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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노트] 연구실이 불탔다니,
종합 곽민준 (2022-08-25)

연구실이 불탔다니


연구실이 불탔다니, 아직 믿기지 않는다. 대학원 생활 동안 정말 별일을 다 겪었고, 이제는 상상할 수 있는 웬만한 실패와 좌절은 다 경험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충분히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오만이었다. 나는 아직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막상 일이 닥치자 정말 당황스러웠고 눈앞이 캄캄했다. 물론 내 멘털 탓을 할 가벼운 상황은 아니긴 하다. 이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니 사실 그 누구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이건 정말 선을 세게 넘어 버린 거다. 참, 어쩌다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사건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 우리는 여느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칼국숫집에서 점심 식사 중이었다. 이제 음식이 도착하고 막 젓가락을 들기 시작한 순간, 내 앞에 있던 형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 뭐라고?!
…….어??!!! 아 진짜? 랩에 불이 나? 심하나? 어디서 난 건지 못 찾고?
아……. 그래, 뭐, 한번 찾아봐라. 일단 그럼 우리도 돌아가 볼게"

랩에 불이 났다고 한다. 혼자 점심을 따로 먹고 실험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곧 연기 때문에 눈앞이 뿌예지기 시작했단다. 소식을 듣고 혹시라도 큰일일까, 아쉽지만 젓가락을 내리고, 새것이나 다름없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를 남겨둔 채 곧바로 랩으로 향했다. 혼자 연구실에 남은 사람이 위험하지는 않을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아까는 들리지 않던 경보음 소리가 이제 들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진 듯했다.

"아니 지금 여기 사람들 전부 불 어디서 났나 찾고 있는데 안 보여. 조금만 더 찾아보고, 근데 이제 나가야 할 것 같아. 연기가 엄청 많이 난다."

작은 불은 아닌 듯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많이 흥분되어 있다. 큰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던 바로 그 순간, 우리 차 옆으로 소방차 두 대가 지나갔다. 건물 근처에 가보니 이미 더 많은 소방차가 도착해있다. 연기도 엄청 난다. 불도 보인다. 건물에서 조금 떨어져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칼국수가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든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바로 저 건물 안에 우리의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뿌직, 파악!’

건물 외벽 일부가 바닥에 떨어졌다. 위치가 익숙하다. 아마 3층 저 정도면 우리 연구실, 아니면 교수님 오피스? 불안하다. 하필 불이 보이는 위치가 참 공교롭다. 나 대신 다른 사람이 피해 보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필 내 자리 근처에서 불이 치솟는 걸 보니 너무 당황스럽다. 소방관 선생님들이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이 더운 날씨에 저 두꺼운 옷을 입고 저 무거운 장비를 들고 저 뜨거운 불길 안에서 얼마나 덥고 힘들겠는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앉아 쉬시는 소방관들을 보고 있자니 참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분들의 수고스러운 노력과 우리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 보고 있으면 뭐하나, 스트레스밖에 더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연구실 사람들 모두 현장을 벗어나기로 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다 같이 영화나 보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영화관에 도착해 상영 시간을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불이 나던 그때 연구실 안에 있던 동료가 갑자기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 뒤쪽도 조금 당기는 것 같고 머리가 띵하니 어지럽다고 했다. 그 건물에 워낙 안 좋은 유독성 물질이 많다 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곧바로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고, 대기 장소에서 이미 도착해있던 아래층 연구실 대학원생 두 명을 만났다. 몸이 안 좋던 동료는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하여 금방 퇴원했다. 이번 사건으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가장 잘된 일이다. 아픈 동료가 검사를 받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로 함께 시간을 때우다가 같이 저녁을 먹었고, 왠지 모르겠지만 찝찝한 기분에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근처 산책로를 여기저기 배회하다 늦은 밤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웠더니 연구실 동료가 보내준 SBS 8시 뉴스 하이라이트 영상이 도착해있었다. 놀랍게도 우리 연구실이 뉴스에 진출한 것이다. 썸네일에 보이는 뻥 뚫려버린 창문 너머로 책상 뼈대만 남고 다 사라져 버린 내 자리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아직 건물에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웃기게도 뉴스 속 영상의 한 장면 덕분에 내가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낱 같이 품고 있던 희망을 쿨하게 놓아버리기로 했다. 문득, 고등학생 때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연 ‘이공계 학과 대탐험’이라는 캠프에서 과학자로의 내 꿈이 뉴스에 한 번 나와보는 거라고 어딘가에 적었나 발표했나 했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날 나는 이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원하는 대로 입학 후, 학부, 대학원 총 7년 반을 지나 드디어 뉴스에 내가 속한 연구실이 등장했는데, 상상했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창문도 없고, 불도 꺼져있고, 책상과 냉장고는 다 부서져 버린 참담한 모습. 슬프거나 화가 나진 않았고, 그냥 어이없는 상황에 황당해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어쩌면 인생 가장 충격적이었던 하루가 지났다. 이날이 아마 6월 8일이었나? 그러니 두 달 조금 넘게 지났다. 이제야 마음을 내려놓고 그날 있었던 이야기와 솔직한 심정을 글로 담담히 써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주변 분들이 참 많은 걱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불이 난 그날, 사실 나는 크게 절망하지 않았다. 다른 피해자분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보아 개인 손해만 300만 원에 달하고 연구 자료와 데이터도 전부 날아가 버렸지만, 나는 충분히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현실이 녹록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것을 잃은 건 괜찮았지만, 다시 그걸 되찾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화재 복구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불이 난 생명과학관은 출입금지가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 생활할 수 없는 상태다. 연구실 장비는 전부 타버려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보험금을 받는 것도 간단하지 않은 일이고,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본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와 어른들의 입장은 더 복잡한 듯했다. 

이런저런 고민들과 여러 사람과의 대화 끝에 결국, 나는 그냥 도망치기로 했다. 지도교수님, 아니 이제는 전 지도교수님께서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맞게 올바른 대처를 하는 것이라고 해주셨지만, 솔직히 내 생각에는 그냥 도망이다. 연구실 복구에 애쓰는 몇몇 동료들을 두고 새로운 연구실로 거취를 옮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데로나 도망치진 않았다. 도망을 치기 위해 고개를 돌려보니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곳에 너무나 괜찮은 세상이 숨어있었다. 연구실을 옮기는 게 내가 먼저 떠올린 생각은 아니었기에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고, 전문연구 요원 등의 문제로 방해물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매우 만족한다. 너무 좋은 분들이 흔쾌히 도움을 주셨고, 덕분에 어쩌면 불이 나기 전보다 더 좋은 상황이라는 생각도 든다. 최악의 일이 벌어졌지만, 최선의 길을 찾은 것 같아 기쁜 마음이다.

10년, 20년 후 미래에 2022년 6월 8일 SBS 뉴스에 등장했던 화재사건을 내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지도교수님께서는 ‘지금은 슬프겠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덕분에 나랑 만나서 새로운 걸 많이 배울 수 있으니까 더 잘 될 거야. 같이 잘해보면 되죠’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실 너무 맞는 말이다. 위기는 얼마든지 기회가 될 수 있고, 이번 화재가 내 인생에서 최악의 위기로 남을지, 최고의 기회로 남을지는 어디까지나 내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 그러니 한번 잘해보려 한다. 오늘 이 글이 랩 노트 연재 마지막 글이다. 당분간은, 불타버린 진짜 랩 노트를 새로운 연구로 채워나가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화재를 반드시 좋은 기회로 만들어 보려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직은 쓰라린 이 아픔을 잘 극복하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 다시 한번 나의 랩 노트를 기분 좋게 모두에게 공유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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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준

랩노트 (혹은 연구노트), 과학자의 모든 실험과 연구 과정을 기록하는 노트죠. 그러나 여기에 연구자들의 일상이 담기지는 않습니다. 과학은 자연을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니, 사실은 연구 대상을 만나 이론이 만들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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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하늘을달려라  (2022-08-26 09:22)
1
어떻게 저 상황에서 영화를 보러갈수가 있는지.....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보아 개인 손해만 300만 원에 달하고"..........
제가 느낄때 지도교수님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꺼진 느낌이셨을겁니다.

학부 부터 7년반이면, 3년정도는 동거동락하셨을건데...
글을 읽는 내내 여러모로 거북해서 굳이 댓글 남깁니다.
회원작성글 슬픈바다  (2022-08-26 11:04)
2
불을 같이 끄지는 못하겠지만, 영화를 보러 가시려 했다는 상황 자체가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ㅎㅎ 요새 MZ 세대 다운 생각인 듯 하여 좀 씁슬합니다

게다가 본인 자리 주변(?)의 발화라면 내가 뒷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나? 주변을 잘 챙기지 못했던가? 적어도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걱정 하는 척(?) 이라도 해야할텐데요 ㅋㅋ 그 와중에 깨알같은 300만원은 뭡니까 ㅎㅎ

사람이 안다쳐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정작 연구실 첨단 장비들 하다못해 딥프리저나 센돌이만 해도 수천은 할텐데... 게다가 학교나 지도교수님들 멘붕은 어쩔

똑똑하신 분일지는 몰라도 상당히 씁쓸한 부분이 곳곳에 묻어나는 글이군요 ㅋ
회원작성글 안녕난세포야  (2022-08-26 12:23)
4
와 끔찍하다.... 백업을 잘해놔야겠네요...
구글회원 작성글 Ji*******  (2022-08-26 14:51)
5
꼰대라고하면 꼰대 마인드 일 수 있지만, 이 글을 보고 요새 MZ세대의 전형적인 서구의 개인주의로 위장한 말도 안돼는 이기주의적 성향, 내 자신의 이익과 손해만이 가장 우선인 것을 이 글로 잘 서술 된 것 같네요.

저런 긴급한 상황에서 영화를 보러갈 수 있는 마인드, 그리고 가장 큰 피해가 개인손해 300만원이라고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 글쓴이의 연구에 대한 마음가짐도 알 수 있겠네요.

참으로 씁쓸한 시대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매우 암울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회원작성글 whitewolf  (2022-08-26 16:04)
6
기고자분 자존심이 강하신 분 같네요.
화재의 원인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글내용으로만 보면 본인의 피해나 당시의 대응이나 주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상황의 심각함이나 중요도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계신지 책임감을 느끼고 계신 분인가 싶습니다.

고작 300만원 개인손해는 말씀하시는데,
사실 다른 동료분들의 손해만 해도 이미 몇배는 될테고, 교수님의 경우 그간 일구어오신 인프라들을 다 날리셨는데..
본인들 쓰린 마음 다독이며 그래도 어린 친구인데 상처받을까 싶어 모진말은 안하셨던 것 같은데요

아직 학생이신가요?
아직 학교니까 실수해도 괜찮겠지 싶으신건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이 연구책임자니 저런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시지만, 그래도 본인의 잘못으로 영향을 준건데 미안한 감정이 안드시던가요?
영화를 본것도 이해가 안가다가, 그날 방황하고 잠설치신건 또 그런가 싶은데
이렇게 기고글을 통해서라면 당시 교수님과 동료들에게 적어도 미안한 마음을 더 표현하는게 맞지않나요?

직장을 다니고 계시다면 좀 심각한 것 같습니다.

M과 Z가 다르다고 하니 굳이 하면 저는 M 세대지만..
정말 이 글만 보면 좀 기고자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 상황을 잘모르는 제 3자 입장에서는
이상한 분 같습니다.
회원작성글 곽민준  (2022-08-26 17:40)
7
랩 노트 연재자입니다. 제 부족한 글쓰기 실력 탓에 많은 오해가 생긴 듯하여 길게 답을 달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번 화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에게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로 이번 사건을 알리고, 다른 동료 연구자들께서 조심하시는 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글 내용이나 이야기 속 제 태도와 무관하게 이 부분이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글을 읽고 불편하셨던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먼저, 불은 제가 다니던 연구실 아래층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기 시작해 외벽을 따라 위로 번져 우리 연구실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처음 식당에서 전화받고는 혹시 내 잘못으로 불이 난 걸까 걱정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아래층에서 불길이 시작되었고, 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불이 생각보다 훨씬 심하게 번져 소방차 10대 이상이 왔는데도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대학원 생활이 전부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고, 구매후 아직 한번 꺼내보지도 못한 1억짜리 장비도 떠올랐습니다. 처음 연구실 문열고 하나 하나 모아 완성한 장비들 생각도 나고 저 멀리 있는 교수님도 걱정되었습니다. 답답했고 참담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랩장이었고, 우리는 그래도 내일 또 실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거기서 울고 있을 시간 없었고, 불이 꺼지면 다시 정신 챙겨서 복구하고 연구할 생각이었습니다. 교수님도 힘드실 테니 우리 전부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단 현장을 벗어났습니다. 거기 있으면 너무 힘들었거든요. 근데 막상 차타고 가다보니 갈 데가 없었고, 어느 순간 누군가 여기서 좌회전해서 영화관갈까 말하여, 그렇게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습니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신 분들 모두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다만, 제가 부족한 부분을 MZ세대나 한국의 미래로 확장해서 이야기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만 봐도 모든 면에서 저보다 훌륭하고 멋진 젊은 동료들이 많으니까요. 혹시 젊은 세대가 부족하다면 다독이고 옳은 길로 끌어주시길, 어른들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태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거의 3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연재 글에 적진 않았지만, 이번 일로 지난 2년반의 연구 데이터가 모두 날아가 더는 기존 연구실에서 학위과정을 이어가기 힘드니 다른 길을 찾으라는 제안을 받고 새로운 진로를 찾으며, 군 문제 등으로 여러 복잡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몇 주는 잠도 제대로 못 잤고요. 여전히 연기만 보여도 깜짝 놀랍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게 저뿐만은 아닙니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관 자체가 쓸 수 없는 건물이 되어버려, 제 지도교수님을 비롯하여 정말 많은 분들이 서로 다른 힘든 과정을 겪었고, 또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힘들어 할 수는 없으니, 그래도 화이팅하고 모두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 뒷부분에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우리 모두 힘내자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지금이 불 나기 전보다 좋은 상황 아닙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긴 거의 전쟁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10년후에는 이 위기가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잘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입니다. 다만, 댓글에서 지적해주신 몇몇 표현들은 의도를 떠나 과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으면서 불편하셨던 분들과 다른 화재 피해자분들께 죄송합니다.

글에 다른 피해는 언급조차 없고 제 개인 피해 얘기만 있는 것은 제 피해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제가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해와 아픔을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글은 피해 사실들보다 그날 있었던 일들과 이를 잘 극복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했습니다만, 제 글이 많이 부족하여 의도대로 잘 전달되지 않은 듯합니다.

300만원 이야기가 불편하셨던 분들 죄송합니다.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보아 개인 손해만 300만 원에 달하고 연구 자료와 데이터도 전부 날아가 버렸지만"은 '개인 손해만 300만 원에 달하는 가장 큰 피해를 보아'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큰 피해를 보아(=화재가 발생한 건물 전체 중에서 내 자리와 연구실 근처에 불이 제일 강하게 나서), 개인 손해가 300만원 될 정도로 내 자리가 완전히 불타 재가 되어 버렸고, 데이터마저 날아갔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핵심은 300만원이 아니라 "연구 자료와 데이터도 전부 날아가 버렸지만"이었습니다. 오해가 생기게 하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300만원은 너무나 고맙게도 학과에서 배상해주었는데, 사실 먼저 배상해주겠다고 하기 전엔 복구할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 진짜 아까웠던 건 당연히 데이터였으니까요. 여기서 가장 큰 피해가 '저의 손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 근처 화재 정도'를 의미함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댓글을 남기신 분들이 이 답글을 꼭 보셨으면 합니다. 우선 제 글 때문에 불편하셨던 부분 죄송하고, 오해가 조금 풀리셨길 바랍니다. 물론 여전히 저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존중하고 조언 잘 받아들여 더욱 성숙하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으로 피해입은 모든 동료 연구자와 대학 관계자들께 조금만 더 힘내자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원작성글 아바미스  (2022-08-26 19:00)
8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내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회원작성글 초가을  (2022-08-26 20:42)
9
화재를 대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지 깨닫습니다. 그때 이후 정말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잘 이겨내시고, 다시 한번 힘내시길 바랍니다.
네이버회원 작성글 ad*****  (2022-08-26 21:24)
11
저는 윗 댓글 분들이 이해가 안 가네요. 영화 말씀하시는데 저 상황에서 지켜보고 있는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그리고 여기 글에 장비 뭘 잃었다, 절망적이다, 우울하다 글 쓰면 뭐가 달라집니까? 다른 사람 불행만 자세히 보고 싶은 분들이신지… 힘든 상황에서 이겨내려고 하시는 게 보이는데, 응원은 못할망정 함부로 평가하시는 게 좋아보이지 않네요.
회원작성글 이걸이렇게  (2022-08-26 21:53)
12
글이라는게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게 참으로 무섭네요.
위에 댓글 다신 분들 글을 제대로 읽기는하고 댓글을 다시는건지.
그리고 고작 글하나로. 말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사람을 이기심에 찌든 사람으로 단정짓고, 그걸 소위 MZ 세대의 특징으로 확장하는 내재된 일반화는 같은 과학을 하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씁쓸한 입맛 다시는 하루 되세요.

이 사태를 통해 피해 입으신 분들 모두 잘 회복하고 좋은 성과내기를 응원합니다. 화이팅!
회원작성글 안녕난세포야  (2022-08-27 22:20)
13
뭐가그렇게 불편한지.. 여기도 불편러들이 있네요... 글에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회원작성글 무슨  (2022-08-28 14:08)
14
나도 꼰대인가 보다.. 나도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본인의 일터가 불이나고 있는데 아무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해도 영화관을? 이런 생각과 판단이 가능할까?" 라고 생각했고.. 그 외에도 표현된 단어들이 불편하게 읽혀지기도 했다. 댓글을 보니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셨고.. 본 글쓴이 분의 답글을 읽고나서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암튼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전화위복으로 삼아 좋은 연구성과 이루시길 바랍니다. ----- 또 한명의 불편러가...
네이버회원 작성글 마임  (2022-08-28 14:26)
15
불나서 화재 진압중인 현장 보면 뭐하나요?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데... 속만 더쓰리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꺼고 나역시 나이 많은 꼰대이지만 영화보러 간게 뭔 큰 죄라고들 그러시는지......
회원작성글 y12345  (2022-08-28 17:45)
16
한번만 인터넷에 검색해보아도 작성자 본인의 부주의로 화재가 난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을텐데.
네 저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는 지도교수님께 관련된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또 닿네요. 어딜 가시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회원작성글 whitewolf  (2022-08-29 13:59)
17
작성자분 글 이후로 단 분들 재밌네요.
저도 작성하신 글로만 판단했을 때는 그렇게 판단한건데, 사실 작성해주신 분께서 사정을 말씀해주시고 나니 이해가 가는거지.. 그 전에 앞뒤 모르는 사람이 단편적으로 보면 이상하다고 느낀 점을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사실 작성자분이 이 글쓰신거가 뭐 죽을 죄 지으신 것도 아니고..
종종 브릭에 들어와서 눈에들어오는 제목을 따라 들어왔다가 댓글 달아보았네요.

무튼 저도 작성자분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회원작성글   (2022-08-29 17:10)
18
참.. 댓글 보니 익명이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씁쓸합니다. 작성자 행동을 비판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함부로 말씀하시는 분들은 뭐죠? 본인이 오해했으면 대충 무마하고 댓글 지우지 말고 사과하시면 좋겠습니다. 실명으로 사과하는 작성자만 안타깝네요.

작성자 님과 화재로 피해 입으신 분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회원작성글 Parkerspie..  (2022-08-30 00:03)
20
whitewolf님
본인이 비난받는것 같자 "재밌네요" 정도로 방어하는걸 보니 예 자존심이 강하신분 같네요.
본인 첫 댓글에 "그래도 본인의 잘못으로 영향을 준건데 미안한 감정이 안드시던가요?" 라고 쓰셨는데, 이게 작성한 글 어디를 보면 본인의 잘못임을 알수있나요. 원색적 비난하고 이상하다고 느낀점을 말하는거하고 구분이 잘 안되시나봐요.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는 제 입장으로는..
좀 이상한 분 같습니다.
잘 모르면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게 일반적인 상식 아닐까요? 직장을 다니고 계시다면 좀 심각한 것 같습니다.
회원작성글 콘칲  (2022-08-30 01:50)
22
글 하나에 의견이 다양할 수 밖에 없다는건 잘 알고 있지만, 몇몇 댓글들은 의견이라기 보다는 작성자님을 비난하는 내용인것만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네요. 당사자가 아무래도 마음이 제일 힘들었을텐데, 이랬어야 한다 저랬어야 한다 하는건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각자 의견을 피력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작성자님을 비롯해서 화재로 피해 입으신 분들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구글회원 작성글 Pa****  (2022-09-01 13:27)
23
랩에 불이 났는데. 그 상황에서 칼국수의 가치를 생각하고, 개인경비 300만원 피해금액을 생각하고, 화재당일에 영화를 보러가고, 데이타를 날린 상황에서 다시시작할수 있다며, 바로 도망쳐 랩을 트랜스퍼하고.....그냥 기고자가 쓴 내용만 읽어봤을때, 어느 부분에서 화재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건지 모르겠네요......작성자가 힘들어다고는 하는데, 원글 읽었을때는 별로 안힘들어 보이는게 독자의 잘못인지. ㅋ
구글회원 작성글 오민*  (2022-12-03 00:06)
24
힘내세요. 안좋은 댓글들에 너무 마음쓰지 마세요~! 저도 석사때 저희 연구실이 불이 났었어요. 저희 연구실이 2개가 있어서 저에게는 크게 피해가 없었지만 그래도 상실감과 우울감은 꽤 오래 갔던 기억이 남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지요. 각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요. 힘내세요~!
회원작성글 gongbaek  (2023-01-18 15:35)
25
저도 불 난 상황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는 부분에서 의아하긴 했지만 글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습니다. 역시 글쓴이 분이 다시 달아주신 댓글을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글을 지적 할 순 있겠으나 글쓴이의 성향을 지적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이제 사고 이후 반년 정도 지났네요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었길 바라고 새로운 곳에서 하시는 연구 또한 잘 진행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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