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0부터 10까지] 눈썹 문신
Bio통신원(워킹맘닥터리)
1-1.
내가 살던 고시원은 출퇴근하는 병원과 실험을 하는 연구실, 야간 수업이 있는 학원 모두를 멀지 않게 다닐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근처에 학원이 많았기 때문에 가성비 좋은 맛있는 음식들을 사 먹기에도 좋았고, 웬만한 카페들은 아침 7시부터 문을 활짝 열거나, 혹은 24시간 운영을 했기 때문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달달한 커피나 빵도 사 먹을 수 있었다.
고시원 공용 주방 찬장에는 라면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었고, 밥통에는 흰쌀밥이, 냉장고에는 김치가 있었는데,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어도 되었다. 덕분에 굶지는 않고 나름 즐겁게 살았던 것 같다.
나는 5만 원을 더 주고 창문 있는 방에서 살았다. 덕분에 다른 방보다 쾌적하게 환기가 가능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 세탁물들을 널어놓을 수 있는 긴 봉 1개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는데, 세탁이 끝난 옷을 옷걸이에 걸어 매달면 무척 건조한 날에도 가습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작은 방 크기에 맞추다 보니 짐도 간소했다. 어차피 병원에서는 가운을 입고, 병원 실내화를 신고, 마스크를 끼고 일할 것이고, 실험실에서는 실험 가운과 실내화를 신고 일할 것이고, 학원은 편한 후드티와 레깅스, 운동화만 있어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꾸미는 것에 전혀 관심 없으니 옷, 화장품, 액세서리 등도 필요가 없었다.
병원에는 마음이 잘 맞는 동료가 있어서 좋았고, 실험실에는 석박사 수련, 포닥 생활을 하며 지내왔던 친구와 교수님들이 계셔서 좋았고, 학원에는 나보다 어린 동생들의 활기 넘치는 기운이 좋았다. 때문에 일이 많고 바쁘다 해도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1-2.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헛헛했다.
언젠가는 교수님이 될 거라는 어릴 때의 패기는 점점 사라지고, 지금의 생활에 그대로 머물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일과 생활에 익숙해지면 편하고 좋을 것 같았는데, 몸이 편해지니 마음에는 다시 걱정이 차올랐다.
하이X레인넷, 사X인 등의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혹시라도 채용 공고가 나온 곳은 없는지 살피는 것은 당연한 하루의 일과였다.
그러던 중 남편이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채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과 나는 근무지가 달라 주말부부로 살고 있었는데, 만약 이 연구소에 채용된다면, 고시원 생활을 처분하고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었다.
주중 5일 근무, 비교적 자유로운 출퇴근, 무기계약직.
이제 연구실을 꾸려나가는 시작 단계였고, 기초 실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실험실을 셋팅해나가며 연구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과 병행하느라 예전처럼 연구에 매진하지 못했는데, 이젠 다시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X인 사이트를 통해 원서를 접수했다. 1명을 채용하는 자리에 나 말고도 2명이 원서 접수를 했는데, 원서 접수한 사람들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명 다 해당 분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과계열 전공자였다.
왠지 합격할 것만 같았다. 병원 원장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인수인계할 내용들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1-3.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거금을 들여 눈썹 왁싱과 눈썹 문신을 받고, 머리를 염색했다. 남편은 나를 백화점에 데려가서 정장 바지와 재킷, 흰 블라우스와 실크 스카프를 사주었다. 신혼 때 샀던 뾰족한 구두를 꺼내 먼지를 털고 오랜만에 신어보았다.
예상대로 최종 면접에는 나만 올라가게 되었다. 수요일 오후 2시 면접이었다.
오전에 미용실에 들러 드라이를 하고, 깨끗하게 걸어놓은 정장 세트를 입은 다음 면접 시간보다 2시간 일찍 근처 카페에 도착하여 면접 예상 질문을 들여다보며 연습하고 있었다.
카페에 도착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면접이 취소되었습니다. 오늘 안 오셔도 됩니다."
아... 어차피 뽑을 거니까 면접을 생략한다는 말이구나?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면 될까요~?^^"
"... 아니오, 이번에 채용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탈락시키는 경우도 있구나...'
그 와중에 눈썹 문신과 머리 염색에 지출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용이 어긋난 이 상황에서 돈 계산을 하는 내 모습이 속상했다.
그 전에도 대학, 연구소 등에 apply를 했던 적이 여러 번, 불합격하는 것도 여러 번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무덤덤하게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특히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간의 생활들이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지치게 만들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쉬고 싶었다.
결국 퇴사를 결심하고 고시원을 정리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