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가 너무 많다. 일주일 전에 모조리 가져다 버렸는데, 어느새 이렇게 쌓였는지 모르겠다. 다섯 개의 쓰레기통이 가득 찬 거로 모자라 두 개의 의료폐기물 통도 넘쳐흐른다. 도대체 이 많은 쓰레기를 불과 일주일 만에 누가 어디서 만들어낸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실험을 열심히 한 결과라고 보기에는 지난주에 제대로 해낸 실험도 없는데……. 분명히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과학 연구를 하고 있지만, 지금 꼴을 봐서는 쓰레기로 더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랩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정기적으로 연구실을 청소한다. 정돈이 덜 된 실험실 책상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연구실 바닥을 걸레로 닦는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 동안 쌓인 쓰레기와 폐기물을 버린다. 놀랍게도 무려 다섯 개나 있는 우리 연구실 쓰레기통은 매주 거의 반 이상이 찬다. 에이, 무슨 쓰레기통 다섯 개가 많은 양이냐고? 책상 위에 올리는 조그마한 쓰레기통 얘기가 아니다. 우리 랩에 있는 쓰레기통은 높이가 거의 내 다리 길이만 한 커다란 통이다. 가끔 다들 열심히 실험할 때는 이 커다란 쓰레기통 다섯 개가 일주일 만에 전부 가득 차기도 한다. 심지어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연구실 인원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어림도 없다. 우리 연구실에 실험 인원은 고작 일곱 명이다. 일곱 명에서 이 많은 쓰레기를 손쉽게 생산해낸다.
그렇다고 우리가 특별히 엄청나게 낭비를 하거나 함부로 기구를 사용하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아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분자생물학 실험은 꽤 많은 기구를 일회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까다로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쥐를 만졌던 장갑으로 소중한 세포들을 다룰 순 없지 않은가? 섞이면 안 되는 두 세포의 배지를 같은 파이펫 팁으로 빨아들여 옮길 수도 없고 말이다. 이렇게 실험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계속 쓰레기를 만들게 된다.
실험실에서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각계각층에서 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당연히 실험자 본인들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문제는 이런 노력이 의도치 않게 정확한 실험과 효율적인 연구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하다 보면 가끔 내 파이펫 팁이 어딘가에 닿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계속 쓸 수 있는 것을 버리기 아까워 잠시 망설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이 작은 선택이 내 일 년의 노력과 그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날릴 수 있으므로 할 수 없이 버리고 새것을 꺼내 사용한다.
비슷하게, 섞이면 안 되는 서로 다른 두 용액에 같은 시약을 넣어줄 때 처음에는 보통 파이펫 팁 하나만 사용할 생각으로 실험을 시작한다. 같은 파이펫을 쓰더라도 용액에 닿지 않게 시약을 잘 떨어트리면 두 용액이 섞이지 않게 잘 실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첫 용액에 시약을 넣고 나면 매번 찝찝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내가 눈으로 봤을 때 안 닿기는 했는데, 시약을 떨어트리는 과정에서 용액이 위로 튀어 올라 파이펫 팁에 묻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이럴 때 정말 미칠 것 같다. 몇백 원짜리 파이펫 팁 하나 가지고 뭘 그러냐고? 용액이 두 개뿐이면, 그래, 팁 하나나 둘이나 비슷하니 그냥 한 개 더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열 개 혹은 스무 개의 용액이라면 말이 조금 다르다. 열 배 스무 배의 비용이 더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 배 스무 배의 쓰레기가 세상을 어지럽힌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매번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쓰레기를 만들고 세상을 더럽힌다. 사실 그냥 눈 딱 감고 모른 척하면 돈도 안 버리고 쓰레기도 안 생기고 높은 확률로 연구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 피해는 단순히 몇만 원 수준이 아닌, 100배 혹은 그 이상의 나비효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이를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은 채 돈을 버리고 세상을 더럽히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연구자는 어쩔 수 없이 한 치의 의심이라도 없애는 방향의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그 결과가 어떤지 알기에 참 씁쓸하기도 하다.
그럼 이런 실수를 줄이면 되지 않냐고? 예시를 든 것뿐 이런 선택의 상황이 항상 실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험을 진행하다 보면 계속 사용해도 될 것 같긴 한데, 실험의 정확성과 신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게다가 이런 쓰레기들은 플라스틱처럼 쉽게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모두를 조금 더 행복하게, 사회를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힘찬 포부로 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그저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을 뿐이다.
요즘에는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는 등의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노력도 또 한 번 실험자를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세울 뿐이다. 얼마 전에는 평소 거래하던 회사의 파이펫 팁 포장재가 비닐에서 종이로 바뀌었다. 아, 근데 이거 꽤 난감하다. 우리는 이 팁을 세포 배양에 사용해야 한다.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깨끗이 클린 벤치 안에 집어넣어야 한다. 벤치에 들어가기 전 이 팁들은 바깥세상의 지저분한 공기와 각종 오염물질에 더러워진 상태다. 따라서 최소한 알코올로 깨끗이 소독하는 간단한 과정 정도는 거쳐야 벤치 안으로 들어가 세포와 만날 수 있다. 그런데 포장재가 종이라니, 난감하다. 알코올을 뿌리면 다 젖어버린다. 소독이 안 된다. 도저히 쓸 수가 없다. 눈물을 머금고, 지구를 더럽힌다는 죄책감에 슬퍼하며 비닐로 팁을 포장해주는 다른 회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시도들이 수포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고 이런 노력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안타까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다. 정답은 없지 않을까? 쓰레기가 무섭다고 사람을 살리는 연구를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가 누군가의 살아가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기에 마냥 무시하고 실험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할 테다. 최대한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도록, 하지만 실험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어렵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거다. 관심을 두고, 계속 노력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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