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여성과학기술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글로벌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미 여성 과학기술자협회 회원들이 멘토로 한국의 학부/대학원 그리고 경력 초기에 있는 멘티들이 참여했다. 약 6개월간의 멘토링을 끝내며 주므로 마지막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멘티들이 한결같이 꺼낸 말은 “이렇게 많은 여성과학기술자 분들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지 몰랐어요.”라는 것이었다. 지난 6개월 멘토링을 하면서 만났던 멘티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보면, 사는 곳도 학교도 전공도 다르고 각자의 관심분야와 멘토링을 지원한 목적이 다 달랐음에도 공통으로 갖고 있는 고민은 한 가지였다.
“내가 내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까?”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원 혹은 유학을 가고, 학위를 받고 포닥을 가고, 학교나 민간 혹은 정부 연구소에 취업을 하는 커리어의 골드 스탠더드도 시간과 노력 그리고 약간의 운이 따르지 않으면 쉬이 걸어갈 수 없는 길이다. 여성에겐 그 길에 현재의 가정으로 인한 고민과 미래의 가정으로 인한 염려가 늘 따라붙는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의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는 미국의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여성들의 커리어와 가정에 대한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성별 소득격차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란 책에 담았다. 골딘 교수는 지난 100년을 시대순으로 5 세대의 집단으로 여성을 분류를 한다. 집단 1은 가정 혹은 커리어 중 한쪽에 집중한 경우, 집단 2는 일자리, 그다음에 가정, 집단 3은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 집단 4는 커리어, 그다음에 가정, 그리고 마지막 집단 5는 커리어와 가정 모두를 추구한다. 이 연구의 대상은 대졸 여성으로, 여성의 대학교육이 190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그에 따른 데이터가 충분한 미국이라서 가능한 연구이기도 하다. 골딘 교수는 이 책의 앞부분에 이 연구에서 정의된 가정에 대해 기혼이든 미혼이든 입양을 한 경우이던, ‘아이’가 있는 경우라고 정의했다. 또한 일자리와 커리어를 구분해서 정의했는데, 커리어는 ‘일구고 진전시키는 데 온전한 관심과 집중을 쏟을 필요가 있는 일’을 이야기하며, 그렇지 않으면 커리어가 아닌 일자리라고 이야기한다.
집단 1,2는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커리어를 가진 미혼 여성의 비율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가정과 자녀 양육으로 일자리를 그만두는 경향이 높았다. 집단 3의 경우는 결혼하는 비율이 높고, 결혼을 하는 연령대가 가장 낮았음에도 이혼율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이 집단의 경우는 양육의 기간이 끝난 이후에 다시 일자리로 돌아오는 비율이 높기도 했었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는 건, 1960년대 중반부터 1070년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한 집단 4이다. 이들은 결혼을 뒤로 미뤘고, 커리어를 그 앞에 두었다. 앞 집단의 낮은 결혼연령, 높은 자녀 출산율을 보았으며, 그들이 자녀 양육 이후에 다시 일자리로 돌아왔을 때의 낮은 임금과 더불어 높은 이혼율을 목도했다. 앞선 집단 3에 비해 자신들의 삶의 제일 우선순위를 커리어로 채웠던 집단 4에게는 피임약이라는 마법의 알약이 있었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 미국을 휘몰아쳤던 여성운동을 통해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얻었고, 피임약을 통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개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주장했고,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유지하며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는 전문직으로의 진출도 늘어났다.
골딘 교수는 이 연구에 나오는 각 집단의 여성들은 뒤에 오는 이들이 각각 앞서 간 이들을 눈으로 보고 성장했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와 더불어 여성들의 삶과 커리어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보고 자란 이들에게는 자신의 때에는 전 세대보다 나은 결정을 하기 경향을 띄었다. 집단 4의 혁명적인 성과의 단점이 있었다면 마법의 알약은 출산을 늦출 수는 있었지만, 여성의 신체 나이는 그 늦음을 기다려 주지 않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기회가 쉬이 오지 않았다. 가장 최근인 집단 5는 커리어와 가정을 둘 다 손에 쥔 집단으로 표현되며 현재 미국의 40대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커리어를 우선으로 하다 가정을 이루기 힘들었던 집단 4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생식 테크놀로지(시험관 아기, 생식세포 자궁 관내 이식, 난자 냉동, 염색체 검사 등) 발달과 더불어 민간 의료보험에서 이를 보장하도록 한 법안 제정의 영향이 있었다. 집단 4보다 대학-대학원 졸업률이 높고 결혼하는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하는 연령이 높아짐이 그들이 커리어의 기반을 이룬 후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큰 혁명적인 변화가 되었다.
그러나, 집단 5에 속하는 나와 주변의 여러 여성과학기술자를 포함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 연구에서 이야기하는 큰 혁명적인 변화는 궁극적인 문제인 성별 임금차 해결해 주지 않았다. 대학교육도 대학원 교육도 과반 이상이 함께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옆을 보니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흔히 이야기하는 여성 노동 문제의 새는 파이프라인 문제는 파이프가 새는 고비고비를 제도와 정책 그리고 세금으로 패치를 붙이고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들었다. 실제 아이를 낳고 돌봄의 비중이 높은 여성들에겐 현재의 시간은 성별 임금차를 절대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

© 네이처 (캡처 이미지)
골딘 교수는 이 책을 코로나19와 함께 마무리했다. 코로나19 초기, 모든 곳이 문을 닫고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사와 돌봄의 무게는 더 무거웠다. 나의 경우 연구소에서 요구하는 재택근무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다. 교육 내용 중 재택근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자신만의 컴퓨터와 모니터, 안전한 공간 그리고 독립된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집에 있을 리가 만무했다. 숱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미팅을 했고, 아이들 온라인 수업에 대한 알림은 끊임없이 메일과 텍스트 메시지로 쏟아졌다. 모든 식구가 한 집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누군가는 돌봄과 가사의 몫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UN 여성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을 바꾼 여성과학자들에 초점을 맞췄지만(1), 네이처의 조사(2)와 미국 과학, 공학, 의학 한림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셀 수 없는 많은 여성과학자들은 과학자로서의 자아와 돌봄 노동을 하는 자아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쉽지 않았다(3).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노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다시 거꾸로 돌아갔다. 코로나19가 끝난다면, 혹은 코로나19와 함께 미래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며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 사회의 노동과 돌봄의 문제를 직접 마주해야 한다. 골딘 교수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로 표현했다. ‘워라벨(work and balace)’이란 성공과는 먼 요즘 세대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과 사회가 모두 ‘시간을 들여, 죽도록 일하는 일자리’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 혹은 부부간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가정과 커리어는 현재를 사는 우리의 문제이자 다음 세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멘티들의 “내가 내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까요?”라는 그 물음에 난 자신 있게 “물론이죠!”라고 답해 주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함께 원하는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길, 혹은 혼자일지라도 함께 걷는 동료들이 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참고 자료]
(1) https://www.unwomen.org/en/news/stories/2021/2/compilation-women-in-science-leading-during-the-pandemic
(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1294-9
(3) The Impact of COVID-19 on the Careers of Women in Academic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 (2021)
작성자: LabSooni Mom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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