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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많은 대학원생의 피땀눈물] 휴가, 갈 수 있을까?
Bio통신원(변서현)
(포스텍의 대학원생 Rest & Recharge 제도 도입 공지.
출처: http://phome.postech.ac.kr/user/indexSub.action?framePath=unknownboard&siteId=gsa&dum=dum&boardId=194407&page=1&command=view&boardSeq=10368170)
#1. 지난 5월, 포스텍 (포항공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백신 휴가’ 사용이 가능함을 공지했다. [1] 아직 일반 성인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모든 대학원생은 백신 접종 시점부터 그 다음날까지 이상 반응 여부에 관계없이 쉴 수 있고, 이상 반응이 있을 경우 병가를 추가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 9월 개강과 함께 포스텍은 대학원생의 ‘Rest & Recharge’ 제도를 시작했다. 국내 대학 최초의 대학원생의 연차휴가 제도다. 모든 대학원생은 1년에 10일씩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교직원과 동일하게 내부 시스템에 신청 후 지도교수의 결재를 거쳐 사용할 수 있다. (병역법상 전문연구요원은 별도의 제도로 관리된다.) 지도교수의 재량에 따라 추가 연차를 얻을 수도 있다.
먼저 이와 같이 대학원생의 휴가 제도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포스텍 대학원 최지훈 총학생회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이 문제 제기와 제안을 이해하고 공감한 대학본부에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제도가 공표된 9월 6일에는 총장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되었는데, 포스텍 김무환 총장은 교내 회보를 통해 ‘휴가는 그동안 연구실 자율에 맡겨왔으나, 자유롭게 휴가를 쓰지 못하는 학생을 위해 휴식 보장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대학에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모두가 행복한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서 휴식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함은 동의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각 학과의 교수님들이 대학원생의 휴가 제도의 정착에 도움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대학원생이 휴가를 가는 행위에 지도교수의 권한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아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학원생의 휴가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필자가 재학 중인 포스텍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휴가 제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학부생은 방학이 있고 박사후 연구원과 교직원들은 연차 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원생은 그 모든 제도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방학은 쉬는 기간이 아니라 수업이 없어 연구를 더 열심히 하는 기간이었다. 포스텍 대학원총학생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의 휴가는 연구실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는데, 정해진 일수 없이 편하게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곳도 있었던 반면 아예 휴가를 갈 수 없는 곳도 있었다. [2] 평균 휴가 일수는 8일이었으나 지정된 날짜에만 갈 수 있었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 필자 주변 생명과학 관련 연구실 학생들의 대부분은 여름에 3~5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가족의 중요한 행사나 질병 등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지도교수님께 휴가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휴식이 필요해서’ 휴가를 쓰거나 징검다리 휴일에 휴가를 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 어떤 연구실은 성탄절부터 신정까지 연구실 전체 휴가가 있지만 어떤 곳은 그렇지 않아서 같은 학과 연구실임에도 지도교수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다른 대학의 경우에도 찾아봤는데, 카이스트는 2020년 5월 <교수와 학생의 신의존중 헌장>을 통해 ‘교수는 학생의 전인격적 성장을 위하여 연구과제 참여 시간과 휴가를 학교가 관련 법규에 따라 정한 규정을 준수하여 결정하되, 학생의 정당한 의견을 반드시 존중하고 반영하여야 한다.’라고 공표한 바 있으나, 이후 어떤 제도가 실제로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지스트(GIST)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백신 휴가를 도입했으나, 수업 공결에만 해당하는 것이어서 연구 활동에 대한 휴가는 찾지 못했다. 다른 대학의 경우에도 연구실에 가는 대학원생의 휴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외국의 유명 대학에서는 ‘대학원생의 휴가 정책(Vacation Policy)’이 명문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는 1년에 15일의 휴가를 받을 수 있는데, 성탄절과 새해 첫날은 휴가 일수와 상관없이 쉴 수 있었다. [3]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은 1년에 4주, 근무일 기준 20일의 휴가를 쓸 수 있었다. [4] 하버드 대학의 경우 2019년 말 대학원생 노동조합의 파업을 계기로 대학원생의 노동 계약서를 수정, 2020년에 총 11.5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5]
그렇다면, 대학원생에게 휴가는 필수적인가? 대학원생은 왜 쉬어야 하는가?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이야기하면 휴가는 법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것이 된다. ‘노동자에게 휴가가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이 성립되고, 이는 이미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노동자의 권리 측면에서 수많은 논의를 거쳐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져 왔다.
대학원생의 교차하는 정체성 중 나머지 하나인 ‘학생’을 꺼내면 어떻게 되는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름지기 학생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방학’이 있다. 봄학기와 가을학기 사이, 너무 더운 여름과 너무 추운 겨울에 학업을 쉴 수 있는 시기이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의 방학은 어떨까? 연구실에 출근해야 하는 대학원생들에게 방학은 학과 수업과 조교 업무, 각종 세미나 등이 없어 흔히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연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알고 있던 방학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에게 왜 휴식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너무 철학적이니 차치하고, 대학원생에게 왜 휴식이 필요한지는 꼭 논의해 보았으면 좋겠다. 생명과학 분야로만 한정해서 보았을 때, 같은 분야의 대학원생들끼리 얘기하면 ‘우리가 하는 실험은 육체노동’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루 종일 서있기도 하고, 나의 생활리듬이 아닌 세포와 실험 생물들의 생활리듬에 맞춰야 해서 밤 11시나 새벽 4시에 실험을 하러 나오기도 한다. 농담 삼아 ‘해외에서 만들어진 실험 프로토콜에 Overnight이 있으면 이건 퇴근을 위한 단계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실험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생활패턴을 만들기가 아주 어렵다는 뜻이다. 야근과 교대 근무는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2급 발암물질인데, 대학원생이라고 해서 크게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 실험 자체가 강제적인 생활리듬 조절을 요구하는 힘든 일인 것이다.
또 한 가지, 대학원 학위 과정은 결국 인간의 가장 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을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다. 진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기에 참고 견디는 시간들이다. 대학원 과정도 학업이기에, 시간과 노력을 다하면 어떤 모습이든 결과가 나온다는 걸 대학원생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시간을 가리지 않고 휴식을 미뤄가며 하게 된다. 나의 체력보다 당장 필요한 결과를 좆아 손에 잡히는 일들을 가리지 않고 해내기도 한다. 물론 강제로 이걸 제재하는 시스템이나 사람도 없다. 이런 생활을 짧으면 2년, 길면 10년 가까이 지속했을 때 과연 학생의 건강에 문제가 없을까? 일상이 바빠 느끼지 못하는 사이,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있지는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학원 학위과정은 대한민국의 고3만큼이나 힘든 생활이다. 본인의 선택으로 학위를 시작했을지라도, 그 막대한 긴장 상태를 수년간의 장기전에 끊임없이 쏟아붓는 것이 평균적인 정신력과 체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구자의 ‘지속 가능한 연구’를 위해, 학생의 ‘지속 가능한 학업’을 위해 대학원생의 휴식은 보장되어야 한다. 아니, 강제하여야 한다.
[1] http://times.postech.ac.kr/news/articleView.html?idxno=21732
[2] 포스텍 대학원총학생회, <2020 POSTECH 연구환경실태조사>
[3] https://www.grad.ubc.ca/faculty-staff/policies-procedures/graduate-student-vacation-policy
[4] https://gradschool.princeton.edu/policies/student-vacation-time
[5] http://harvardgradunion.org/our-contract/contract-summary/#Holidays,-Personal-Days,-and-Vacation
[6] IARC Monographs Vol 124 group, Carcinogenicity of night shift work, Lancet Oncology, 20(8), 1059-105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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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으로 이미 출판된 지식이 아닌, 지식이 만들어지는 연구의 과정을 현장의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필자가 경험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 연구자들 간의 대화 등을 소재로 한국의 연구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작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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