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일 때부터 미국에서 공부하셨거나 포닥 생활을 마치고 오신 분들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미국에 대해 접하면서 막연하게 동경한 것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대학원을 미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혼자 알아보고 나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고, 학생인지라 학비나 미국에서의 생활비에 대한 부담감, 언어의 장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저 꿈으로만 간직했었다.
학생 때는 이루지 못했지만 포닥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미국에서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가장 선두를 달리기도 하고, 좋은 학교들과 연구 시설들이 많아서 다들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유였지만 자유롭고 여유롭다는 연구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수록 더욱 가고 싶었다. 그렇게 미국에서 연구를 이어 나가겠다는 꿈을 꾸며 나의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는 옛말이 틀린 것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슷한 류의 주제로 논문이 나오거나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결과가 좋지 않다던가 하는 이유들로 하던 연구를 여러 번 접게 되고, 나의 연구가 미국이라는 큰 세상을 나가기에는 너무 보잘 것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며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을 꼭 가겠다는 그 꿈을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아쉽기도 했고, 어떻게 해서든 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 일단은 부딪혀보자! 하며 나를 다독이며 미국에 대한 마음은 계속 품어왔었다.
미국 포닥을 가고 싶지만 포닥이 되려면 어떻게 지원하는 것인지, 어디를 지원해야 하는지 등등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가 존재해서 이것저것 검색하며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듯이 조금씩 알아가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나의 상황에 맞는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지도 교수님께서는 미국에서 포닥을 하신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학교에서 미국으로 포닥을 나가는 사람들은 딱히 친분이 없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기에 그분들의 도움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Pandemic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온 세상이 봉쇄되는 일이 벌어졌고, 미국 학회를 한 번쯤 가고야 말겠다는 나의 바람도 이루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스탠퍼드에 계신 박사님들이 주축이 되어 전 세계에 있는 한인 과학자들이 서로 돕자는 취지로 ‘K-BioX’라는 단체가 결성되었고, 격주로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며, 학회나 세미나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나 역시 관심 있는 주제의 세미나가 개최될 때에는 참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소회의실 등에서 미국에 계신 박사님들과 서로 소개도 하고 인사도 나눌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직접 뵙진 못해도 그렇게나마 미국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보를 얻기도 했고, 더욱 고무적이 될 수 있었다.
세미나에 그치지 않고 멘토링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멘토와 멘티를 모집한다는 말에 나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멘티에 지원했다. 거기서 나와 비슷한 Metabolism을 전공하시는 한 박사님이 나의 멘토가 되셨고, 나는 박사님께 연락하여 포닥 관련하여 여러 가지를 여쭤보며 조금씩 알아 나갔다. 박사님께서도 자신이 걸어온 길을 누군가는 보다 편하게 걸어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 이때 박사님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입장이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K-BioX가 나의 인생을 바꾼 ‘게임 체인저’가 된 계기였다.
나의 멘토였던 박사님이 Stanford에서 연구를 하고 계신 포닥 연구원이셨고,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K-BioX가 Stanford에 계신 박사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단체이다 보니 살면서 거의 마주칠 일 없었을 Stanford 박사님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얻게 되었고,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인 Stanford의 좋은 환경에서 연구하시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도 그 박사님들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이때까지도 그 박사님들에 대한 동경이었을 뿐 내가 SKY나 카이스트/포항공대 출신도 아닌데 Stanford를 간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 같고, 심지어 인터뷰하러 갈 때도 주변에서도 말로 하진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쟤가 무슨 자신감이지? 하는 반응들이었다. 나도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여 놓은 것 같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으니 뭐가 되든 일단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도전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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