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로 전 세계가 Pandemic 속에 몰아넣어져 모든 것이 멈춰져 버린 듯 속절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다가 조금 주춤하는가 싶을 때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해 세계인들을 또다시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2021년 12월 즈음에 미국에서도 이 변이 바이러스인 Omicron이 출현했다. 두려움에 떨던 학회 참석자들은 하나 둘 취소하기 시작했고, 이대로 대면 학회를 열기 어렵다고 판단한 학회 측에서는 학회가 열리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연기를 통보했다.
학회 등록, 호텔, 셔틀, 항공 모든 예약을 취소 및 환불 절차를 진행해야 했고, 나는 이때 영어 수업 시간에 배웠지만 절대 써먹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환불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주구장창 쓰게 되었다. 배운 것을 써먹다니 뿌듯하고 가장 적기에 영어 학원을 등록해서 수업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환불 절차를 밟는 것이 힘들었고, 심지어 항공은 환불을 해주지 않고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딧을 주면서 굉장히 머리가 아픈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인터뷰를 학회를 다녀온 김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면서 내 사비로 전액을 부담해야 한 것도 어려웠던 점이었다.
또한 학회의 재개최가 언제 이루어질지 몰라 그것도 아쉬웠다. 해외 학회를 가보긴 했지만 나의 연구 결과로 처음으로 포스터 발표를 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것도 꿈꿔왔던 미국에서 열리는 학회인데 다시 갈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리다니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COVID-19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학회가 다시 개최되긴 할지, 만약에 재 개최 되었다가 또 새로운 변이가 출현해서 또 취소되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여러 생각이 많이 들어 괴롭기만 했다.
학회가 연기되어 인터뷰만 하게 되었지만 기왕에 나가는 거 박사 과정을 마쳤으니 기념으로 여행이라도 하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해 일정을 예정보다 훨씬 길게 잡았다. 예전부터 디펜스 후에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코비드로 망설여지곤 했지만 어차피 나가야 하는 일이므로 한 달까지는 아니지만 3주 정도로 계획했고, 항공권을 재구매해서 San Francisco 출/도착으로 바꾸었다. 인천공항에서 항원테스트로 음성 확인서를 받아서 항공기에 탑승하고 10시간 50분 정도를 비행한 끝에 San Francisco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와 공항을 연결하는 연결 통로를 지나는데 드디어 내가 그토록 원하던 미국 땅을 밟아본다는 마음에 설렘으로 가득 찼다.
공항에서 Bart라는 열차를 타고 Powell역에 내려 숙소가 있는 Union square에 도착했다. San Francisco의 첫 느낌은 거리에 노숙자가 많고 마리화나로 추정되는 마약류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노숙자들이 큰 캐리어를 끌고 가는 나를 바라볼 땐 내가 너무 겁도 없이 미국에 혼자 왔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이른 오후라 밖으로 나가서 Lombard street이라는 San Francisco의 상징과도 같은 꼬불꼬불한 길을 찾아갔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만 보던 장면을 두 눈으로 보니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리곤 Trader Joe’s에 가서 저녁과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음식들을 사 왔다. 그렇게 San Francisco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첫 주는 Pier39, Fisherman’s wharf, SFMOMA, Davies symphony hall, Alamo square, Ferry building, Bay bridge, Golden gate bridge, Twin peaks, Palace of fine art 등을 관광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주는 인터뷰 준비를 하며 Washington square, Little Italy, UC Berkeley, Sausalito 등에서 소소하게 구경하고, 인터뷰 날엔 Stanford를 걸으며 광활한 미국 땅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세 번째 주엔 인터뷰를 마쳐 평온한 마음으로 San Diego로 건너가 Winery tour와 Balboa park, San Diego zoo,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해변들을 감상했다. 여기까지 와서 LA를 안 가보면 아쉬우니 하루는 LA 일정으로 보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엔 다시 San Francisco로 돌아와서 Halfmoon bay의 절경을 바라보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잘 마무리하고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리라 다짐하며 떠났다.
미국에서 19일을 머물며 내 인생의 최고의 행복감을 맛보았다. 연구가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길을 선택했고, 7년 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있으면서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학기에는 매일 같이 자정 넘어 퇴근하며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늘 앉은 자세로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읽고 쓰다 보니 목과 어깨에 심한 통증이 생겨 디펜스 후엔 한 달간 도수 치료를 받으며 지내면서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싶기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보낸 여유로운 시간들은 나를 회복시켜 주었고, 그 무엇보다 값진 보상이 있었기에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보람차고 뿌듯했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 부르며 American dream을 마음속에 품고서 그곳으로 건너갔다. 나는 이민자는 아니지만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진 미국에서의 포닥 생활을 항상 꿈꿔왔었기에 나에게도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그리고 학회 장학생으로 선정된 것이나 Stanford에서 포닥을 시작하게 된 것 모두 나의 배경이 아닌 박사과정 때 내가 해온 연구 하나만으로 기회를 얻게 된 것 같아 감사했다. 한편 이제 겨우 기회를 얻었을 뿐 여기서 얼마나 내 꿈을 현실로 만들지를 증명하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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