? 하면서. 물론 전 세계 실험실들은 아마도 대부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고, 그것이 이공계 분야의 국가와 지역을 넘는 장점이다. 어디 어디에 보냈는지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이력서 및 지원서를 보냈고, 직접 찾아가 만나서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왠지 나의 무식함이 드러나, 전 세계 연구자들이 나를 혐오할 것이란 막연한 두려움이 그땐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뽑을 여건이 되지 않아 아예 관심이 없거나, 호감을 보였으나, 직접 이야기해보고 싫어하는 교수님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호감을 갖는 실험실 교수님들도 간혹 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리쿠르트 과정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여러 변수들이 작용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에 타이밍이 중요하듯이. 그래도 분명한 건, 많이 부딪치고 행동했던 것이 많이 경험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좋은 인연 인맥도 조금은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냥 논문에서 읽는 것만으로 그 실험실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모두 판단할 수는 없다. 논문은 출판 당시에도 그 실험실에서 5년 전, 길게는 10년 전에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과의 산물인 경우가 많으며, 앞으로 어떤 실험들을 어떤 방향으로 연구하려고 하는지는 가능하면, 직접 실험실 방문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 실험실에서 반기지 않더라도, 아 지나가다, 아니면 학회가는 도중에 들렸어요 하면서… 유명한 실험실이 좋은가? 대외적으로 유명하지만, 그 실험실에서 나온 논문들이 좋지 못한 경우도 조금은 있다.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능력 있는 젊은 실험실 운영을 처음 시작하는 조교수의 실험실이 좋을 수도 있다. 적은 인원에서 지도 교수와 더 많은 교류를 통해서 배우고, 새로운 분야에 호기 있게 도전해 볼 수도 있으니.

그 맘에 들었던 영국에 있는, 실험실로 전화 인터뷰 두 번과 방문 인터뷰를 통해서 오퍼를 받았을 때 참으로 기뻤던 기억이 난다. 전화 인터뷰 동안, 수세에 몰린 나는, 무심결에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실험을 잘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지금 돌이켜 보아도, 분명한 건, 난 가장 실험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래도, 특히 지도교수님 등 인맥을 통한 추천을 해 준 곳이 아닌, 스스로 찾은 논문을 보고 지원했다는 것이 스스로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 실험실이 내가 합류할 당시 스위스로 옮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아서


어찌 보면, 능력과 별개로, 변수가 작용할 수 있는 학위 과정 및 포닥 실험실 결정은, 아마도, 원하는 연구 방향을 빨리 찾고, 그에 상응되는 가장 좋은 랩으로 가서, 논문이 될 수 있으니까 하는 실험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내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실험 생물학 쪽은 실험기술 개발에 발맞추어 연구 동향 자체도 변화하니, 할 수 있는 일은 논문 열심히 읽으며, 주위 교수님들, 동료들과 많은 토론을 하는 수밖에) 연구에 도전할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상황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원하는 연구 방향 및 주제를 찾아서, 때론 퇴보하더라도, 조금씩 나갈 수 있으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난 느린 사람, 더 배우고 싶고, 빨리 직장을 얻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했던 시절, 난 그렇게 두번째 박사후 연구원 생활에 들 떠 있었다. 이 철없는 늦깍이 연구원은 여름날 시차 적응되지 않는 피곤하고 땀에 쩔은 몸을 이끌고, 중국 광저우 공항 귀퉁이에서 중국식인지, 일본식인지 알 수 없는 라면을 먹은 후, 보따리 짐을 머리에 베고, 3살배기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은 채 눈 붙이면서, 아내와 스위스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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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

국내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박사 학위 후, 지금은 국외 뇌 연구소에서 실험하면서 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로 뇌과학 관련 책 소개 및 감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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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구글회원 작성글 권구*  (2021-06-05 14:12)
1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화도 기다려 지네요!
회원작성글 김민환  (2021-09-08 01:48)
2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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