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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망원경; Telescope in my brain] 박문호 편, “뇌, 생각의 출현”, 그리고 “빅 히스토리 (Big history)” 에 관하여
종합 김민환 (2022-06-16)

뇌, 생각의 출현


난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로 부끄러운 점이 많았던 학위 과정을 보냈다.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학습 능력의 부족함이었다. 그로 인한 문제는 사실 학점 이수라는 졸업 요건 및 박사과정 진학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난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생물학 공부를 하면서, 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어려운 물리학과의 이론 수업과, 프로그래밍 실습수업을 수강하다, 실험실에 돌아와 다시 온갖 생물학 용어 대잔치인 논문들을 읽으면서, “아 놔,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식으로 버겁게 끌려다녀서는 이도 저도 안 되겠다는, 내 스스로 자책하는 일 또한 잦았다.

그러던 중 생명과학과 대학원에서 열린 기초 뇌과학 수업은 흥미로웠지만, 한 학기 동안의 한 과목의 수강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학위 과정을 마치고, 미국 오리건 주에서 망막 신경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첫 포닥 생활을 시작하였다. 미국 국립보건원 기준으로 그 당시 최저 임금 계약직이었다고 하지만, 교환 학생이란 신분을 벗어서 받은 첫 월급에, 난 미국 백화점에 가서 까만색 스니커즈 신발을 사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부엌과 침실이 붙어있는 조그만, 유난히 냉장고 소리가 큰 스튜디오 방에서, 밤에 창문 너머 멀리 보이는 다운타운의 불빛을 보면서, 어떤 연구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그렇게 혼자 미국으로 떠난 아들 사는 모습 보고 싶다고 고맙게도 직접 방문해 주신 부모님. 그때 아버지께서 혹시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 주셨고, 졸업 즈음 신문 광고에서 본 박문호 박사님의 “뇌, 생각의 출현" 책 [1]과 몇 권 다른 한글로 쓰인 책들을 부탁드렸다. 그렇게 받게 된 아버지의 선물이었던 이 “뇌, 생각의 출현"이란 책은, 단순히 뇌 과학 책이겠지 생각하고 읽게 되었지만, 나에겐 참 놀라운 책이었고,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에겐 큰 의미(혹은 화두처럼 아직까지 스스로에게 남아 있는 중요한 질문 같은)로 남아 있다.

어쩌면,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와 호주의 매쿼리 대학교 교수님인 데이비드 크리스티안(David Christian, Macquarie University, Sydney, Australia)의 테드 강연(TED talk) [2]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Big History Project)” [3]가 더 널리 잘 알려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나만 몰랐을 수도 있지만), 10년보다 훨씬 전인 2008년에 전자공학을 전공하신 박문호 박사님은 이 책을 출판하셨고, 지구 상에 가장 똑똑한 생명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뇌,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하게 되는 이 신비로운 생각의 출현 과정을 이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즉, 우주의 생성에서부터, 태양계, 지구, 그 안에서 생명의 탄생 및 진화, 그에 따른 뇌의 작동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학위를 마치고,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시험이란 없어 생각하며, 물리학, 생물학, 뇌과학의 단편 지식들에 허우적거리다 첫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며 읽게 된 이 책은, 나에게 “네가 배운 모든 단편적 과학 지식들은 (많은 부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다 연결되어 있어, 내가 설명해 줄게, 이 책을 봐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초신성 폭발과 뇌 이미지를 합쳐 놓은 책 표지는 생명 탄생 연결 고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디자인이다. 우리는 모두 초신성 폭발로부터 왔고, 다시 우주 먼지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 있다. 모든 과학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운 지구과학과 물상(혹은 물리), 그리고 이과대학 물리학과 학부 시절, 일반 물리학, 일반 화학, 일반 생물학을 모두 필수 과목으로 이수하면서, 그 연결성에 대해서는 물리학과 화학에서의 약간의 정도, 그리고 그 이외에는 참 다르게 느껴지고, 분리된 학문처럼 나에겐 느껴졌다. 특히 물리학과 생물학은 멀게 느껴졌고, 그나마 대학원을 생물 물리학 분야로 관심을 갖게 해 준 책, 어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의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 [4] 정도의 물리학자가 바라본 생명에 관한 해석, 의견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뇌, 생각의 출현"을 비롯한 최근의 빅 히스토리 관련 서적들은, 과학자로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구의 위치 및 다른 과학분야와의 연관성을 큰 틀에서 이해, 그리고 일반인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과학적 질문들과 그에 대한 가설들, 그리고 약간의 대답들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알게 되어 읽게 된, 빅 히스토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지구에 대한 이야기, 로버트 헤이즌(Robert Hazen)의 “지구 이야기(The story of earth, the first 4.5 billion years, from stardust to living planet)(2012)" [5] 책은 그런 면에서 참 흥미로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변천 과정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얼마나 알고, 어떤 가설들과 그에 따른 증거들을 가지고 있을까? 추석날 환한 보름달을 보면서, 감상에 젖으며 소원은 정말 많이 빌어 봤지만, 난 한 번도 왜 달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지구의 자전주기와 지구를 도는 달의 공전 주기가 같은, 우리는 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지도 더 깊이 생각하고 찾아본 적이 없다. 초기에는 달이 지금보다 훨씬 지구와 가까웠으면, 엄청난 조석간만의 인력이 용암처럼 끓는 지구를 당겼다 놨다 했으며, 지구 자전 속도도 훨씬 빨라, 하루가 5시간이었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일 년에 몇 센티미터씩 지구로부터 달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우리의 푸른 지구를, 탄생부터 검은 지구, 파란 지구, 회색 지구, 빨간 지구, 하얀 지구, 녹색 지구 등으로 역사적 변화로 기술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본 후에도, 바다의 생성 및 생물체의 생성은 대답보다는 궁금점이 더 많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만약 다시 중, 고등학교 때의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혹은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 된다면, 지구과학(혹은 빅 히스토리 관련 내용들)을 가장 중요하게 배우거나,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상상을 해 본다. 우리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지구의 탄생 및 변천, 그 이전의 빅뱅부터. 그리고 만약 우주의 기원 및 기본 입자들에 관심 있으면 물리학 분야를 공부하길 권하고, 주기율표에서 볼 수 있는 물질들의 성질에 관심이 더 있으면 화학 분야를 공부하길 권하고, 지구에 나타난 생명체, 진화, 유전자에 관심이 있으면 생물학을 권하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대학원 시절, 교환 학생 신분으로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우연히 물리학과에서 연구하시는 한국분 형을 만난 적이 있다. 그 형은 연구주제로 중력 가속도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실험하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막연히 외운 9.8 m/s^2의 더 정확한 값을 측정하기 위해서. 나 역시 연구소에서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하루살이로 살지만, 어쩌면 상황이 주어져,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가설을 세우고, 답을 구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지 않은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직접 그런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혹은 생업이 과학과 상관없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극도로 세분화된 한 과학 분야의 일가를 이룬 사람을 훌륭한 과학자라고 부르며, 그중에 운이 좋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과학분야의 노벨상을 타기도 한다. 하지만 물리학자인 션 캐롤(Sean Carroll)의 말처럼,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사람들(대부분은 책 출간 후)과의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 [6]를 만들고, 이 팟캐스트를 들은 지구 반대편 어디에 있는 과학을 대한 꿈을 꾸는 젊은 과학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노벨상 수상보다 더) 정말 멋진 일 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문호 박사님처럼 멋진 과학책 저술 및 과학 운동을 하시는 분이 있다는 건 내게도 참 배울 수 있어서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방송 매체를 통해서 접했던 박문호 박사님의 인터뷰 중 하나로 왜 과학 공부를 하시냐는 질문에, “어린 시절 넓은 들판에 서서 대지를 바라보며,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를 포함한 이 자연에 대해서 꼭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런 뉘앙스로 대답하셨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와 같은 문장을 공유하면서 이번 글을 마칩니다. 
 

뇌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의 풍경화를 그리는 것.

일생 동안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 있지 않은 느낌과 감정과 생각들
의식의 다층적이고 복잡 미묘함이
투명한 가을 하늘처럼
스스로 환해질 수는 없을까.

(중략)

언젠가는
흐릿한 윤곽들이 스스로
뚜렷한 색감과 전체의 울림으로 드러나는
풍경화가 될 때까지

뇌가 그리는 생각의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을 때까지

생각을,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 것.

 

[관련 자료 링크]

[1] 뇌, 생각의 출현. 박문호 저. Humanist

[2] David Christian’s TED Talk: https://www.ted.com/talks/david_christian_the_history_of_our_world_in_18_minutes?language=en 

[3] https://www.bighistoryproject.com/about 

[4] 생명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본 생명현상. 한울과학문고. http://www.yes24.com/Product/Goods/5702691 

[5] 지구 이야기,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의 역사. 로버트 헤이즌, 김미선 역, 뿌리와 이파리.

Robert M. Hazen, The Story of Earth, the first 4.5 billion years, from stardust to living planet

[6] Sean Carroll’s Mindscape Podcast: https://www.preposterousuniverse.com/po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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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

국내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박사 학위 후, 지금은 국외 뇌 연구소에서 실험하면서 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로 뇌과학 관련 책 소개 및 감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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