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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 당하는 ‘잉여 실험동물’…태어난 목적이 뭘까요
Bio통신원(김재호 기자)
실험실에서 태어나 도살당하는 ‘잉여 실험동물’에 대한 경각심이 일고 있다. 최근 <사이언스>는 독일 시사 주간지 <디 자이트(Die Zeit)>에서 탐사보도한 내용을 통해 「독일, 과도한 실험동물을 도살하는 게 범죄인지를 따져본다(Germany weighs whether culling excess lab animals is a crime)」는 소식을 전했다.[1] 동물 인권 단체들이 항의하는 것에 대해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 실험실에선 실험동물 개체 수를 의도적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2년 전 유럽연합의 추정에 의하면, 2017년 유럽연합 내 실험실에서 940만 마리 동물을 실험에 사용했을 때 실험실에서 사육한 1천260만 마리가 연구에 활용되지 않고 도살당했다. 생쥐의 약 83%, 제브라피시(줄무니 열대어)의 7%에 해당하는 수치다. 생쥐는 공업용 이산화탄소로 살처분된다.
‘모든 생명이 목적을 가진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실험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도살당하는 동물들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독일의 동물 인권 활동가들은 연구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새로운 연구 품종을 번식시키는 과정에서 태어난 잉여 실험동물들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실험동물들의 개체 수가 실험에 참여하는 동물들에 비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실험실은 공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잉여 실험동물’들을 처치한다.
지난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었다. 실험실에서 태어나 자란 실험동물들 중 잉여 개체가 살처분되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잉여 실험동물 3분의 1이 살처분
독일 중부에 있는 헤센주는 지역 대학과 실험 관련 기관들에서 과도하게 실험동물들을 도살하고 있는지, 그게 범죄인지를 조사하고 있다. 2021년 6월, 이 같은 사태에 대해 동물 인권 단체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동물을 살해하는 경우라며 검찰에 여러 번 고발했다. 조사 대상은 프랑크푸르트, 마르부르크, 기센, 다름슈타트에 있는 대학 실험실들과 헤센주에 기반을 둔 막스 플랑크 연구소, 백신 관련 연방 기관인 파울 에를리히 연구소, 여러 민간 연구기관들이다. 한 회사는 222마리의 작은 물고기를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도살해 고소당했는데, 이미 기각됐다. 다른 혐의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독일 연방 식품농업부는 잉여 연구용 실험동물의 3분의 1이 독일에서 사육되고 도살된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도살은 독일에서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독일 연방 행정법원은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 달걀(sex eggs)을 개발하는 연구를 장려했다. 병아리가 태어나기 전에 성별을 파악함으로써 갓 태어난 수평아리를 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수평아리 도살은 올해 1월까지 불법이 아니었다. 검찰과 법원은 아직까지 형사처분을 하지 않았다.
2019년 6월, 독일의 고등법원은 실험실 내 척추동물을 단순히 경제적 이유 때문에 도살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 사안은 실험동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달걀을 생산하는 시설에서 수평아리를 도살하는 문제까지 포괄했다. 달걀 생산공장은 암컷 병아리만 선호한다. 전 세계적으로 약 70억 마리의 수평아리들이 파쇄기나 가스실에서 살처분된다. 더욱 충격적인 건, 암수 구분하는 방법이 병아리의 항문(총배설강)을 성감별사들이 손가락으로 눌러서 직감적으로 가려낸다는 사실이다. 죽어간 병아리들 중에는 분명 암컷 병아리도 있었을 것이다.[2]
잉여 실험동물의 문제와 같이 수평아리에 대한 살처분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잉여 실험동물을 동물원 먹이로 주자?
독일의 동물보호법과 유럽연합 규정은 동물연구에서 합당한 이유 없이 척추동물을 죽이는 자에게 벌금형이나 최대 3년의 징역형을 부과하고 있다. 막스플랑크협회(Max Planck Society)에서 동물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안드레아스 렌겔링은 “실험동물을 도살하는 담당자 등이 포함된 연구 커뮤니티는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독일 연구자들 사이에 분위기는 침울하다”라고 말했다. 얀 터커맨(Jan Tuckermann)은 동물연구 승인을 담당하는 지역위원회에 소속돼 호르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독일 연구자들의 분위기는 암울하다”라고 밝혔다.
동물 인권 단체들의 항의에 대응하여, 일부 연구기관들은 이미 좀 더 효율적으로 연구품종을 배양하거나 연구 수요와 공급을 맞춰 잉여 실험동물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험동물 사육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시도도 있다. 몇몇 독일 과학자들은 유전자 변형 동물 중 실험에 활용되지 못한 실험동물을 동물원에 먹이로 제공하길 원하기도 했다. 규정이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의사들 모임(Doctors Against Animal Experiments)에서 일하는 한 연구원(Silke Strittmatter)의 주장에 따르면, 동물보호법에 근거한 10년 된 독일 판결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호랑이는 적절한 사육장이 확보되는 경우에만 번식이 허용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원칙이 다른 동물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험실에 있는 잉여 실험동물들이 자연사할 수 있을 때까지 시설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잉여 실험동물들의 숫자가 시설의 수용 능력 한계치를 금방 넘어설 것이지만 말이다.
한편, 어떤 연구실은 실험동물 관리 소프트웨어를 재프로그래밍했다. 이전에는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실험동물을 도살하는 작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잉여 실험동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연구실 소프트웨어를 잉여 실험동물들을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관하는 기능으로 바꾸거나 다른 옵션을 추가하는 것이다.
유전자 편집기술이나 냉동 정자·배아 이용하기
잉여 실험동물을 양산하지 않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연구용 실험동물의 수요와 공급을 적절한 수준에서 매칭하기 △크리스퍼(CRISPR)나 기타 유전자 편집기술을 활용해 여러 세대에 걸쳐 실험동물을 번식시키지 않고 단일 세대에 머물도록 하기 △실험용으로 변형된 연구품종의 계통을 유지하기 위해 실험동물 개체군을 만드는 대신 냉동 정자나 배아를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해동하기. 몇몇 연구기관들은 잉여 실험동물 학살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는 2017년 이후, 연구에 사용되지 않는 실험동물의 수가 약 30% 감소했다.
미국에선 연간 1천만∼1억 마리 이상의 실험동물이 활용되고 있다. 이 숫자는 추정치로서 정확히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의 동물법과 정책연구소 방문연구원이 래리 카본(수의사)은 “미국에선 사내 윤리 위원회를 제외하고 (사법 기관 등) 외부 사람들에게 잉여 실험동물 도살 숫자를 알려주지 않고 살처분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국내에서 실험동물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6년 2백8십7만 8천907마리에서 2020년 4백1십4만 1천433마리로 늘었다. 기업(약 214만 마리), 대학(약 115만 마리), 국공립 기관, 의료기관 순으로 실험동물을 많이 사용하는 걸로 나타났다. 실험동물 중에는 설치류인 마우스(생쥐)가 가장 많았다. 고통에 따른 분류에서 가장 큰 고통에 해당하는 고통 등급 E에 해당하는 실험은 전체에서 42% 수준인 175만 7천 마리였다.[3]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잉여 실험동물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1.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germany-weighs-whether-culling-excess-lab-animals-crime
2.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07969&ksr=1&FindText=sex%20eggs
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72812330004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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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원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와 연극, 음악을 좋아한다. <동아일보>에 '과학에세이', <포스코투데이>에 '과학의 발견'을 연재한 바 있으며, '학술문화연구소(http://blog.naver.com/acacullab)'를 운영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자유롭게 김광석 이야기》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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