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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많은 대학원생의 피땀눈물] 지구야 우리가 미안하다!!!!!
Bio통신원(변서현)
(흔한 실험실 쓰레기더미들. https://www.flickr.com/photos/manicstreetpreacher/2357527205)
코로나19 대유행이 계속되면서 일회용품 사용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다. [1] ‘그럴 수 있지…’ 하며 보다가 문득 든 생각. 코로나19 이전에도 그 어느 곳보다 거침없이 일회용품을 쓰는 곳이 사실 생명과학 실험실이 아니던가. 실험을 하면서 ‘내가 인류에 기여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에 해를 끼치는 것은 맞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각자의 실험실을 찬찬히 둘러보자. 수납장에 쌓여 있는 팁통들과 그 안에 들어있는 여러 크기의 플라스틱으로 된 팁들. 1.5mL E-tube부터 50mL conical tube, 또 여러 크기와 다양한 뚜껑으로 된 round tube까지 있다. 물론 더 작은 PCR 용 tube도 있다. 배양용 페트리 접시와 6 well부터 96 well, 384 well까지 종류도 많은 culture plate들도 보인다. 전부 플라스틱이다. 그뿐인가. 솜이 끼워져 있는 Serological tip들, 수십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Strainer, 나노미터 단위까지 내려가는 필터들, 역시나 크기별로 진열되어 있는 주사기도 있다. 정말 미세한 막이 끼워져 있는 DNA 추출용 키트의 존재도 잊지 말자. 실험실에서 우리가 만지고 사용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우리는 이 소모품들을 필요할 때 사용하고, 바로 위험폐기물 통 안으로 던져 넣는다.
이 소모품들은 절대 재활용되지 않는다. LMO에 노출되기도 하고, 바이오해저드일 때도 있으며, 의료폐기물일 때도 있어서 재활용할 수 없다. 실험실에서 쓰레기로 나갈 때에도 생활폐기물과 철저히 분리되어 배출된다. 우리 연구실이 있는 센터는 매주 월요일에 각 연구실별로 비닐포대에 꾹꾹 눌러 담은 실험 폐기물을 내보내는데, 매주 대여섯 봉지가 나오는 걸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만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일회용품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염 문제일 것이다. 재사용이 가능한 물품들을 직접 멸균 소독하는 과정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 중에 분명히 떠다니고 있을 여러 입자들이 묻을 수도 있고, 제대로 멸균된 것이 맞는지 신뢰하기 어렵다. 오래전의 실험실들에서는 Conical tube와 tip들을 증류수로 씻고 에탄올에 담그거나 오토클레이브로 멸균한 다음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각 실험실에서 직접 멸균소독한 것을 믿고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솔직히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매번 테스트를 해볼 수도 없지 않은가. 심지어 이렇게 소독하는 일도 노동력이 들어가고 인건비를 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연구실에서 많은 사람이 다 같이 사용해야 하는 소모품을 씻고 멸균해서 밀봉하고 정리하는 데에만 사람 한 명이 더 필요한데, 그럴 바에는 바로 뜯어서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품을 쓰자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플라스틱 말고도 일회용으로 쓰이는 물건들은 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갑과 마스크다. 역시나 오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데, 한 번 쓰고 버리기 위한 물건이었다. 썩지 않는 물건들이니 플라스틱 소모품들과 그 최후는 비슷하겠다. 실험 중간중간에 에탄올을 뿌려가며 쓰지만, 그건 장갑을 착용하고 있을 때 이야기다. 벗었다가 다시 끼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보관했다가 재사용하는 일은 정말로 많지 않았다. 실험동물실에서는 안에서 사용한 장갑과 마스크를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건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에는 의료진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물건들과 생명과학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이 일부 겹치면서 끊임없이 소모품의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마스크는 이미 코로나 유행 초기에 한번 폭풍을 겪었고, 지금은 그동안의 재고를 모두 소진했는지 라텍스 장갑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국내에 재고가 없는 경우도 있고, 있어도 가격이 세 배 가까이 올랐다. Strainer와 Tube들도 현지 공장이 멈춰 제품을 구하지 못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서 일회용품을 의도적으로 여러 번 사용하고 있다. 장갑은 다섯 번 이상 재사용하고, (XS 사이즈를 사용하는 후배들이 특히 걱정이 많다. 수요가 적어 공급도 적었는데 그것마저 끊겼다.) Strainer는 사용하고 나면 바로 증류수와 에탄올에 담가 씻어서 말린 후에 오염 이슈가 중요하지 않은 실험들에 재사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사용해온 회사의 팁도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회사 제품을 찾고 있는데, 이것도 여의치가 않다.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찾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결국 코로나19로 인해 강제로 일회용품을 아껴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실험하는 사람의 노동력과 품질 관리 비용 대신 일회용의 편리함을 선택한 결과가 이 수많은 플라스틱들이다. 최근 몇 년간 종이 빨대가 등장하고 ‘용기내 챌린지’가 이슈가 되는 등 생활에서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여러 캠페인들이 펼쳐지고 있는데 실험실은 딱히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변화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도 하다. 사람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어서 모르는 척 미루고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실험실로 끌어올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실험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지구가 살아 있어야 실험도 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지속 가능한 실험실’을 위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는 2024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2] 미국 Stanford 대학은 아예 ‘Sustainable Stanford’라는 페이지를 운영하며 연구실 폐기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3] 몇몇 바이오 관련 대형 회사에서는 ‘Greener Lab’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4][5] 아직 한국에서는 실험실의 환경문제에 대해 다루는 걸 보지 못했는데, 한 번쯤 다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환경에 대한 이슈는 언제 어디서나 나와야 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21213340000980
[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1368-8
[3] https://sustainable.stanford.edu/campus-action/buildings-grounds/buildings-initiatives/cardinal-green-labs/lab-waste
[4] https://international.neb.com/tools-and-resources/feature-articles/five-steps-to-a-greener-lab-a-roadmap-to-environmental-action
[5] https://www.thermofisher.com/kr/ko/home/new-ideas/life-in-the-lab/april-2020-green-issue/greener-life-in-the-la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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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으로 이미 출판된 지식이 아닌, 지식이 만들어지는 연구의 과정을 현장의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필자가 경험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 연구자들 간의 대화 등을 소재로 한국의 연구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작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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