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6월 8일 포스텍 생명과학관 화재 당시 모습.
(출처: [포토] 포스텍 화재 4시간 만에 진화, 국민일보,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49467&code=11131000&sid1=soc )
어렸을 때 유행했던 어린이용 만화책 중에 <OO에서 살아남기> 시리즈가 있었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로 시작해, 사막, 빙하, 아마존, 지진 등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극한 환경이나 재난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들을 어린이의 시선에서 설명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무인도에서 물 구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먼 훗날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해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심어주었다.
두 달 전 포항공대의 생명과학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아직 원인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으나, 그 건물에서 연구를 하던 모든 연구실들은 급하게 짐을 싸서 다른 건물로 이사해야 했다. 내가 있는 연구실은 멀리 떨어진 다른 건물에 있어서 크게 문제는 없었고, 연구실 옆 비어 있던 공간에 피해 연구실이 들어오면서 공간을 재배치하고 공용 공간을 정리하는 등의 할 일이 조금 생겼었다.
이런 일은 정말 수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한 대형 사고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대학원생이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겪고 싶지 않은 것들이 바로 재난들이다. 한 순간에 사람의 정신력을 시험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지만, 한번 발생했을 때 공동체를 동시에 비상 상황으로 밀어 넣는 무서운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최우선으로 걱정하고 있는가? 물어보면 단언하건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연구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데이터와 샘플들이다.
내가 학부생이었던 2012년에, 대학의 한 연구용 건물에서 전기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때 건물이 1층부터 3층까지 완전히 불탔는데, 이유는 1층 연구실에 있던 1kg의 고체 나트륨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새벽에 처음 불이 났는데 이 폭발성 물질 때문에 물을 전혀 뿌리지 못해 진화가 늦어졌다.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다들 배웠을 것이다. 고체 나트륨은 물과 만나면 폭발한다.)
이때 동기들과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걱정은 “그 건물에 있던 대학원생들 졸업 어떡해?”였다. 새벽에 불이 났고, 초기 진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모든 것들이 불탄 후였다. 당시 건물 3층에 우리 학과의 학부생 실험실습실이 있어서 학부생들도 샘플이 불탔으면 어떡하나, 하고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있다. 학부생인 우리의 샘플도 멀쩡할지 알 수 없었으니, 대학원생들의 데이터와 샘플은 어땠겠는가. (학부생들의 샘플은 사고 며칠 후 조교님이 각서를 쓰고 건물에 들어가 꺼내 오셨다.) 하물며 당시는 클라우드도 널리 쓰이지 않아 외장하드에 데이터들을 백업해 놓으면 다행인 시기였다. 그 건물에 있는 대학원생들의 졸업은 괜찮은 건지, 논문은 괜찮은 건지, 데이터는 다 살아있는 건지, 햇병아리 학부생 주제에 수많은 걱정들을 쏟아냈었다.
그로부터 5년 뒤에 일어난 것이 2017년 포항 지진이다. 대낮에 한창 실험을 진행하다가 지진이 났고, 지진과 동시에 지역 전체에 정전이 나면서 인큐베이터와 원심분리기 안에 있는 샘플들을 그대로 두고 건물의 모든 냉동고가 내뱉는 사이렌들을 들으며 건물 밖으로 탈출했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클라우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어서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데이터가 날아갈 걱정은 전혀 안 하고 냅다 건물 밖으로 나갔었는데, 누군가는 데스크톱 본체를 들고 뛰어나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외장하드를 가지러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흔들리는 정도나 지진 대비 훈련이 전무했던 걸 생각해보면 지진 직후 목숨이 아닌 다른 걸 먼저 챙기는 행위는 정말로 위험했다. 하지만 많은 대학원생들이 실제로 그렇게 다시 들어가 소중한 데이터들을 끌어안고 나왔다.
이후 약 1시간 여 만에 전기가 복구되면서 내부로 돌아왔는데, 나는 당시 아주 중요한 실험을 하던 중이었다. 마우스 샘플을 가지고 실험하던 것들을 최대한 마무리하느라 여러 번의 여진을 느끼면서 저녁 8시까지 연구실에 혼자 남아있었다. 중간에 원심분리기를 돌려놓은 5분 동안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타일이 다 부서져 널브러진 화장실 벽을 보고 공포를 느끼면서도 말이다. 다음날 샘플 분석까지는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연구실에 나와 일을 한 뒤, 도망치듯 포항을 벗어나 본가로 향했었다. 내 실험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정신을 지배한 결과였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못쓸 샘플들이라고 생각하고 관두었겠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최근에 발생한 화재 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에 불이 시작되어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외벽을 타고 불이 번져 건물 내부에서 피해를 적게 입었지만, 건물 전체에 소화용수를 뿌리면서 모든 것이 물에 젖었다. 사용하던 컴퓨터와 연구노트를 포함한 모든 것이 물에 젖어 곰팡이가 폈다. 점심시간에 핸드폰만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많아 아이패드나 이어폰 같은 물건들도 완전히 ‘침수’되었다. 샘플들은 못쓰게 되었고, 장비들은 틈새 사이사이로 재와 물이 한데 섞여 들어갔다. 졸업하고 멀리 취직해서 떠난 친구들도 연락이 왔는데, 제일 먼저 물은 것이 그 건물에 있는 동물들과 세포주들은 멀쩡한 지였다. 나조차도, 데이터는 백업을 해놓았을 테니 실험 재료인 동식물들과 세포주들만 멀쩡하길 빌었던 것 같다.
피해 연구실의 대학원생들은 경찰의 화재 감식이 끝난 후 건물에 들어가서 개인 물건들과 실험 도구들, 장비들, 자료들을 모두 직접 가지고 나왔다. 급한 대로 컴퓨터들은 개인 돈으로 먼저 구입한 뒤 피해보상 청구를 했고, 실험에 필요한 도구와 장비들은 살려서 다시 쓸 수 있는지, 아니면 새로 구입해야 하는지 판단해 견적을 냈다. 그 와중에 캠퍼스 내의 어느 건물로 이사 갈지 교수님 및 학과행정팀과 논의해 정해야 했고, 또 실험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서 다른 연구실 실험대를 잠시 빌려 실험을 했다. 다들 모이면 각자의 데이터와 샘플들이 멀쩡히 잘 있는지 물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재실험을 해서 복구할 수 있는 데이터면 다행이고, 질소탱크가 잘 버텨주어 세포주가 녹아 없어지지 않았으면 다행이었다. 화재 건물의 동물실에 있던 실험쥐들은 청결도의 문제 때문에 다른 실험동물실로 옮기려면 6개월이 넘게 소요되는 바람에, 동물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계속 화재 건물에 출입하는 대학원생도 있다.
대학 인트라넷 게시판에는 화재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대학원생들만 일을 다하고 있다는 성토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학 본부와 학과 행정팀이 복구와 보상 문제를 두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본인의 학업과 연구를 0순위로 두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먼저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연구를 못하게 되는 정체기를 최대한 줄이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대학원생들의 멘털이 아주 멀쩡해서 이렇게 나선 것일까? 그건 절대 아니었다. 대학 교육의 수혜자이기도 한 대학원생들을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아서 직접 나선 것일 뿐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가까운 심리적 충격을 경험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나마 대학의 상담센터가 피해 연구실 학생들에게 위로 선물과 심리 상담을 제공하며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있다.
두 번의 화재 사이 10년 간 변한 것은 클라우드가 보편화된 것 정도로 보인다. 많은 대학들이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의 메일링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원드라이브나 구글 드라이브 등 클라우드를 같이 제공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에도 원드라이브 1 테라바이트(TB)를 기본 제공하고 있어서, MS 데이터센터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백업한 데이터들은 안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외에 연구실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바뀐 것은 무엇일까? 데이터와 샘플을 모두 잃은 연구자에게 괜찮다고 희망을 말해주는 사람은 있는가? 재난 상황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고 실재적 도움을 제공할 사람은 있는가? 재난 상황의 예방과 대피 이후, 피해 복구를 위한 프로토콜은 어디에 있을까?
대학원생의 <재난에서 살아남기>,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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