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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망원경; Telescope in my brain]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아서 (4), 지금 이 순간, 나의 이름은 “존버”
종합 김민환 (2021-09-07)

처음 맞이한 죽은 자와의 대면. 그 기억은 아마도 경험하게 되는 누구에게나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싶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찾아올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니까. 나 역시 생각했다.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찾아올 나의 미래 이구나.

나에겐 추운 겨울날로 기억되는 군대 입대일과 같은 올해 1월 4일에 경험하게 되었다. 새로 맡게 된 프로젝트는 뇌기증자의 뇌를 사 후 기증 받아서 내가 쥐에서 주로 했던 실험을 적용해 보는 일. 하지만 나의 실험 방법은 건강한 뇌조직에서 볼 수 있는 실험이라, 사 후 얼마나 빨리 뇌조직을 적출할 수 있는가 하는 예상된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와 발맞추어 터진 코로나 사태, 그로 인해 모든 일들은 잠시 중단되었고, 실험 계획과 작은 연구비 지원 등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실제 실험은 6개월 이상 늦춰졌다. 그래서 그날 늦은 밤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 반, 허둥지둥 계획된 필요한 장비와 용액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만나기로 한 병원 별관 시체 부검실 옆 주차장에서 병리학과 소속 부검 전문 스텝과 만났고, 그 여자분 스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이 부검실로 가면서 경찰도 보고 뒤로 자빠졌다며, 시체 보는 게 괜찮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이 말은 농담일까 진담일까 잠시 생각하면서, 나는 “I am OK.”라고 대답했다. 93세 할머니의 죽음, 너무나 하얗고 노란 전혀 핏기 없는 다리와 팔은, 정말 하얀 고무로 된 옷을 입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눈도 감지 않으신 채, 입도 벌리신 상태였다. 그저 나에겐 어둠 속 조명 아래 몇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 무대 위에 소품들과 함께 나 역시 조용히 올라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날 우리의 두개골이 얼마나 튼튼하게 뇌를 보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뇌의 모습은 같지만, 상상 속에서 막연히 생각했던 질감과는, 그 무게와 크기가 큰 만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의사가 아닌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평소에는 잊고 생활하다가,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문자를 받고, 기증된 뇌 조직을 받으러 병원에 올 때면, 죽음에 관한 생각들이 더 많이 들었다. 이 일도 익숙해지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까? 과연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의 장기를 이식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 다른 사람 몸에서 신체 일부 장기로서 사는 일. 그리고 죽어가는 뇌의 일부를 적출해서 영양이 공급되는 인큐베이터에서 일부 뇌세포를 조금은 더 오래 살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실험하는 나 자신에 대하여.

영국에서 스위스로 옮긴 실험실에서 두 번째 포닥생활을 하던 3-4년 후, 영국의 유럽연합탈퇴 (Brexit) 결정을 얼마 앞두고, 실험실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되었고, 실험실원인 나로서는 함께 영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지원해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중 나의 실험 방법으로 인간 뇌 연구를 막 시작한 엘런 연구소를 방문해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 직장을 얻어 영국이 아닌 미국으로 다시 옮기게 되었다. 사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에게 연구소 생활의 적응은 참 오래 걸렸다. 아직도 적응 중인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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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었던 과학자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현실성이 많이 떨어져 보이는, 불현듯 집에 있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새벽에 차를 운전해 연구소를 달려가 무언가 열심히 실험하는 김박사도, 칠판에 열심히 뭔가를 쓰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도 아닌, 작은 가설일지라도 내가 한 실험을 가지고 발견한 것을 청중들에게 멋지게 발표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이것은 멋진 가설과 그에 따른 멋진 실험 결과가 따라야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연재의 제목인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는 과정은, 글쎄, 그냥 돌고, 돌아서, 돌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원에서 배운 실험의 과정이 세포 내 단백질, 혹은 세포 간의 교류였고, 그보다는 시스템이나 뇌 연결망에 따른 동물의 행동 변화를 보면 더 좋은 연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때그때 개인적 상황과 여건에 맞추어서, 실험실도 옮기고 다른 범주의 연구 쪽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실험에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는 human cellular/synaptic physiology 분야로 돌아왔다.

물론, 실험동물의 뇌가 아닌, 어찌보면 나 자신인, 인간의 뇌를 연구하고 싶다는 또 다른 동기 부여가 있었지만. 그런 면에서 여러 환경 변화 속에서 한 분야를 평생 계속해서 연구하시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 실험 방법을 배우고, 이 실험동물을 사용하면, 뭔가 더 흥미로운 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어찌 보면, 자연 속 어느 생물이든 우리 과학자들에게 무한 질문을 제공해 주는 것이고, 잠 (sleep)을 연구해온 매튜 워커 (Matt Walker) [1]의 관점처럼, 자신은 답을 찾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찾기 위해서 연구한다는 말이 더 타당한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나의 고민은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았는가, 찾지 못했는가 라기보다는, 과연 나는 나 스스로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뇌과학 책을 여러 권 쓰신 박문호 박사님[2]께서는 늘 “경력자”와 “전문가”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박사학위를 받고 한 10년 아님 장기간 연구를 이어 온 연구원이라면, 어떻게 실험을 하고, 어떤 실험이 될 실험이고, 어느 정도 하면 어떤 논문을 쓸 수 있는지는 척하면 척 일 것이다. 하지만, 이공계는 특히나 파고 들어가면 분야가 너무 세분화되어, 그 세분화된 곳에 빠져 다른 곳을 둘러볼 수 없는, 어쩌면 다른 곳을 둘러보기 싫어하는 경력자로 남을 수도 있다. 어쩌면, 세분화된 실험을 꾸준히 성공시키기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공부하는 전문가가 되긴 또한 쉽지 않다. 

특히나 이 새로 맡은 프로젝트는, 난 기초 뇌 (basic neuroscience) 연구자이지만, 아마 신약 개발하시는 분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머릿속으로는, 다 될 거 같고, 되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 그 성공 가능성은 누구도 모르고. 성공하지 못하면, 장기간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그냥 날려 보내는 것인가? 빛 좋은 개살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누구한테 들었던 말처럼, “교수님, 이 실험은 원래 안되는 것입니다.”와 “이 실험은 제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대학원 시절, 박사 자격시험 2번 떨어지고 마지막 3번째 볼 때,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 씨 대사처럼 “그래, 끝까지 한 번 가 보자” (아내와 바람난 상사를 옥상으로 불러서 했던 대사) 마음먹으며, 그래도 안될 경우, “땅끝 마을 한 번 가보고 싶다” 입버릇처럼, 같이 공부하며 시험 준비했던 대학원 동료들에게 말했던 기억도 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성취하지 못했을 때 그 허무함을 술과 담배로만 채울 수 없지 않은가 하며 아마도 생각했던 땅끝 마을. 쿨하게 “난 과정에 만족해, 그동안 많이 배웠어.”하며 돌아서긴 더욱 힘들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나의 상태는 “번 아웃”만 오지 마라 바라는 “존버”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발 물러서서 다른 프로젝트와의 병행과 다른 성공시킬 수 있는 실험들을 충분히 많이 고려하지만, 어쨌든 이 프로젝트로 인한 자주 실패하는 일상을 가진건 사실이다. 끊임없는 실험 실패에 대한 마음가짐, 꼭 넌 매일 틀렸다고 나에게 말하는 듯. 그 순간순간 감정을 넣지 않고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이 순간순간 감정을 빼 버린 실험 로봇으로 변신해서, 정해진 실험 순서 대로, 딱 3번 시도해 보고되든, 안되든 아무런 감정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인 노동만큼, 들인 노력만큼 결과를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늘 실패에 익숙한 과학자. 모든 실험이 성공할 수는 없다. 많은 실험들이 실패한다. 다만 실패에 길들여지지 않는 연구자이고 싶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에 병원에서 문자가 왔고, 보통 90세 이상의 노인 자연사 때와는 다른 몇 줄 설명이 덧붙여 있었다. 6살 남자아이이고, 뇌를 지나는 동맥 정맥 혈관의 문제로 인한 뇌의 뒤쪽 부분부터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으며, 계속 인위적으로 피를 밖으로 빼고 또 주입하면서 뇌는 부어있었고, 일주일 내내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었으며, 사망선고를 받은 시간도 최소 10시간은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뇌 기증 예정이 아침 9시라고. 그리고, 실험 후 며칠 후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꼭 우리 연구소로 아이의 뇌를 기증하길 원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갑작스러운 6살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나 역시 10살, 3살 아이를 둔 아버지인데,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젊으신 분이실 텐데... 나라면 이런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을까? 아마도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그와 동시에 난 최선을 다했는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든 실험을 해 보았는가? 더 많이 잘 해볼 수 있지 않았니?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만 계속 내 마음속에 며칠 맴돌았다. 다행히, 이 실험에서 작은 성공을 보았고, 이를 통해서 다른 방향의 프로젝트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받았다.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이 연구소가 나중에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끊임없는 프로젝트 실패로 인해 쫓겨나면 안 좋은 의미로 남을까? 다만,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임무에, 다른 연구자들과 서로 도우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순간순간 즐길 수 있으면 즐기고. 대부분 연구소, 혹은 회사 다니시는 분들도 비슷한 마음이실까? 연구소는 자율복 출근이지만, 카드 출입증 키를 허리에 차고 다닌다. 그래서, 병원에서 연락오면, 우선 카드키부터 가방에서 꺼내 허리에 차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 카드키만 차면 좀 달라진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열심히 발로 뛰고, 실험하고, 움직여지는, 나에겐 성룡의 턱시도[3]이다. 

어디에선가, 어쩌면 끝을 알 수 없지만, 열심히 뛰고 계실, 누군가는 하찮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세우신 가설과 그에 따른 실험, 발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시는 모든 연구원분들께 소리 없는 응원을 마음속으로 보내며, 이 “내가 원하는 연구를 찾아서" 연재를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앞으로는 뇌과학 관련된 책 이야기로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관련 자료 링크]

[1] https://lexfridman.com/matt-walker/ 

[2] http://www.yes24.com/Product/Goods/3100386 

[3]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814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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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

국내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박사 학위 후, 지금은 국외 뇌 연구소에서 실험하면서 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로 뇌과학 관련 책 소개 및 감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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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댓글 2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구글회원 작성글 권구*  (2021-09-07 13:59)
1
연재 잘 보았습니다! 뇌과학을 전공하고 국내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으로 많은 공감이 되었던 글들이었습니다.
회원작성글 김민환  (2021-09-08 01:47)
2
댓글 달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시는 일 잘 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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