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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장비 이야기] 고분해능 핵자기 공명분광학 개발 (리하르트 에른스트_Richard R. Ernst)
Bio통신원(분석장비 탐험가)
“1901~2017년 사이 노벨 과학상을 수상 한 348건 중 분석기술/장비 분야 수상 건수는 27건(8.2%)이다. 이 데이터에서 보듯 노벨 과학상에서 분석기술 연구 장비 분야 수상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연구 장비가 노벨과학상 수상에 미친 영향’ 중에서......
리하르트 에른스트 (자료출처: nobelprize.org)
사회인 야구를 하다가 팔꿈치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 먼저 진단을 위해 X-ray를 찍었다. 그러나 X-ray 영상에서는 내 아픔을 유발하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MRI를 촬영을 제안했다. 그래서 난생처음 MRI에 내 몸을 내밀었다.
X-ray와 MRI의 영상 비교
X-ray 영상과 MRI 영상을 비교해보면 X-ray 경우 주로 뼈의 전체 윤곽만 보여주는 데 그치는 반면 MRI는 인대, 근육까지 세밀하게 보여 주었다. 정말 놀라운 차이였다. X-ray 영상이 흑백 TV라면, MRI 영상은 컬러 TV 같았다.
결국 이 컬러 TV는 내 팔꿈치 내측의 미세한 염증을 단번에 찾았다. 의사는 내 아픔을 ‘내측 상과염’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당분간 야구를 쉬라고 권유했다. 삶의 재미 중 일부분을 잠시 잊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날 찍은 MRI 영상의 선명함은 좀처럼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우연찮게 아래와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MRI (자기공명영상)은 영상기술 중 하나로 핵자기 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 원리를 사용한다. “
NMR는 분석장비 중 하나가 아니던가! 분석장비 업계에 종사하면서 그것에 대한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 NMR 기술이 진화를 거듭하여 나를 놀래 킨 의료장비인 MRI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괜히 내 마음이 들썩였다.
참고로 MRI 발명가 피터 맨스필드는 2003년에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분자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연구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여러 분석장비가 발명되었고 인류의 삶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NMR(Nuclear Magnetic Resonance, 핵자기 공명법) 역시 여기에 포함되는 위대한 장비 중 하나다.
NMR은 자기장 속에 놓인 원자핵이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와 공명하는 현상을 이용한 장비다.
NMR 장비, 자료출처: Bruker.com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모든 원자의 핵 내부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데, 원자핵은 전하를 가지고 있으므로 회전축을 따라 자기 모멘트를 발생시킨다.
이때 외부에서 특정한 주파수의 전파를 가하면 전파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공명현상이 일어난다. NMR은 바로 이 공명현상을 측정하는 장비다.
이 공명현상을 발견한 미국의 물리학자 이지도어 아직 라비는 194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핵자기 공명을 액체상태의 물질에 적용 가능하게 미국의 물리학자 펠릭스 블로흐와 에드워드 퍼셀도 195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다음엔 리하르트 에른스트, 또 그다음엔 피터 멘스필드, 폴 라우터버로 노벨상 퍼레이드는 이어졌다.
시대별 발전상을 정리 해보니, 결국 내 팔꿈치의 인대 염증을 찾아낸 영상은 무려 100년 동안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의학상을 휘저은 거인들의 합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
핵자기공명 기술 변천사
NMR 실험을 하고 있는 에른스트, 자료출처: SlidePlayer
이러한 생각에 다다르자 내 팔꿈치의 MRI 영상은 파블로 피카소의 유채화보다 찬란하게 보였으며, 그늘의 웅장한 노고 앞에 서 있는 나는 상상으로 보이지 않은 것을 결국 보이게 하는 인간의 능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나의 최대 관심사 고분해능 NMR을 개발한 리하르트 에른스트의 업적의 중심에 다가가기 위해 그에 대한 노벨상 시상 연설을 읽어봤다.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1991년 노벨 화학상은 분광학에서 중요한 방법의 하나인 핵자기 공명 분광학 방법론을 개발한 업적에 수여됩니다. 과학자들은 이 분광법을 NMR이라고 줄여서 부르며, 이 방법이 현대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광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NMR 분광법은 용액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분자들의 구조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가능하게 하며 분자들의 움직임과 상호간 작용에 관한 놀랄 만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방법론 개발’ 이라는 표현, 즉 새로운 이론적 혹인 실험적 도구의 출연이나 기존의 도구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을 뜻하는 이 표현에 관하여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화학의 발전 과정, 또는 자연 과학 전반을 돌이켜보면 방법론의 개발이 종종 과학의 진보에 거대하고 아주 극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미경의 발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원시적인 돋보기 두 개 또는 세개를 조합하여 탄생한 이 기구는 미세구조라는 새로운 세계를 전례 없이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중략~
올해 수상자를 선구적인 인물로 만든 이 방법론은 ‘푸리에 변환과 펄스기법을 NMR 분광법에 도입함으로써 그 감도를 10배에서 100배까지 증가시켰습니다. 여러분은 푸리에 변환과 펄스기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 머리를 가로저을 것입니다. 제가 비유하여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분광법이란 화합물을 포함하고 있는 시료에서 나오는 신호를 검출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피아노가 얼마나 잘 조율되어 있는지에 궁금하다고 가정합시다. 전통적인 ‘구식의’ 방법은 각 건반을 차례차례 두드리고 그 진동수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자, 현대식 피아노에는 88개의 건반이 있고 모든 건반을 하나씩 차례로 점검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게 되죠, 가령 10분, 즉 600초가 소요된다고 가정해 보죠, 이제 같은 결과를 얻는 휠씬 빠른 방법이 있는데, 여러분의 두 팔을 쫙 펼쳐서 모든 건반을 동시에 누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펄스실험을 한 것입니다. 들리는 음이 거북하지만 모든 건반의 음색이 그 속에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지만 어떻게 그 불협화음 속에서 각각의 음색을 분리해 낼 수 있을까요? 열러분은 수학적 분석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방법이 짐작 하는대로 푸리에 변환 법입니다.
오늘날의 빠른 컴퓨터는 1초 이내로 이 분석을 마칠 수 있고, 컴퓨터의 출력물은 각 건반의 음입니다. 따라서 푸리에 변환 법이라는 이 새로운 방법으로는 피아노 한 대의 조율을 점검하는 데 600초가 아니라 6초가 소요되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게 됩니다. 물론 구식방법으로 한 대의 피아노를 점검할 시간에 이 새로운 방법으로 100대를 점검할 수 있다지만 왜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지 의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절약된 시간을 다음 목적으로, 감도를 증가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계속하자면, 음의 크기가 작아 주변의 소음 때문에 음을 듣기 힘든 피아노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이 6초에 한 번씩 100번에 걸쳐 그 피아노의 모든 건반을 동시에 두드리고 그 결과를 합한다면 이 피아노의 낮은 신호를 검출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말하면 신호 대 잡음비를 10배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푸리에 변환 NMR은 1970년에 도입되면서 NMR 기법을 화학에 응용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제 이 방법을 사용하여 미량 물질이나 13C 와 15N 과 같이 존재비가 낮은 핵자기 원소에서 나오는 약한 신호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NMR기술의 아킬레스 건은 감도가 낮다는 것이었으나 이제 그 장애물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된 것 입니다.
그 이후 NMR 분야의 혁신적인 개발은 하나 이상인 둘, 셋 또는 그 이상의 진동수 차원을 도입한 것이며,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이 신기술 개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차원 NMR의 경우 다양한 길이와 간격의 펄스로 화합물 ‘피아노’을 두드립니다. 이 기술은 화학자들이 NMR 스펙트럼으로부터 관심이 가는 많은 특성인자들을 휠씬 손쉽게 찾아낼 수 있게 해주며, 엄청나게 복잡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스펙트럼을 쫙 펼쳐 주어 분석하기 쉽게 해줍니다. 마치 그림자 윤곽보다는 이차원 지도가 더 우수한 것과 같습니다.
이차원 NMR은 분자 내에서 어느 원자들이 화학결합으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느 원자들이 공간상 거리가 가까운지, 어느 원자가 화학반응에 관여하는지, 그리고 그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실험이 가능해졌으며 다차원 NMR 의 응용영역은 대단히 넓어졌습니다. 이 새로운 방법의 등장으로 최근 10년간 진행된 구조생물학 연구에 NMR의 활용이 필수 요건이 되었습니다. “
노벨상 시상문을 읽는 동안 두 가지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다.
하나는 리하르트 에른스트도 스티브 잡스처럼 정말 점과 점을 잘 연결했다는 것이었다. 에른스트의 최대 업적은 NMR을 고분해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분해능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푸리에 변환이란 수학 알고리즘을 과감히 기존 NMR에 적용 했다. 푸리에 변환방식은 NMR 이전에 적외선 분광광도계에 먼저 적용된 수학적 알고리즘이다. 이 분석장비는 현재 FT-IR (푸리에 변환방식 적외선 분광광도계)로 불리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
결국 에른스트는 최대 업적은 ‘푸리에 변환방식’이란 점을 ‘NMR’이란 점에 절묘하게 연결시켰다는 거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기존에 만들어진 것들을 연결하는 것이 뭐가 어려우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인터넷, 음악, 전화란 점을 연결하여 스마트 폰이란 위대한 발명품을 탄생시킨 것처럼, 에른스트의 ‘연결’도 깊은 통찰력과 많은 시행착오에서 얻어진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아무 점들을 그냥 연결시킨다고 위대한 결과물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생각보다 우주의 섭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가 속히 말하는 궁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이 궁합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깊은 통찰력과 부단한 노력이 수반 돼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노벨상 시상문에서 푸리에 변환을 기가 막히도록 쉽게 설명 해주었다는 것이다.
푸리에 변환을 피아노에 비유한 설명은 이 노벨상 시상문의 백미다. 사실 푸리에 변환이란 수학적 알고리즘을 수학의 언어로서 풀어내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도망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들이 도망가지 않게 했다. 이에 대한 고민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푸리에 변환’의 가치를 ‘피아노’란 악기에 투영시키면서 말이다. 이 덕분에 나도 ‘메타포’에 대한 묘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세상은 정말로 다 연결되어 있나 보다. 야구의 팔꿈치 통증에서 시작하여 MRI, NMR을 거쳐 메타포까지 왔으니 말이다. 세상에 널려 있는 ‘점’들을 어떻게 잘 연결시킬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보며 숙고해봐야겠다.
[참고자료 및 출처]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연구장비가 노벨 과학상 수상에 미친 영향’
-www.nobelprize.org
-과학과 기술, 기획시리즈, NMR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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