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를 위한 과학 책 산책”은 과학자가 아닌 필자가 과학 책을 읽고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보내는 글입니다. 과학 책에 담긴 지식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발견하여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사회는 과학에 어떠한 요구를 하고 있고, 과학은 앞으로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글을 통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반쪽 짜리' 과학에 보내는 변화의 목소리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황가한 옮김, 『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20), 238-244쪽.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키가 작은 사람이 평균 키의 사람보다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키가 작은 사람은 운전할 때 페달에 발을 놓기 위해 평균 키의 사람보다 더 앞으로 바짝 다가 앉고, 계기판 너머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허리를 더 똑바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평균 키의 사람이 취하는 ‘표준 자세’가 아닌 ‘잘못된 자세’로 여겨지고, 대부분의 자동차는 ‘표준’에 맞게 설계되어 있어 키가 작은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충돌이 일어났을 때에 사고를 당하면 중상을 입을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를 배제한 자동차 설계를 바람직한 설계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더 위험한 자동차’가 바람직한 설계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네가 자동차 사고로 다친 건 키가 작은 네 잘못’이라고 말하거나, ‘네가 자동차에 맞춰 키를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동차를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동차의 설계를 바꾸거나 조정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자동차 충돌 실험에서도 다양한 크기의 모형을 사용해 실험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키가 작은 사람’을 ‘여자’로 바꾸어보자.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여자가 남자보다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장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2014년 기준으로 여성이 전체 운전자의 40.6%에 이르고 있지만1, 지금까지 자동차는 백인 남성 평균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왔고 여성의 신체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가 단순히 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여성의 유방을 고려하지 않은 안전벨트 디자인, 목과 상체에 근육이 적은 몸을 고려하지 않은 자동차 좌석, 남성보다 가벼운 여성의 신체를 단단히 잡아주지 못하는 좌석 등받이…. 비장애인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된 자동차에 대한 지적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2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황가한 옮김, 『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20).
흔히 데이터에 의거한 판단은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 데이터가 ‘반쪽짜리 데이터’라면 어떨까?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가 쓴 『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는 고용과 승진, 산업 안전, 도시계획, 경제, 의학 연구, 질병 진단과 치료에서 결정을 내릴 때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생산할 때 여성이 배제되어왔으며, 그러한 젠더 데이터 공백으로 인해 여성이 정책에서 무시되어 왔음을 지적한 책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등의 극찬을 받았고, 2019년 영국왕립학회 과학서적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의료’를 다룬 4부의 내용이다. 저자가 “역사적으로 남체와 여체는 크기와 생식기능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게 없다고 간주되어왔다”3고 지적하듯이, 생물학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학자들은 인체의 모든 조직과 장기, 질병의 유병률과 추이, 강도 등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발견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의료 분야에서 여성은 그저 ‘작은 남자’ 정도로 취급 받는다.4 사람들은 ‘여성은 남성보다 작고 힘이 약하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정작 내가 배운 해부생리학 교과서에선 여성과 남성이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동물 실험은 ‘까다로운’ 암컷 대신 수컷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여성은 남성보다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70%나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뇌질환에 관한 동물 실험은 대부분 수컷 쥐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동물 실험이 아닌 임상시험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임상시험에서는 여성 피험자가 포함되지 않았고 이는 여성과 남성이 특히 차이를 보이는 분야나 여성의 유병률 및 사망률이 높은 질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여성의 혈압이 정상 수준에서 20mmHg 상승할 때마다 관상동맥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은 남성의 2배씩 증가하지만,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개발된 고혈압약은 여성의 몸에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5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여성이 복용할 거라고 기대하고 만들어진 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몸은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를 임신에 늘 대비하고 있어 남성의 몸과는 다른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로 인한 자가면역질환이나 백신 반응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해서도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미 독감 백신을 여성용과 남성용을 구분해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연구가 존재하는데도 말이다.6
이러한 이야기를 생물학도 친구들에게 하면 ‘암컷 쥐는 배란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임상 시험에 여성 피험자가 많이 참가하지 못하는 것도 ‘여성들이 아이들을 돌보느라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암컷 쥐나 여성 피험자를 실험에 참가시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일 뿐, 세상의 반에 관한 데이터가 여전히 물음표로 남겨져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에 대해 맥길대학교 신경과학과 교수 제프리 모길은 이렇게 말했다. “연구 시작 단계에서부터 한쪽 성별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학자로서 멍청할 뿐만 아니라 돈 낭비이며 윤리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글 내내 ‘여성을 명확하게 호명하고, 여성의 데이터를 수집하라’고 말한다. 여성이 세상의 반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성별을 표시하지 않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고 지워져왔던 여성에게 제 몫을 찾아주는 것은 그들을 명확하게 표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 책은 “변화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바로, 남성만이 인류의 표준으로 여겨져왔던 반쪽짜리 과학과 역사를 뒤집는 변화 말이다.6
출처:
1) 이근영, “여성 운전이 남성보다 위험?” 한겨례, 16.02.21. (2020.08.02. 접속)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31365.html
2) 한국에서 자동차 설계에 대한 젠더 불균형을 지적한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017년부터 운전석에 여성 인체 모형을 사용해 충돌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는 정면충돌 안전성에만 국한되며 측면충돌 안전성, 기둥 측면충돌 안전성, 좌석 안정성, 보행자 안전성 평가 시험에는 여성 인체 모형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 또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여성 인체 모형'은 ‘크기만 줄인 남성 인체 모형’에 불과한데, 여성의 몸 형태나 임신 여부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형을 사용해 얻어낸 데이터가 ‘여성을 고려한 안전성 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오미혜, 장은진, 백희영, “자동차 안전성과 젠더 혁신(2018)”, 오토저널 40(11), 41-45쪽;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황가한 옮김, 『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20), 238-244쪽.
3) 같은 책, 248쪽.
4) 같은 책, 261쪽.
5) 같은 책, 51쪽.
6) 이 책에서와 같이, 지금까지 페미니즘은 과학에 대해서는 ‘과학이 여성을 배제해왔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주로 취해왔지만 최근에는 페미니즘과 과학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려는 연구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난 7월 31일부터 <한겨례>에서 연재를 시작한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의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다양한 연구를 소개할 예정이다. 임소연, “정자를 기다리는, 조신한 난자는 없다”, 한겨례, 2020.07.31.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55937.html?fbclid=IwAR0QtMROGxfC6aX4mXxfMBk18_35otkykUFU-IhpiPV43878AINDFs30iWM (2020.08.07. 접속).
작성자: 조희수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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