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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창업도전기] 17화. 창업은 대학원 과정과 유사하다.
회원작성글 BRIC
  (2022-06-14 13:13)

창업은 대학원 과정과 유사하다.


창업 2년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요즈음,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창업은 의외로 대학원 생활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공계에서의 대학원이란, 과학자로서 데뷔하기 위한 연습기간에 해당한다.

이 연습 기간 동안 학생들은 과도하게 쌓인 지식을 재구성하여 어떤 연구를 하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나보다 뛰어난 많은 이들의 연구를 보며 감탄하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내 연구를 보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버텨나간다.  공부하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은 멘털이 날아가는 경험을 일반적으로 겪는다. 쏟아지는 질문은 마치 해일과 같고,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영혼이 털리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물론 대답을 해도 털리는 것은 동일하다. 그렇다. 이 과정은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나란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 현실을 마주하는 자리다. 그렇게 부족한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은 이런 트레이닝을 버틸 것이며, 그렇지 못한 자는 진로 재설정을 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창업을 한 뒤, 나는 대학원생일 때 느꼈던 영혼 털리는 기분을 간혹 느끼고 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는 데에는, 지금 창업 과정에서 겪는 상황이 대학원 과정 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상은 취업해서 직장인이던 시절과 달리, 대학원 때와 점점 더 유사해지고 있다.

학위 과정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사업을 위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간간히 최근 업계 흐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어떤 최신 연구들이 나타나는지도 확인한다. 심지어 학위과정 때에는 하지도 않았던 정부과제 수주를 위해 다양한 기관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 최신 동향을 반영해서 말이다. 이러한 최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학회도 되도록 꼬박꼬박 참여하려 한다. 이런 동향을 파악해야 내가 하는 연구의 단계가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러한 부분을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 생각을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의 연장선 같다는 느낌을 간혹 받게 되는 데에는 이런 업무들이 창업자의 일상이기도 하지만, 대학원생의 일상과 딱히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제가 떨어진 대학원 랩은 가난해서 실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나만 멈춰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이다. 나보다 백만 배는 훌륭한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멈춰 있다는 생각이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그 불안감이 힘들었다.  그렇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잘되는 상황에 놓인 것 같은 불안감은 정말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 감정은 창업 생태계에 입성한 뒤, 가끔 불쑥 나를 찾아와 혼을 쏙 빼놓곤 한다

나 빼고 다 잘되는 것 같고, 나만 바보같이 멈춘 것 같고, 나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

마치 논문 쓸 때와 상황이 유사하지 않던가? 그래서인가, 나는 간혹 창업 후 나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졸업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듯 한 생각이 들곤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박사 과정 속에 머무는 듯 한 느낌도 받는다.  특히, 간간히 멘털이  날아가고, 날아간 멘털 찾아오는 과정은 여전하다.

입학과 동시에 주어진 논문 주제가 실험을 거듭하고 연구기간이 길어짐과 함께 계속 다듬어지고 그로 인해, 최종 논문의 주제는 처음과 달라진다는 점도 유사한 듯하다. 벌써 초기 단순했던 사업 아이템은 계속 다듬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과정 시작할 때 졸업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 나도 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기업가라는 이름의 학사모를 쓰게 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학위 과정이건, 창업 과정이건 미래가 딱히 보장되지 않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결국 필요한 것은 멘털이란 생각을 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 매일 확인하게 되는 부족한 나 자신, 수많은 뛰어난 사람들, 끝없이 부족한 내 연구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쏟아 부여야 할 노력과 시간 등을 생각해볼 때,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뻔뻔함이다. 멘털쯤이야 간혹 부서지더라도 금방 회복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계속 보게 되더라도 내년에 나는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일단 믿어 보는 것 등 말이다.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 중, 부득이하게 연구를 전면 수정해야 하는 것처럼, 사업 내용을 전면 수정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니, 그때 미련 같지 않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강한 멘털도 아마 필요해질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매일 마주하게 되는 이 멘털 무너지는 상황들을 그냥 무던히 넘기려 노력하고 있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어 위로가 되곤 한다.  대학원 생활도 주변 사람들의 토닥임으로 버텼던 것처럼, 창업 과정에서도 비슷한 토닥임으로 현재 잘 버티는 중이다. 만약,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면, 멘털 관리를 해줄 지인 내지는 동료의 도움이 절실할 수 있다. 꼭 미리 확보를 하고 시작하길 추천한다. 같이 하는 동료가 있고 정신적으로 토닥임을 받고 있을 경우엔,  다 그만두겠다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부정적인 생각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큰 우울감을 가져오지 않던가?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꼬리를 물진 않는다.

대학원과 창업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 절망적인가?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 대학원 과정이란 누군가의 허가가 있어야 하산이 가능하나, 창업은 시작과 끝을 내가 결정할 수는 있다. 이 정도만 되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작성자: 윤정인 (엄마 과학자, 유기화학자, 칼럼니스트, 창업가)

* 본 글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피펫잡는 언니들"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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