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무엇일까요? 이 거대한 질문은 다르게 해봅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린 어떻게 바뀔까요? 어딜 가든 무얼 하든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좋은 곳을 가면 같이 가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먹고 싶죠. 온 세상이 내 편이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랑이 주는 마음의 평화는 가장 강력한 보험이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새로운 생각과 행동의 영양분입니다. 시대를 움직인 노래들이 하나같이 사랑을 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까요?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뇌과학자가 들려주는 가장 진솔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저자 본인의 러브 스토리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죠. 두 뇌과학자의 사랑이 얼마나 섹시하고 로맨틱한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겁고도 뭉클해집니다.
사랑이 만든 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그곳은 우주가 아닐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
위게트는 뇌졸중 환자입니다. 그림에 한해서는 열정적인 작가였는데, 이미 뇌가 많이 손상된 터라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죠. 심각한 뇌 손상을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선택한 그림, 그림을 향한 사랑은 그녀의 뇌를 조금씩 바꾸었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쌓였던 긍정적인 기억은 뇌를 다시 연결시키고 마음의 기능을 개선시켰습니다.

스테파니 카치오포,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출처 생각의 힘)
위게트가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후 저자는 사랑이나 열정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정말로 뇌를 개선하는지 궁금해집니다. 특정 대상 때문에 변할 수 있는 인지 기능이나 감정 상태를 추적하는 ‘러브 머신’을 디자인한 이유이죠.
원리는 이렇습니다. 먼저 실험 참가자에게서 본인이 알고 있는 두 이성의 이름을 받아요. 영자와 현숙이라고 해보죠. 영자는 그냥 아는 사람, 현숙은 호감이 가는 이성입니다. 실험 참가자는 깜빡이는 스크린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정말 찰나의 순간, 현숙의 이름이 반복해서 깜빡이죠. 기억에 저장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과정입니다. 현숙의 이름을 의식하지도 못했음에도 참가자는 영자의 이름이 깜빡일 때보다 어휘나 읽기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다양한 인지적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을 알려준 셈이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사랑하면 눈빛만 봐도 안다고 하죠. 예상대로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의도를 훨씬 더 잘 읽어냅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예측은 더 빠르고 정확하죠. 사랑하는 사람이 짓는 같은 표정과 같은 행동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사랑의 관계가 아닌 사람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그만큼 잘 예측하지는 못합니다. 익숙함이 아닌 사랑의 힘 덕분에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죠.

“사랑과 욕망이 같은 두뇌 영역의 상호 보완적인 부분을 자극한다. (…) 사랑은 근본적으로 보상을 추구하는 본능적 감각인 욕망이 추상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욕망이 포도를 으깨 만든 즙이라면 사랑은 그 즙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 낸 묘약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테파니 카치오포,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서)
그렇다면 사랑하면 사람과 더불어 타인의 감정과 의도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까요?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와 라파엘 블로다르스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그냥 친한 친구를 떠올리는 것보다 처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더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뒤이은 실험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공감 능력을 훨씬 뛰어나고,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더 빠르게 알아채죠. 사랑은 남자도 공감하게 합니다.
사랑과 욕망 사이
2011년 상하이에서 스테파니는 존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가 빠져든 것은 어느 스타 심리학자의 화려한 이력이 아닌 공감이 서린 담갈색의 눈동자였죠. 연구 얘기는 물론, 이상하게도 삶의 깊은 이야기도 맘 편히 나누게 되었습니다. 활짝 웃는 존의 미소,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좋아 보였어요.
두 사람의 사랑은 무척이나 과학적(?)입니다. 두 눈이 마주치면 공감 반응을 유도하는 거울신경이란 게 활성화되었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며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측정했습니다. 포옹하고 있으면 옥시토신이 분비되었다고 스테파니는 회상하기도 합니다.
깊은 애정 또는 정신적인 교감만으로도 로맨틱한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우리 뇌가 만드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육체적인 욕망은 사랑의 필수 요소입니다. 반드시 성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결국 사랑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진다는 얘기죠.

“사랑과 욕망이 같은 두뇌 영역의 상호 보완적인 부분을 자극한다. (…) 사랑은 근본적으로 보상을 추구하는 본능적 감각인 욕망이 추상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욕망이 포도를 으깨 만든 즙이라면 사랑은 그 즙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 낸 묘약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테파니 카치오포,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서)
손을 잡고 서로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는 동안, 도파민에서 옥시토신에 이르는 뇌 속 화학물질은 요동칩니다. 즐거움과 편안함, 생기가 넘치고 때로는 흥분되고 황홀감에 빠지는, 이런 긍정의 감정들이 달콤한 칵테일이 되어 사랑을 만들어가죠. 사랑과 욕망은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 협력하며 뇌를 자극합니다. 짝을 찾기 위한 기본적인 욕구뿐 아니라 다양한 인지 기능을 활성화시키죠. 조심스럽게 뇌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랑이란 정성스레 다듬어진 욕망의 산물은 아닐까요?
기대가 감사를 죽인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희생할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기대는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일 테죠. 문제는, 그 기대가 자꾸만 커지면 감사의 마음이 죽는 것은 물론, 자칫 크나큰 희생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뇌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기대감을 상황에 따라 조절합니다.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는 우리 마음속에서 맴도는 꿈, 희망, 기대와 같은 시나리오를 관리합니다. 의사결정, 언어, 작업 기억, 주의력, 규칙을 학습하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등, 전전두피질의 역할을 다양해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충동을 제어하고, 암담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게 하며, 당장 나에게 불리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또는 모두에게 유익하다면 욕구를 잠시 누르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뇌과학자들은 전전두피질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곳이라고 여기죠.
오늘 저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근사한 식당을 잡았습니다. 식사하고 볼 로맨틱한 영화도 예매했고요. 그런데 어쩌죠? 오늘따라 쉴 새 없이 회의가 몰아친 탓인지 그녀가 뇌사 직전의 상태로 회사를 빠져나옵니다. 자, 전전두피질이 작동할 때입니다. 기대가 가득한 저녁 시나리오를 그대로 끌고 갈지, 아니면 그 기대를 내려놓을지 결정해야 하죠. 이런 상황이라면 일찍 집에 들어가 서로의 품에 안겨 따뜻한 밤을 보내는 편이 훨씬 로맨틱할지 모르겠네요.
너와 나의 진실함으로
몇 주 째 뺨을 타고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존은 병원을 찾았습니다. 단순한 치통으로 여겨 치과에 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고 고통은 더 심해졌어요. 마침내 이비인후과에서 CT까지 찍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침샘 속에 암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뇌의 관점에서 보면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아는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하며 여러 요소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에는 두 걔의 자아가 함께하므로 혼자일 때보다 두 배로 그러하다.” (스테파니 카치오포,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서)
암을 진단받은 후 존을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외로움이었어요. 외로움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사회적 관계와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발생합니다. 다소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사실 외로움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상태임을 알리는 일종의 알람입니다. 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으니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와 관심, 지지와 사랑을 받을 것을 독려하는 뇌의 신호인 것이죠.
문제는 외롭다고 생각할수록 더 외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과도한 경계 태세인데, 무리로부터 혼자 떨어진 초기 인류가 선택한 생존 전략이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혈혈단신으로 누군가를 쉽사리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느낌은 삶을 파괴시킬지도 모릅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방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외로움과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되뇌게 하니까요.
사랑의 힘은 만성적인 외로움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켜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서로에게 진실할 때만 가능하죠. 상황이 나쁘게만 흘러간다면,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마음속 진짜 이야기들을 꺼내 줄 겁니다.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을 공유했던 존과 스테파니처럼요.
거부할 수 없는 세상
존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스테파니의 사랑은 무너졌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겪어왔지만 이별은 미처 준비하진 못했어요.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많던 뇌과학 지식도 사랑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죠. 존이 그녀의 삶에 계속 존재하려면 결국 존을 기억할 때의 고통을 온전히 끌어안아야 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존이 스테파니의 뇌 속에 남아 어디서든 함께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인간이 사랑하도록 진화했다면, 너와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세상이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한 장면)
다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나태주 시인은 신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알고 너를 내게 보내주셨을까”냐고. 사랑은 “작은 바람에도 두렵게 떨리는 악기”처럼, “천만리 흘러넘친 비단의 노을 강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알 길이 없어서 시인은 “그냥 가슴에 안아”보기로 합니다. 그토록 복잡하고 치밀한 뇌가 푹 빠지는 걸 보면, 사랑이 “거부할 수 없는 세상”임은 분명합니다. (나태주의 시 <사랑> 중에서)
곁들이면 좋을 책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애나 마친 지음. 제효영 옮김. 어크로스
『변화하는 뇌』. 한소원 지음. 바다출판사
『프렌즈』. 로빈 던바 지음. 안진이 옮김.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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