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멈출 수 없다 (멀린다 게이츠 저, 강혜정 역/ 부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게 되는 긴장감이 있다. 활주로에 서기 위해 빙빙 돌던 비행기는 갑자기 엔진 소리를 내며 꽤 속도감 있게 달린다. 그리곤 활주로 끝에서 ‘붕’하고 날아오르는 순간, 그 순간은 늘 긴장을 녹여주며 고요함을 선물한다.
그렇게 떠오른 비행기는 일정 고도까지 쭉 날아오른 후에야 안정감 있는 비행이 시작된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대표인 멜린다 게이츠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 [누구도 멈출 수 없다]에서 ‘붕’ 하고 날아오르는 그 고양의 순간(The moment of lift)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00년 게이츠 부부에 의해 세워진 이 재단은 주로 국제적으로는 보건과 빈곤퇴치 사업에 지원하며, 미국 국내적으로는 교육과 정보 기술 확대에 대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게이츠 재단이 지난 몇 년간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9년 멜린다는 ‘타임’ 지에 앞으로 10년간 10억 달러를 미국의 젠더 평등을 끌어올리는데 쓰겠다는 칼럼을 기재했다.
첫째, 여성의 전문성 향상에 대한 장벽을 해체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 대부분이 전일로 일하면서 돌봄 노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광범위한 성희롱과 차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직면하고 있다.
두 번째, 미디어와 공직 등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의 여성리더를 빠르게 양성할 것이다. 이런 분야의 기존 진입경로는 남성에게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성 리더 양성을 위해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에게 공평하게 열릴 수 있는 새로운 경로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주주, 소비자와 직원들을 움직여 변화가 필요한 기업과 조직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이를 위해 데이터가 필요하며,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한 제대로 된 데이터를 만드는데 투자할 것이다.
10억 달러는 꽤 많은 돈이지만 젠더 평등을 위해 사용되야 할 금액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가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이고 10억이라는 돈을 들여 앞장서는 이유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조차도 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여성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평등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 투자는 평등하지 못한 환경 가운데 있는 여성들을 ‘붕’ 띄울 수 있는 고양의 순간을 만들 수 있다.
[누구도 멈출 수 없다]는 최근에서야 그들이 젠더 평등에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재단을 만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멜린다가 만났던 세계 곳곳의 여성들, 특히 가부장적 문화와 종교와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과 남성의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인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건강과 경제적 불평등 속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늘 빌 게이츠 뒤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멜린다가 세상에 나선 계기는 바로 ‘여성의 임신 선택권’ 때문이었다. 피임을 통해 가족계획이 가능한 이 시대의 장점은 바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능할 수 있으며, 임신과 출산 후의 여성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주어지기 때문이다. 빈곤 국가의 여성들은 임신의 자기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 끊임없는 임신으로 여성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출산 환경도 좋지 못하고 산후조리 조차 꿈꿀 수 없는 환경이다. 이러한 반복된 임신으로 아이는 사산이 되기도 하고, 종종 임산부가 출산 중에 사망하기도 하며,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임신-출산-돌봄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해 경제활동마저 할 수 없는 가난의 환경에서 건강과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게이츠 재단은 과학적 데이터를 모은다. 공중 보건 연구를 통해 피임약과 교육과 경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여성이 독립적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고, 경제적 자립을 할 때 달라지는 그들의 삶의 변화를 관찰한다. 농업 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곳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농업정책과 기술이 어떻게 생산성을 향상하는지에 대한 것을 발견하며, 조혼과 여성 할례로 인해 어린 나이의 여자 아이들의 건강의 위협과 그로 인한 교육의 기회와 경제적 박탈에 대한 데이터도 모은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방법은 사뭇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무언가 잘못된 상황과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 혹은 빈곤국에 그들의 방식으로 서비스, 해결책과 돈을 쏟아붓지 않았다.
“그들의 잔은 비어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그들의 잔에 마구 쏟아부을 수는 없어요”라는 현지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현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 이것이 그들이 과학적 데이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사랑만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세상 어느 어머니도 자기 아이를 무덤에 묻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과학도 필요하다. 그리고 과학을 전달하는 방식은 과학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고양의 순간’은 멜린다가 꿈꾸는 재단의 역할이다. 빈곤, 건강, 경제력과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을 ‘붕’ 띄워주는 그 역할. 그리고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데이터와 대화를 통해 힘을 더해줄 때에 여성들은 비로소 안정감 있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2020년 현재로 돌아와 보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 속에 있는 이 시기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를 해왔던 그들 이기에 백신과 치료법에 대한 그들의 의견에 많은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물론 빌과 멜린다는 영역을 나눠서 재단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멜린다의 목소리는 백신과 더불어 좀 여성들의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여성은 세계적으로 보건 및 사회 부분 인력의 70%를 차지하며,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두 배 이상의 무급 돌봄 노동을 수행한다. 병원과 가정에서 이들의 역할은 감염의 위험성이 높다. 여성의 노동은 저임금 영역에서 높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기에 취약하며, 보건 시스템이 코로나19에 집중되면서 모성 사망률이 증가한다. 많은 나라에서 폐쇄조치로 인한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그는 세계 공중 보건 위기 속에서 이에 대응하는 국제기구와 각 국가가 젠더의 역할을 이해하고 이를 대응에 반영해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삶의 변화는 여성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는 방법이자 우리 모두의 삶에 ‘고양의 순간’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작성자: LabSooni Mom (필명)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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