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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험실 이야기] 힘내라, 대학원생
종합 hbond (2022-11-01)

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힘내라, 대학원생


지루한(?) 그룹 미팅이 끝나고 다들 집에 갈 준비로 바쁩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방에는 한 대학원생이, 편의상 A라고 하겠습니다,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고, 계속되었습니다. 

학생들과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출입을 보게 되고, 옆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일부러 보고, 듣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 듣다 보니,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슨 일이 있는지, 하는 연구가 어떤 지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A는 약간 신비주의 학생입니다. A는 연구실에 잘 나타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별로 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격이 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말을 걸면 말도 잘하고, 잘 웃고, 외향적인 것 같은데, 아무튼,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조교(TA) 일이 바쁜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조교일을 하는 다른 학생들이 연구실에 와서 실험을 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사정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 교수님의 암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시에 사무실에 나타납니다. 일단,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는 것은 중대한 범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씩 물어봅니다, "뭐하냐?" 운명의 순간입니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지, 까딱 잘못하면 향후,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에 이르는 쓰나미와 같은 잔소리가 밀려옵니다. 다들 수시로 이런 일을 대비해서 훈련(?)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A의 차례에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A가 대답하길, "세포를 가지고 실험을 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고, 도움이 필요해서 선배 B가 시간이 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태로운 대답입니다. 좋지 않은 디펜스입니다. 다시 교수님의 질문 공격이 들어갑니다. "그럼, 너는 기다리면서, 실험 방법을 읽어 보거나, 네가 필요한 실험에 대해 생각해 봤니?" 이건 거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질문입니다. 정말 이 질문에서 밀리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어 보입니다. A가 대답합니다. "저는 실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실내는 고요했고, 교수님도 충격을 받았는지, 기대와 다르게 그냥 방을 나가셨습니다. A에게 남긴 말은,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하면 좋겠다."가 전부였습니다. 우리 교수님 답지 않은 멘트입니다. 교수님이 큰 충격을 받은 듯합니다.

A는 박사 2년 차 학생입니다. 주로 화학 합성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이번에 생물학 실험을 해야 해서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보통 1년 차 때는 익숙하지 않은 실험들이 많다 보니 프로젝트 직속 선배들이 도와주는데, 이 친구의 경우, 직속 선배가 지난여름에 졸업을 하면서 더 이상 도움을 받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저도 웬만한 연구실의 프로젝트는 알고 도와주는데, A가 하는 일은 다른 일과 달리 동떨어져 진행되던 것이라, A를 도우려면,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한 뒤 도와줘야 합니다. 제 코가 석자인지라, 돕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A의 다른 동기들은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하나씩, 둘 씩 데이터도 쌓이는데, A의 연구만 제자리걸음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A는 주로 질량분석기를 이용하는데, 몇 달 전, 공대에서 굴러온 돌, 다른 대학원생이 질량분석기를 독점하듯이 밤낮없이 사용하고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나 봅니다. (굴러온 돌은, 정말이지, 무대뽀로 일을 하는 스타일입니다.)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외국에서 공부해 보겠다고 먼 곳까지 왔는데, 일이 잘 안 되면 서글프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 친구를 직접적으로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 이라고는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를 진행해라, 더 시간을 투자하라는 조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동안 옆에서 지켜본 결론은, 이 친구는 그런 조언보다는 조금은 그냥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A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어떻게 이 친구의 연구가 쭉쭉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의를 했는데, 교수님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적극적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A는 밀어붙여서 될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 교수님에게 이런 혜안이 있다니...' 놀랍다는 생각과 함께, A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화학 실험을 해야 해서, 아침 일찍 실험실에 도착해서 실험을 후딱 끝냈습니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A가 선배 B와 함께 들어옵니다. 아마도 실험을 하려고 하나 봅니다. "그래, 수고들 해라. 실험이 잘 되길 바란다." 말해주고는 뒤돌아서면서, A가 이 시기를 잘 지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습니다.

열심히 하고 싶은데, 아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계십니까? 선배에게 물어도, 별 도움이 안 되고, 도무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마치 인생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3000 피스짜리 퍼즐 맞추기 같은 생각이 드시나요? 왠지 옆방으로 옮기면 조금은 일이 수월해지고, 3000피스가 500피스짜리 퍼즐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드시나요? 만일 여러분이 그런 상황에 계시다면,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힘내세요"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다른 학생들에게 물으니, A는 하필이면, 힘든 과목의 TA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길 바랍니다.

  추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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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University of Kentucky)

연구실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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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네이버회원 작성글 이환  (2022-11-01 13:35)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 hbond님도 "힘내세요" :)
회원작성글 hbond  (2022-11-01 20:57)
2
이환 님, 댓글을 읽다가 갑자기 숨이 멎어버렸습니다. 짧은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됨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 말이 필요한 사람이었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이환 님도 힘내세요.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일로 마음이 어려운 모든 분들에게도, 같은 응원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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