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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스펙트럼 장애, 고래와 어떤 연관성 있을까
Bio통신원(김재호 기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유인식 연출)가 화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하 자폐)’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역)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어려운 사건들을 해결한다. 특히 우영우는 고래를 지극히 사랑한다. 고래에 대해 인간이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꿰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를 구상한 문지원 작가는 왜 자폐와 고래를 연결시킨 것일까? 참고로 문 작가의 전작 영화 「증인」(이한 감독, 2018)에서도 자폐를 가진 지우(김향기 역)가 나온다.
「범고래 등대」(제랄도 올리바레스 감독, 2016) 역시 자폐와 소년, 범고래의 우정을 다룬다. 실생활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던 소년은 TV 속 범고래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동물보호관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천천히 자폐 소년과 범고래가 교감하도록 도와준다. 이 영화는 자연이 곧 치유라는 걸 빼어난 영상과 이야기로 보여준다.
물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에서도 언급되지만, 자폐에도 다양한 수준이 있으며, 자폐를 지닌 이들은 각각의 환경에서 성장하고 생활한다. 고래 역시 그 종류와 생활환경은 모두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꼭 고래처럼요. 같은 고래라도 대왕고래나 긴수염고래는 혹등고래와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와 사회적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폐와 고래의 상관성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 상징과 습성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추측은 해볼 수 있다.
1천 명 중 1∼2명꼴로 나타나는 자폐증은 영어로 ‘autism’이다. autism의 어원은 그리스어 autos으로 ‘자신(self)’을 뜻한다. 이 단어를 통해 주변 상황보다는 좀 더 자신에게 더 많이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autism은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파울 오이겐 블로일러(Paul Eugen Bleuler, 1857~1939)가 만들었다. [1, 2]
홀로 노래 부르고 외치는 고래와 자폐인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폐인들은 외로워 보인다. 혹등고래 역시 고독한 경향을 드러낸다고 한다. 1992년 이후, 과학자들은 세상에서 제일 외로워 보이는 고래를 발견했다. 이를 <뉴욕타임스>가 2004년에 보도한 바 있다. 종을 알 수 없는 이 고래는 52 헤르츠의 저음역 주파수 부근에서 독특한 소리를 만든다. 문제는 그 소리에 대해 그 누구도 응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를 배회하면서 혼자 외치고 다니는 것이다. 그것도 최소 12년 동안 거의 홀로 생활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외치는 자폐인과 이 고래는 닮았다. [5] 하지만, 고래는 사회적으로 교감하고 집단생활을 영위하는 동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사람만이 자폐증을 갖는 게 아니다. 고래 역시 자폐증의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자연에는 얼마나 많은 신비로움과 다양성이 존재하는가. 해양 생물학자 나오미로즈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야생 수컷 범고래의 사회적 역학을 연구했다. 수년 동안 32마리의 범고래를 연구했는데, 그중 1마리는 이상하게 행동했다. 예를 들어, 몇 분 동안 뒷지느러미로 반복적으로 물을 때리는 ‘꼬리로 마구 때리기’를 보인 것이다. 이 범고래는 어미 범고래를 제외한 범고래들과 교류하지 않았다. 보통 범고래가 매우 사회적인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
남방긴수염고래가 헤엄치는 모습. 자폐와 고래는 어떤 면에서 매우 닮았다. 사진=위키피디아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반적인 징후는 다음과 같다. △눈 마주침 피하기 △유아기의 옹알이를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음 △관심을 나타내기 어려움 △지연된 언어 능력 △다른 어린이나 돌보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덜하고, 아마도 물건에 더 많이 관심을 보임 △상호 게임을 하는 데 어려움 △냄새, 질감, 소리, 맛 또는 사물의 모양에 대한 민감도 증가 또는 비정상적인 반응 △일상의 변화에 대한 저항 △반복적·제한적·비정상적인 장난감의 사용 △단어나 구의 반복 △자극을 포함한 반복적인 동작 또는 움직임 △자해 등. [1]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 그러나 자폐를 가진 이들 중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경우다. 우영우는 그동안 읽은 책을 거의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천재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래들 중 머리가 좋은 경우가 많다. 몸무게 대비 최의 크기를 계산하는 수치(대뇌화 지수: Encephalization quotient)로 보면, 인간은 7, 침팬지나 다른 유인원은 2보다 좀 더 높다. 그런데 돌고래는 4∼5, 범고래는 약 2.5이다. 특히 돌고래 뇌의 피질은 인간의 대뇌 피질보다 더 복잡해, 뇌 기능의 적어도 한 척도에서 돌고래는 인간을 앞설 수 있다. [4] 똑똑한 고래를 자폐아들이 지닌 명석함에 비유하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문지원 작가는 아마도 고래라는 포유류가 주는 고독함, 신비로움, 선함, 웅장함, 똑똑함, 다양성 등이라는 상징을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자폐를 가진 이들 역시 다양하고, 때론 외롭고, 흔하진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매우 똑똑하고, 어떤 경우엔 선하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고래처럼 자폐인들도 이 세계를 홀로, 때론 함께 항해하고 있다.
<참고문헌>
1. https://ko.wikipedia.org
2. https://www.etymonline.com/search?q=autism
3. https://www.wired.com/2014/01/kia-autistic/
4. https://www.nbcnews.com/sciencemain/inside-mind-killer-whale-6c10404143
5. https://www.nytimes.com/2004/12/21/health/science/song-of-the-sea-a-cappella-and-unanswere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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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원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와 연극, 음악을 좋아한다. <동아일보>에 '과학에세이', <포스코투데이>에 '과학의 발견'을 연재한 바 있으며, '학술문화연구소(http://blog.naver.com/acacullab)'를 운영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자유롭게 김광석 이야기》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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