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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포닥 엄마의 생존기] 코로나 양성
Bio통신원(오박사)
주변에서 친한 가정들이 모두 코로나 걸렸지만, 우리 가족은 피해 갔었다. 나도 연구실에서 매일 마스크를 쓰고, 딸아이는 가정 보육을 하고 있기에 전염병이 우리 집은 이렇게 피해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연재도 마감을 앞두고 있었고, 실험도 잘하고 있었던 어느 날 몸이 피곤했었다. 감기 기운이 오는가 싶었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무조건 코로나 자가 진단 키트 검사를 하였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냥 감기 기운인가 보다 하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그리고 주일 아침 아무래도 몸살이 심해, 남편과 딸아이만 교회에 보내놓고, 온라인 예배드리고, 한숨 자며 쉬었다. 이날 증상은 목이 따끔거리고, 몸살 정도였다.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몸에 식은땀이 난다는 것이었다. 이날도 자가진단검사 시 음성이었다. 몸이 안 좋으니 딸아이와 따로 자고 싶었다. 남편이 딸아이를 적극적으로 재워 주길 바랐건만, 결국 딸아이의 긴 울음으로 내가 재웠다.
월요일 새벽 처음 겪는 통증의 몸살로 이건 코로나다 직감했다. 그리고 남편을 깨우고, 자가 진단을 하려는 그때 딸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으며, 남편은 딸아이가 엄마를 찾는다고, 안 달래 진다며, 눈을 감고 나한테 잠투정 아닌 투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 잘 도와주는 남편인데 잠에서 못 깨었는지, 나는 정말 아파 죽겠는데 저런 말을 하는 남편이 정말 미웠다. 두 사람 다 무시하고, 나는 자가 진단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양성이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코로나 양성이라고 말하고, 남편은 그제야 심각성을 인식하며, 딸아이를 안고 딸아이 방으로 갔다. 정말 너무 아팠다. 모든 장기와 뼈가 녹아내리는 느낌의 몸살과 편도도 엄청 붓고, 목소리 또한 나오지 않았다. 그 새벽에 보스에게 코로나라는 사실을 SLACK(연구실 메세지앱)으로 남기고, 에드빌(소염진통제)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물론 이때도 딸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잠을 잤다. 평소 같으면 딸아이가 울면 무조건 안아 주었는데, 이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월요일 아침 10시쯤 잠시 깨 보스와 통화를 하고, 한 달 동안하고 있던 실험을 그대로 모두 폐기했고, 모든 게 스톱되었다. 또한, 그 주에 약속들을 일단 무기한으로 미뤘으며, 연재 마감일 또한 조금 늦춰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그 전주에 만난 사람들은 없었고, 연구실 사람들은 음성이 나왔다. 에드빌(소염진통제)로만으로는 안될 거 같아 남편에게 Nyquil이라는 약을 부탁했다. Nyquil과 에드빌로 번갈아 복용하면서,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잠에서 깨기가 싫었다. 정말 심한 감기나 독감일 땐 Nyquil약을 추천한다. 이 약 먹고, 한숨 자면 많이 좋아진다. 단점은 약이 세기에 자기 전에 만 먹어야 하며, 그다음 날 아침에 제시간에 못 일어날 수 있다.
수요일까지 너무 아팠다. 수요일 오후, 딸아이의 열이 시작되었으며, 딸아이도 양성이 나와 나와 함께 안방에 격리되었다. 밤이 되니 아이의 고열이 시작되었으며, 한 시간마다 딸아이는 끙끙되기 시작했으며, 나도 딸아이를 만지면서 열을 계속 체크했다. 그리고 세 시간마다 한 번씩 에드빌과 타이레롤을 교대로 먹이며, 딸아이의 열이 조금이나마 떨어지길 기다렸다. 다행히 새벽 5시쯤 딸아이의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렇게 밤을 새웠다.
목요일, 다행히 딸아이에 열이 내려 점심때쯤 남편에게 맡긴 후 어제 못 잔 잠을 좀 잤다. 나의 몸도 떨리고 식은땀은 계속 났다. 세 시간쯤 잤을까 딸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깼다. 딸아이의 고열로 축 쳐진 채 내 품에서 안 떨어진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수박, 도넛, 사탕, 아이스크림을 주어도 그것 또한 잘 먹지 않는다. 그리고 힘없이 혼자 침대에 누어 내 손을 잡더니 그냥 스르르 잠들어 버렸다. 이 모습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게 내 탓만 같았다. '내가 코로나에만 걸리지 않았어도, 내가 일요일부터 격리했어야 했는데‘ 라며 모든 것이 나의 탓인 것만 같았다. 딸아이는 한 시간마다 깨 끙끙되다 ‘엄마 목에 뭐가 있어 빼줘’ 그러다 울다 잠들다 반복, 아이의 목소리는 이미 쉬었고, 아이의 목소리에서 편도가 많이 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음과 몸이 힘든 긴 밤이 지나 다행히 금요일이 되니 딸아이의 열이 내리고, 아이의 기력도 되찾았다.
토요일, 남편 또한 코로나 자가진단 양성이 나왔다. 감사하게도 남편의 코로나 증상은 일반 감기처럼 가벼웠다. 남편은 기저질환과 당뇨가 있기에 사실 걱정이 되었는데, 우리 집에서 제일 약하게 넘어갔다.
월요일, 의무적인 자가격리 기간은 끝났다. 그러나 나의 증상은 끝나지 않았다. 아기 낳고 난 후 보다 더 기력은 없었고, 계속되는 두통과 설사, 메스꺼움이 시작되었다. 일을 하러 갈 수는 있겠지만, 하루 종일 근무할 컨디션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보스와 상의 후 모든 가족이 자가격리가 풀리면 출근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그렇게 이 주를 자가격리를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많은 분들에 또 도움을 받았다. 보스도 긴 휴가를 주었고, 브릭 관계자분도 연재 마감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의 건강을 걱정해 주시면서 마감 연기해 주셨다. 또, 남편이 잠시 일했던 식당 사장님 치킨 한 마리를 튀겨다 주셨고, 직장동료분도 우리 집 문 앞에 과일을 두고 가고, 교회 목사님 사모님도 반찬을 만들어 주였고, 보스도 장을 봐서 우리 집 문 앞에 두어주었다. 몸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주 동안 정말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코로나는 내 몸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아직 엄청난 피곤감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해결해야 할 일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여서 마음은 조급하지만,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천천히 다시 하나씩 넘고 해결해 가겠다.
할 수 있다! 오늘도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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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Dalhousie university에서 포닥을 하고 있는 3살 엄마 오박사입니다. 서툰 엄마, 서툰 해외 직장 생활, 캐나다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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