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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은 그냥 가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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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많은 대학원생의 피땀눈물] 논문 쓰는 건 처음이라
종합 변서현 (2022-06-03)

극도의 긴장, 불안이 대학원생을 휘감아버렸다.
(출처: https://thecapthegownandthepursuitofhappiness.files.wordpress.com/2013/11/stress.jpg)


정말,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쓸 짬이 생겼다. 실제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보다는, 정신적 여유가 생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동안 글을 부지런히 쓰지 못한 이유는 다른 종류의 글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간 가꿔온 나의 개인 프로젝트에 대한 논문을 쓰는 중이다. 정확히는, 이미 원고를 완성하고 몇 번의 제출과 거절을 경험하고 있다.

논문 초고의 워드 파일을 처음 만든 건 2021년 8월 말이었다. 완성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몇 년 간 만든 결과들을 정리하고, 생각해왔던 논리대로 초고를 쓰는 데만 세 달이 걸렸다. 그동안 파워포인트에 정리해 놓았던 그래프들을 모두 벡터 이미지로 다시 구성해야 했는데, 내가 Adobe Illustrator를 이렇게 많이 다루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쓰다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논문의 성격 상 대용량의 데이터가 많아서, 파일 크기를 줄이는 데에도 이젠 도사가 되었다. Introduction 부분을 쓸 때는 학위논문계획 (Thesis proposal) 발표 이후 한 번도 켠 적 없었던 Endnote를 다시 열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학위논문계획서와 내용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 당시에 썼던 참고문헌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Endnote와 MS Word의 연동은 연구자에게 신적인 존재라고 감히 말해본다.)

내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연구실의 교수님께 초고를 보내 드린 것이 11월 말. 결과를 설명하는 데 있어 기술적인 오류가 없도록 검토해 주셨다. 특히 분야가 서로 달라서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Methods 부분에서 비어 있던 분석 방법들도 이때 추가했다.

그다음에는 같은 분야에 계신 교수님 몇 분께 초고를 보내고 리뷰와 교정을 부탁드렸다. 논문을 학술지에 제출하기 전에 사전 리뷰를 받는 것이다. 이 과정이 약 세 달 남짓 또 소요되었는데,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이때였던 것 같다. 랩미팅이나 교수님과의 개인 미팅 등에서 찾아내지 못한 허점들이 우르르 발견되었다. 필요하다고 생각해 넣은 데이터가 삭제되고,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해 뺐던 데이터를 다시 넣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워드 파일에는 온갖 색깔로 삽입과 삭제의 흔적이 입혀졌고, 그럴 때마다 날짜를 바꾼 새로운 이름의 파일들이 저장되었다. 교수님들과 주고받는 메일들도 눈덩이가 커지듯 불어났다.

이렇게 점점 바뀌어 가는 원고를 처음 만들었던 초고와 Figure들과 비교했을 때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을 온전히 마주해야 하는 제1저자인 나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소모해야만 했다. 그동안 연구실 내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평가와 질타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만큼 정신적 타격이 있었다. 실패에 익숙해지고 동료의 평가를 덤덤히 받아들여야 하는 게 연구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논문 쓰는 건 처음인 박사과정 연구자는 아직 훈련이 덜 되어 있었다. 특히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사람들이 아닌 선배 연구자들에게 처음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라 긴장을 몇 배로 했다. 이 과정을 차분히 버텨내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고, 친절한 언어로 리뷰해주지 않는 교수님들께 화가 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해온 연구에 대한 회의감이나 패배감도 많이 느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지도교수님과 주변 선후배들, 친구들에게 쓸데없는 감정풀이도 참 많이 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스트레스의 신체화’ 증상을 겪은 것도 이때일 것이다.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 어깨 근육 뭉침, 역류성 식도염 등은 대학원생의 고질병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해보는 것으로.) 논문을 쓰고 여러 달의 평가를 거치는 동안 비행기를 탄 것처럼 귀가 멍하고 꽉 막히는 느낌이 일상에서 자주 느껴졌다. 갑자기 강하게 ‘찌릿’ 하는 느낌이 와서 하던 일을 멈추는 일도 있었다. 귀에 종양이나 염증이 생긴 건 아닌가, 청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긴장성 두통’ 진단을 받았다. 어깨에서 시작된 근육 뭉침이 목을 거쳐 머리까지 와서 귀를 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스트레스성 질병이어서, 결국 고용량의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처방받았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보다는 나아졌는데, 요즘도 가끔 약을 먹는다. 주변의 대학원생들도 이 때쯤 몸이 가장 많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여기까지 마친 게 4월 초, 지도교수님의 마지막 확인을 거치고 내가 직접 학술지에 내 논문 원고를 제출한 날이 4월 말이다. 다른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쓸 때에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배들이 논문 쓰는 걸 볼 때도 그저 ‘힘들겠다.’ 고 생각만 했지 내 상황에 이입하지는 않아서 정말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학위 과정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내용이고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힘들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아까워서라도 버텨야 했다. 금요일 저녁에 연구실에서 홀로 남아 논문을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제출했는데, 모든 걸 털어낸 듯한 후련함이 참 좋았다. 물론 지도교수님은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말이다.

처음 논문을 학술지에 제출하고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4번의 거절을 당했다. 지금은 또 다른 학술지로 제출할 준비를 마쳤다. 생각보다 제출하고 거절 메일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빨라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좋다. 처음 목표로 설정했던 학술지에 거절당했을 때에는 교수님들께 거친 리뷰를 받았을 때만큼 힘들고 우울했는데, 지금은 맷집이 생긴 건지 꽤나 멀쩡하다(!). 예전에 한 선배가 제출과 거절이 반복되는 과정을 ‘사다리를 타고 한 칸씩 내려온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딱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한 칸씩, 한 칸씩 조심히 내려오다가 나에게 맞는 학술지를 찾으면 열쇠 돌아가듯 잘 맞아 들어가지 않을까?

이번 글은 연재된 다른 글에 비해 많이 우울한 편이다. 논문을 쓰면서 느낀 감정들을 나름대로 정제해서 글에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새어 나오는 감정의 기억들이 문득문득 튀어나온다. 아직 출판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을 다른 대학원생들에게 ‘당신의 그 감정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나의 경험담을 글로 썼다. 본인의 지친 마음을 자책하지 말고,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겠다. 우리는 학위 과정의 가장 큰 산을 넘는 중이다 😊

  추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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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서현 (포항공과대학교 융합생명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논문으로 이미 출판된 지식이 아닌, 지식이 만들어지는 연구의 과정을 현장의 연구자이자 대학원생인 필자가 경험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 연구자들 간의 대화 등을 소재로 한국의 연구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작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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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gnugnu  (2022-06-0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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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요! 저는 아직 논문으로 정리도 못하고 있는데, 대단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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