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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후 연구원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 박테리아
Bio통신원(소금빵)
내가 박테리아를 제대로 접한 건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3차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하면서부터이다. 대학교에서는 실제 임상 검체나 병원성 미생물을 다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인턴을 지원할 때 대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분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연과학대학에서 기초과학을 배우다 이를 응용한 임상, 검체, 병원, 의과학과가 흥미로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성 미생물을 다루는 일은 사실 매우 찝찝하고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중에서도 박테리아는 고약한 냄새까지 풍긴다. 아직도 박테리아를 떠올리면 코끝에 구린 세균 냄새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맡고 싶지 않아도 맡을 수밖에 없는 냄새는 마치 균이 코를 통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실험실 개인 책상은 실험대 끝에 붙어 있었고 결국 세균과 같은 공간을 썼다. 박테리아를 만진 글러브로 절대 개인 물건을 잡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급해서 아님 벗기 귀찮아서 또는 실수로 어쩔 수 없이 만지게 되었다. 폐기물 통, 실험대 위, 실험용 냉장고, 냉동고, Incubatior 등 실험실에서 유일하게 균이 없는 곳은 BSC였다.
나는 병원성 미생물 중에서도 황색포도알균을 연구하는 실험실에 있었다. 그리고 항생제 내성을 연구하는 목적으로 일주일에 2번씩 진단검사의학과에 가서 환자로부터 채취한 검체에서 배양한 균들을 1년 동안 종류별로 모았다. 나 말고 1명의 동기가 더 있었기 때문에 1년씩 번갈아가며 할 수 있었다. 진단검사의학과 선생님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했고 온전한 나의 점심시간이 소비되었다. 나는 연구간호사 선생님께 받은 자료를 미리 Sorting 한 후 여러 구역으로 나뉜 진단검사의학과에서 보물찾기 하듯 제한시간 안에 균을 찾았다.
그림 1. 균을 찾아오기 위한 메모
균은 환자로부터 채취된 검체 Site 별로 나뉘어 있었고 탑처럼 쌓여 있는 원형 플레이트 안에서 날짜와 환자명, 균명을 확인하여 조심스럽게 균을 채취했다. 보통 50개씩 쌓여있는 플레이트 더미를 쓰러뜨리지 않고 가져오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좁은 테이블 한편에 가득 쌓여있는 플레이트들을 내가 전혀 만지지 않은 것처럼 원래 모습 그대로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가다 손이 미끄러져 플레이트를 놓치거나 쌓아놓은 플레이트들이 흔들릴 때면 얼굴과 등에 식은땀이 났다.
그림 2. 책상 위에 쌓여있는 Plate 모습
내가 모아야 하는 균은 13종~15종으로 크게 그람 양성 구균, 그람음성 간균, 그람음성 구균, 진균으로 나눌 수 있다. 균을 가져오기 위한 준비물로 멸균된 새 팁 통, 글러브, 네임펜, 팁 버릴 비닐이 필요했고 균마다 자라는 배지가 다르기 때문에 배지 3종류를 모아 올 균 수에 맞게 넉넉히 챙겼다. E. coli , P. aeruginosa, K. pneumoniae, A. baumannii 같은 그람음성 간균을 선택적으로 자라게 하는 MacConkey Agar Plate, H. influenzae 같은 그람음성 구균을 자라게 하는 Chocolate agar, S. aureus 같은 그람 양성 구균이 자라는 Blood Agar Plate를 주로 썼다. 병원에 등록된 작업 번호와 균주명, 환자명, 진단검사실의 검체 구역과 요일을 확인해서 가져오면 된다. 진단검사의학과에서는 일주일이 지나면 검체를 폐기하기 때문에 꼭 지정된 날짜에 가야 했다. 이렇게 모아 온 균들은 37도 Incubator에서 자라게 한 후 Sorting으로 정리한 리스트와 매칭 후 Lab의 작업 번호를 부여하고 스탁으로 만들어 Deep Freezer에 보관한다. 루틴 한 일이지만 내가 모아 온 균이 연구와 실험에 쓰이니 곳간을 차곡차곡 모으는 느낌이 들어 기여도와 뿌듯함을 느끼며 나름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그림 3. 책상 위에 쌓여있는 Plate 모습
실험 준비를 위해 Broth, Agar 배지를 만드는 일은 간단하면서도 또 다른 뿌듯함을 주는 일에 속했다. 칭량한 파우더를 D.W와 혼합하여 Autoclave를 돌리고 손이 데이지 않을 것 같은 적당한 온도로 식으면 내가 만들 배지 용기에 부어준다. 보통 Broth 배지를 50ml conical tube, Agar 배지는 원형 플레이트에 부었는데 실험 준비하는 일을 꽤 재미있게 했다. 나는 ENTJ로 나만의 계획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지워나가는데 재미를 느꼈는데 배지 만들기는 체크리스트를 쉽게 지울 수 있으면서 나만의 곳간을 두둑이 만드는 기분이라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균을 다루다 보면 Contam을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특히 실험에 필요한 액체 배지를 만들 때 실험대는 물론이고 50ml Cornical tube의 뚜껑과 바디를 알코올램프로 멸균시킨다. 시간이 지나도 컨탐이 없는 깨끗한 배지가 있는 반면 신경을 썼음에도 뿌옇게 색이 변한 컨탐 배지가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실험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컨탐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세균을 다루지만 세균을 내 손에 묻히지 않기 위해 좋은 습관을 들였다. 실험을 하기 전, 후로 70% 에탄올로 실험대와 내 손이 닿은 곳은 모두 닦아 주는데 한 번은 실험 전 날 과음을 했다. 평상시와 다를 것 없이 에탄올로 실험대를 닦는데 스프레이로 뿌리자마자 알코올 냄새가 너무 역했고 실험을 위해 준비해둔 SPL 초록색 뚜껑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갑자기 속이 너무 메스꺼우면서 위가 쪼그라들며 뒤틀리는 느낌이 들어 허리를 필 수 없었고 바닥을 거의 기다시피 겨우 걸어 실험실을 나왔다. 2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가를 쓴 웃픈 기억이 난다.
그림 4. 2년 넘게 실험하던 실험실
균 실험은 고체 배지에 Steaking으로 균을 키우는 실험이 있는 반면 액체 배지에 균을 접종해야 하는 실험이 있다. 한동안 Co-work 하는 실험실 학생들을 위해 2주에 한 번씩 새벽 5시 30분에 균을 접종해준 적이 있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 균이 액체 배지에서 자라는데 Incubation time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당번은 겨울이었는데 그 당시 새벽은 엄청 춥고 해뜨기 전이라 택시도 잘 안 잡혀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박테리아는 냄새가 나는 것만으로도 불쾌감과 찝찝함을 주기 때문에 베이킹 클래스를 다니며 이를 해소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많으면 두 번 가는 베이킹 수업은 심리적 안정감과 스트레스 완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매일 균만 만지다가 하얀 밀가루와 슈가 파우더, 계란, 우유와 같이 순수한 물질을 보는 것이 꽤나 기분 좋았다. 특히 시간 관계상 밀가루는 미리 계량하여 랩에 준비를 해주셨는데 랩에 쌓여있는 것과 랩을 벗겨 밀가루를 뿌릴 때 둘 다 기분이 좋았고 밀가루가 내 손에 묻어도 기분이 좋았다. 내 손에 세균이 아닌 하얀 밀가루가 묻는 게 꽤나 좋았다. 다만, 저울에 무게를 재고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재료를 넣고 인큐베이션 타임과 온도를 지키는 건 실험과 비슷했다. 3년쯤 지나자 요리가 더 이상 초심의 요리가 아닌 실험과 너무 비슷해서 그만뒀다. 어쨌든 꽤 괜찮은 스트레스 해소였다. 한 번은 나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실험도 요리하는 것처럼 해봐" 실험과 요리가 정해진 프로토콜을 따르고 재료를 준비하는 맥락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스트레스를 환기시켜주는 신성한 요리를 실험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박테리아 실험의 재밌는 점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실험 중에 균을 접종(inoculation) 할 때면 균이 잘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뿌옇게 현탁 되는 정도가 보이기 때문에 마이크로리터 단위를 다룰 때 조금 수월했다. 또, 실험 결과와 해석을 눈 아픈 현미경이 아닌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내가 다뤘던 박테리아들은 혐기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온에 놔두어도 37도 인큐베이터에 넣어 놓은 것처럼 잘 자랐다. 세균 클로니마다 색도 달랐는데 클로니가 잘 형성된 박테리아를 보면 나름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델타 hemolysis를 관찰하기 위해 BAP에 Cross streaking을 한 후 O/N 하면 결과를 바로 판독할 수 있었다. 눈 아픈 현미경을 보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눈으로 실험 결과를 관찰하는 시험법은 판별 기준에 대해 모호함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당시 육안으로 실험 결과를 판별하는 실험을 할 때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더 흐른 뒤 이젠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실험 결과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근거와 기준은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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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석사를 감염학으로 전공하면서 3차 대학병원 연구원, 비영리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연구 후 현재 대기업에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원의 직무와 업무에 대한 이야기, 감염병과 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연구원의 일상을 글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보통 연구직은 박사학위가 필요하다는 편견을 깨고 석사학위 생명공학도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학부생 때 연구개발 직무는 박사를 꼭 해야 하는지, 연구개발 업무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석사 졸업 후 연구원은 어떻게 되는 건지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글을 통해 생명공학을 전공하시는 후배분들에게는 작은 도움이, 현업에 계시는 연구원 분들에게는 재미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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