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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S-17 다이어리] #03. 내가 박사가 될 상인가?
Bio통신원(만다린)
< 퇴근이 없는 출근>
출처: https://www.vecteezy.com/vector-art/229613-female-scientist-vector-illustration
오후 9시
대부분의 대학원 건물이 그렇듯, 나의 연구실이 위치한 건물에도 여전히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이미 퇴근을 한 연구자들도 있지만, 그들이 모두 오늘의 연구를 마무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원생에게는 퇴근이 존재하지 않는다. 밤새 진행해야 하는 실험이 있는 때도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퇴근하여도, 정신적으로는 퇴근하지 못한 채 계속 연구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퇴근하고 연구실을 벗어났지만,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실험을 돼 뇌이고, 설계한 실험에서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만일 오늘 얻은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달랐다면, 그러한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문헌을 조사하고, 가설을 다시 세우고, 조건을 달리하여 다시 해 볼 실험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에는 꿈속에서까지 실험을 하고 결과를 정리하기도 한다. 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일상과 연구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연구하는 과정은 오롯이 내가 주체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내가 하기 나름이기에, 많은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연구의 방향이 있지만, 연구라는 자동차의 운전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고, 교수님께서는 잘못된 길로 빠져 헤매지 않도록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주시는 내비게이션의 역할만을 해주실 뿐이다.
애석하게도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나의 연구 성과는 내가 쏟은 노력에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큰 노력을 쏟아야만 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부분은, 대학원이 아니라 회사에 가더라도, 연구직에 종사하게 된다면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는 것일까?
5년 전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아 대학원에 왔다. 학부 시절 실험 수업 과정이 너무도 즐거웠고, 항상 좋은 결과를 받아 왔기에, 나는 스스로가 실험하고,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고, 결과를 정리하는, 일련의 연구 과정을 좋아하면서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잘하는 일이라서 좋아했던 것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마주한 연구는 내가 실험 수업에서 경험한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실험 수업과는 달리, 대학원생으로서 해야 하는 연구는, 누구도 답을 모르는 문제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문제조차 명확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일련의 가설 설정과 가설 검증 절차를 통해 답을 찾아야 했고, 내가 찾은 답이 옳은 이유를 많은 사람에게 설득시켜야 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 과정이 나의 의지나 노력과는 관계없는 여러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는 경우도 많았다 (ex. 연구비 상황, 실험 재료 및 실험 장비 상황, 등.).
늘 최선을 다해 매달리고 연구를 우선으로 생활했지만, 결국엔 가설 검증에 실패하기도 하고, 랩미팅에서 교수님께 혼이 나기도 하고, 열심히 공을 들인 논문을 의기양양하게 투고하였다가 리젝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나의 무능함에 실망하며, ‘내가 연구에 재능이 없는데, 이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연구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정말 연구를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대학원이라는 곳은, 내가 쏟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나, 잘 해낸 것에 대한 좋은 평가가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곳이다. 연구라는 것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잘 해낸 부분이 있어도 그에 대한 지도교수님의 칭찬은 아주 희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님께는 잘하는 것이 당연하고, 못하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시곤 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선배님들은,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어려움도 없이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할까? 내가 잘한다고 생각한 일이 좋아하는 일이 되는 순간, 더 잘하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기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순간들이 참 많다.
< 내가 박사가 될 상인가?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에 나오는 수양대군의 명대사이다. 이 명대사를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박사에도 관상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사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을 종종 보아 왔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박사가 될 상을 갖고 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게, 그 과정까지 즐기면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박사가 될 상이 아니라고 해서, 박사를 꿈꾸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변화할 수 있는 관상처럼, 박사가 될 상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꼭 재능이 있어야만 연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학위 과정 중에 더 많이 갈고닦아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 연구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잘한다면 좋겠지만,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잘하기 위한 노력만 멈추지 않으면 된다. 연구 과정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문제를 붙잡고 견디는 사람에게 아주 작은 힌트를 던져줄 뿐이니,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연구를 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문제를 마주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고민하고 매달릴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한 박사의 상일지도 모른다.
<연구와 등산>
종종, 연구라는 것은 산을 오르는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등산을 하며 발밑의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시선을 두면 주변 풍경이 모두 같아 보이고, 바뀌는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매우 높이 올라와 있고, 주변의 풍경은 너무도 달라져 있다. 연구하는 과정도 역시, 지금 나의 하루하루엔 아무런 성과가 없어 보이고, 내가 이룬 성과들은 너무도 작아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 시간이 쌓이다 보면, 지금보다 더 멋진 것들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재능이 없어도, 해낼 수 있다.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순간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오늘도 조금 더 힘을 내보자.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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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깨비의 과학 여행>을 수없이 돌려보고, 과학 시간을 제일 좋아하던 아이는, 정신을 차려보니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다. 대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생명을 전공하고 있지만, 인생을 더 많이 배워가고 있는, 5년 차 대학원생의 대학원 생활 이모저모를 담은 다이어리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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