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더더욱 확고하게 굳었던 해외 대학원 진학. 미국 석사를 지원할 때만 해도, 말도 안 되게 잘 봐버린 GRE 점수에 취해 “나는 이 레벨의 학교들 아니면 지원 안 해!”라는 태도를 취했다가 제대로 물을 먹었던 적이 있다. 석사를 하면서 유럽권 기관들도 꽤 괜찮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게 되고, 생각 이상으로 좋은 연구 시설과 근무 환경을 가진 곳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유럽권 대학원에서 박사를 하는 것도 고려를 해 봐야지 싶었다.
물론, 벨기에는 어디까지나 계획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하면 누가 벨기에를 작정하고 유학을 오겠는가. 하지만 정작 대학원을 지원할 때가 되면, 언어권이든 국가든 가릴 수 없는 처지가 되곤 한다. 애초부터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혹은 스웨덴 정도로만 생각하던 선택지는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 모두로 확장이 되었고, 어디라도 붙여주면 절을 하고 가겠지 싶은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링크드인과 리서치 게이트를 포함해서, 유럽권 대학원에서 학생을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오는 홈페이지들을 꽤 오랫동안 뒤적이고 있었다.
벨기에는 사실 두 가지 방법으로 박사생을 뽑는다. 학교 자체에서 한국의 수시 내지는 정시 모집 개념으로 학생을 뽑는 오픈콜이라는 전형이 있고, 교수가 자신의 펀딩을 이용해 학교를 거치지 않고 학생을 뽑는 특채 개념이 있다. 오픈콜의 경우에는 학년도가 시작되는 9월 중순에 입학을 하고, 랩 로테이션을 1년간 거친 뒤 박사과정을 할 연구실을 정한다. 그리고 오픈콜의 경우에는 입학 전 해 11월에 전형을 시작해서 약 5월쯤 끝나는데, 서류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인터뷰를 거친다. 교수가 직접 박사생을 뽑는 경우에는 “채용”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모든 절차를 랩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랩마다 요구하는 서류나 인터뷰 절차가 모두 다르지만, 학기 중 입학이 가능하다는 점과 랩 로테이션이 필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사실 유럽권 대학원을 알아보다가, 내가 지금 속한 연구실의 공고가 내 눈을 꽤 사로잡았다. 당시만 해도 스웨덴 소재의 Karolinska institute를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한 번에 패 뒤집듯 뒤집어버린 공고였다. 교수님 본인이 얼마나 프로젝트에 애착이 있으신 지, 기존 논문부터 시작해서 원하는 방향성까지 모두 공고에 적어 두었다. 단순히 이런 주제를 할 것이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런 주제를 다뤄왔고, 이런 프로젝트를 하려고 하고 원하는 방향성과 클리닉에의 반영은 이런 식으로 할 거다 등등. 그런데다 학생들의 연구 역량을 위해 프랑스어는 요구하지 않겠다니! 무엇에 홀린 양 나는 내 CV와 커버레터, 이전 직장에서 낸 논문 초록을 첨부하여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고 네 시간 만에 돌아온 대답. 거짓말 안 하고 약 40군데 가까이에 지원을 했는데, 대부분 “펀딩을 직접 가져오거라”, “언어가 안되면 비자에 어려움이 있다”라는 대답으로 거절하면 다행이었지, 리마인더 메일을 보내도 씹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더더욱이 이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좀 잘 해봐야지 싶었다. 빠른 피드백이라니, 그리고 칭찬이라니. 물론 립서비스 일 수도 있겠지 만서도 말이다.
사실 공고를 보고 깐깐한 서양 아저씨일까 싶어서 상당히 긴장을 하며 스카이프를 켰다. 그렇게 꼼꼼한 공고를 내는 사람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재빠르게 피드백을 주고 바로 날짜를 잡는 걸 보면서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오는 확고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정작 인터뷰를 시작하고 보니, 인상 좋은 옆 랩 후덕한 포닥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인터뷰에서는 내가 그동안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는지, 할 줄 아는 분석은 무엇이 있고 어떤 실험을 해보았는가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다양한 기관과 코웍을 한다며 한 명씩 교수들의 이름을 댔고, 대놓고 “기차로 파리까지 1시간 반, 암스테르담까지 2시간 걸린다”라는 내용을 내걸면서 출장 가기에 상당히 용이한 위치라는 것까지 어필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렇군요 하며 듣고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지금 일하는 곳의 계약은 언제 끝나? 그 계약이 끝나고 바로 올 수 있어?”라는 말을 꺼내셨다. 나는 예상에도 없던 질문이라, “음 지금이 1월 중순이니까, 학교에서 서류를 받아 비자를 받으면 최소 3월 말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계약은 2월 말에 끝나고,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제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간다고 하면 4월 중순이나 되어야 할 것 같은데…”라며 말을 흐리니 “내가 당장 서류 업무를 시작하라고 할 테니까, 3월에 들어올래?”라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당황한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뽑아 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하고 그렇게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이 교수님은 도대체 뭘 믿고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싶다 가도 왠지 그냥 한 번 찔러보는 건가 싶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뽑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 다른 기관에서 받은 오픈콜 1차 합격 메일과 인터뷰 관련 스케줄을 정리하고 있었고, 딱 일주일 뒤에 교수님은 다시 메일을 보내셨다.

그렇게 나는 벨기에에 가게 되었다. 인터뷰 일주일 후, 교수님은 간결하게 너를 채용하겠다는 다섯 줄짜리의 메일을 보내셨는데, 한 3초간 멍해 있다가 메일을 다시 읽고 나서야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동안의 고생이 다 끝난 것 같아서.
저 메일 이후에 교수님과 다시 스카이프를 하면서, 나는 벨기에를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나를 저렇게 믿어주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아직 얼굴도 안 본 사람들이 집을 구하는 일을 도와주겠다며 연락을 주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 줄 포닥이 나 때문에 퇴사 일정을 몇 주 미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연구 외적으로도 좋은 곳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계획에 없던 유럽의 중심부 벨기에. 나는 내가 살면서 가장 오래 산 도시가 브뤼셀이 될 줄은, 저 때만 해도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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