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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거리는 커서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한 시간 만에 겨우 한 문장을 적어본다. 적어 놓은 문장을 또 한참 동안 바라보다,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내 지워 버리고 만다. 몇 문장 적어 내지 못한 것 같은데 벌써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 잠깐, 써온 내용과 써야 할 내용을 정리해 보고는, 한숨을 내쉬어 본다. 마치 뱉어내지 못한 숨 때문에 글이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도 첫 논문을 쓰던 3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이 과정이 조금이나마 수월해진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써 내려가 본다. 언제쯤 논문을 쓰는 과정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까. 논문을 작성하는 방법은 어디에서,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을 줄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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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한 나에게, 선배님들께서는 항상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논문을 많이 읽어 보아야 잘 쓸 수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나의 연구 분야의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다. 어떠한 선행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그러한 연구들이 어떠한 한계점을 가졌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논문을 많이 읽어 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어내기도 하고, 나의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둘째, 저자가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펼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논리 전개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논문은 저자가 가설을 증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여, 얻은 결과를 해석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유명한 저널에 발간된 논문들에 담긴 논리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논문을 구성하는 힘을 기르는 데에 도움을 준다. 내가 작성하고 있는 논문의 논리에는 허점이 없는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잘 쓰인 논문들을 잘 읽는 경험은, 논문 속 각 문장에 담긴 수없이 많은 고민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같은 의미를 가진 문장이라도, 논문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장 구조나 단어, 어조를 이용하여 표현하기 위해, 저자는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한다. 학부 시절, 해외 저널에 투고할 논문을 작성할 때, 나의 아주 미숙한 초안을 지도교수님께서 검토하시고 수정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지도교수님께서 내가 깊은 고민 없이 서툰 영어로 적어 놓은 한 문장에 사용된 단어 하나를 수정하시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을 고민하셨다. 그날 나는 나의 촌스러웠던 한 문장이 교수님의 손을 거쳐 아주 세련된 한 문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가 논문을 작성할 때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담고 싶은 의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어조를 선택하여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이후부터는 논문을 읽을 때나 쓸 때, 논문에 사용되는 어휘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한번, 잠시 잊고 있었던 선배분들의 말씀을, 그리고 교수님의 모습을 곱씹어 본다.
‘잘 쓰고 싶다면, 잘 읽어보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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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얻은 데이터들을 논문으로 쓰는 과정은, 구슬로 하나의 목걸이를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실험하여 얻은 결과를 분석하여 나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예쁜 구슬들을 모으는 일이다. 하지만, 예쁜 구슬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예쁜 목걸이가 저절로 완성되는 일은 없으며, 예쁜 구슬들을 모두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값비싼 목걸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구슬들을 사용하고, 어떻게 배치할지에 따라서 완성된 목걸이의 가치가 달라지듯, 논문을 작성할 때에도 좋은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논리에 맞게 구성하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연결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제한된 분량 안에서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 중 논리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를 메인 데이터로 선별해 내어 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기에 모든 데이터가 소중하게 느껴지겠지만, 나의 논리를 강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없어도 논리의 전개에 지장이 없을 데이터들은, supplement data로 제시하거나 논문 전체 스토리에서 과감하게 제외해야 한다.
종종, 좋은 논문을 쓰려면 좋은 데이터들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실험 자체에만 집중하거나, 얻어낸 수많은 데이터들에 잠식될 수 있다. 때문에,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끔은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모아 놓은 구슬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너무 구슬만 욕심내어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지고 있는 구슬들을 어떻게 꿰어내어 보배로 만들 것인지, 혹은,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구슬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 보는 과정이,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들이다.
<뿌린 만큼 거둘 수는 없을지라도, 뿌려야만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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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항상 우리가 매달리고 노력을 쏟은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반복되는 실패에 때로는 정답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인지, 답답한 마음에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뿌린 만큼 거둘 수 없을지라도, 뿌려야만 거둘 수 있다. 내일의 발전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필요하다. 더 잘 쓰기 위해서, 비록 오늘은 잘 쓰지 못하더라도, 일단 써보자.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묵묵히 오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집중해 보자.
<졸업모를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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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나 박사학위를 밟고 있는 과정에서 우리는, 졸업모를 쓰기 위해 논문을 쓴다. 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며, 데이터를 분석한다. 하나의 논문을 완성해 내는 과정이 이토록 긴 호흡을 가진 일인데 반해,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나 홀로 멈추어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느껴질 때가 있다. 대학원이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은 친구들의 취업과 이직 소식이 들리는 날이면, 나의 초조함과 불안감은 한 뼘 더 자라난다.
하지만, 뿌린 만큼 거둘 수 없는 대학원 생활과, 꿰어야 만 보배가 되는 구슬들을 눈앞에 둔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조건을 바꾸어 다시 실험해 보고, 잘 쓰인 논문 한 편을 더 읽어보고, 논문을 한 자라도 더 적어보는 일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졸업모를 쓰려는 우리도, 졸업모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이미 졸업모를 쓰신 선배분들께서도 졸업모를 쓰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기만 하셨던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노력과 인내를 겪으신 결과이다.
어쩌면 졸업모를 쓴 후에, 졸업모의 무게는 더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석사 혹은 박사 학위자에게 기대되는 연구 역량이, 대학원생에게 기대되는 역량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거운 졸업모를 쓰기 위해서, 그리고 졸업모를 쓴 이후에도 그 무게를 단단히 견뎌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왜 연구를 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는 졸업을 위해 논문을 쓰고 있지만, 졸업모를 쓴 연구자가 된 이후에는, 머리 위 졸업모에 달린 학위의 무게를 생각하며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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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모를 쓰려는 자, 그 무게를 잘 견뎌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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