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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험실 이야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은 읊어야지?
Bio통신원(hbond)
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기사와 연관 없음)
1000uL 마이크로 파이펫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없고, 어디 구석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라떼는...'하는 생각을 바로 삭제하고, 일을 합니다. 파이펫을 사용하는데, 왠지 느낌이 쌔~합니다. '뭐지?' 다시 파이펫팅을 하는데 역시 같은 느낌입니다. 일단은 스프링이 부드럽지 않습니다. 파이펫 표면에 스티커가 붙었는데 지난달에 보정했다고 표시되었습니다. '이상하다. 지난 달이면 내부 청소도 했고, 이럴 리가 없는데...' 게다가 쌔~한 느낌은 더 큰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용액을 당겨봅니다. 분명히 1000uL에 세팅하고 당겼는데, 파이펫팁에 올라온 눈금의 양이 낮게 보입니다. 대략 눈짐작으로 봐도 10%가 넘어갑니다. 일을 중단하고, 증류수를 가지고 질량을 측정하니, 0.78xx 그램 정도 나옵니다. 반복을 하니, 숫자가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입니다. '아, 젠장...' 옆에 시니어 학생이 있길래 물었습니다. '이 파이펫이 왜 이러니? 너 이거 고장난거 알았니?'
우리 연구실에 시니어가 두 명인데, 한 명은 화학실험실에서, 다른 한 명은 생물학 실험실에서 시간을 오래 보냅니다. 저는 뭐 하냐고요? 저는 양쪽 연구실에 걸쳐 있고, 의대 실험실과 약대 실험실, 동물 실험실에도 가야 하고, 마지막으로 이론 화학일을 하기도 해서 시니어들보다 각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습니다. 아무튼, 저의 질문에 우리 학생 대답, '몰랐어.' 저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바보 같은 파이펫을 가지고 실험을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정성적인 측정이야 상관없겠지만, 정량적인 측정을 했다면 그 데이터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연구실 생활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멍멍이도 서당에서 3년을 지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연구실 생활을 수 년이나 했다면서 이걸 몰랐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신기합니다.
한 번도 파이펫을 수리하거나 청소한 경험은 없었지만 (실험실 내의 기기 수리만으로도 벅차서요.)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해체했습니다. 한 달 전에 청소를 했다던 파이펫 내부는 더러웠고, 스프링은 파손되었습니다. (내부의 더러움은 사용 중에 백킹으로 생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위쪽이 더러웠고, 더러운 정도가 한 달을 사용한 파이펫은 아닌 듯 했습니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일단 지난달에 이 파이펫을 수리한 회사에 이메일을 보냅니다. '귀사가 수리하고 1년 동안 품질을 보증한 파이펫의 내부는 전혀 청소가 안되었고, 스프링은 완전히 파손된 상태입니다. 1년 품질보증이라 하셨으니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세요.' 사진을 첨부하여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어차피 이 회사는 실력이 없는데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차라리 내가 부품을 사서 수리하자 하고 찾아보니, 이게 중저가 회사 제품이라 부품을 따로 팔지도 않습니다. 그냥 새것을 사는 걸로 교수님께 보고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마이크로 파이펫은 생화학 실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실험 도구 중 하나입니다. 사용법도 간단합니다. 원하는 용액의 부피를 설정하고, 푸시버튼을 눌러서 용액을 끌어올리면 됩니다. 푸시버튼은 2단계로 되어있기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 쓰고 나면 파이펫팁을 분리하면 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아마 이 과정을 배우는데 1분도 안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이크로 파이펫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시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셨습니까? 정말 1분 만에 다 알고 자유자재로 사용하셨다면, 저는 그분을 '파이펫 신'이라 부르겠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태어날 때 파이펫을 들고났다는 신화를 만들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이 계신데, 피아노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같은 피아노 건반으로 소리를 내시는데, 아주 여린 소리에서부터 우레와 같은 소리까지, 분명히 같은 건반인데요, 완전히 다른 크기와 느낌의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한 번은 질문을 드렸습니다. '어떻게 연습을 하면 그렇게 되나요?' 그분이 대답하시길, 어떤 하루는 피아노에 앉아서 같은 건반을 하루 종일 누른다고 합니다. 그 소리의 차이점을 익히기 위해서 며칠을 계속 같은 건반을 누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마이크로 파이펫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용하면 할수록 손에 감기는 느낌부터 점점 친숙해지고, 편해지고, 푸시버튼을 누르는 힘과 터치의 느낌도 좋아지고, 그리고 버튼을 릴리즈 할 때의 느낌도 좋아지고 말입니다. 그렇게 익숙한 파이펫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아채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제가 너무 쫌스러운가요? 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서 너무 작은 것에 매달리는 것 같나요? 어떤 분들은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테크니션이 되는 거라고, 더 큰 그림을 봐야 과학자가 되는거라'라고 말입니다. 좋은 뜻으로 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서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 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針小棒大 (침소봉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매년 끊이지 않는 생물학계의 연구 비리의 원인은 결국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큰 그림만 바라보다가 작은 것을 놓쳐서라고 말입니다.
군대에 간다고 다 대장이 되는 것은 아니고, 연구를 한다고 다 세계적인 석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노력을 다하면, 그 노력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을,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그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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