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한 권이면 연구실의 재미주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과학 공부의 시작점 중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궁금함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 가수가 노래로 만들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연구를 하다 보면 인간의 몸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은 ‘다룰 수 있는 주제’로 좁혀집니다. 어떤 연구자는 질병 하나에 십수 년을 투신하고, 세포 내 대사 경로의 빈칸 하나를 채우기 위해 전 세계 연구자들이 모이기도 합니다. 연구에 성실하게 매진할수록, 질문도 확실하지 않았던 궁금함은 더욱 흐려집니다. 이제는 재미로 알아봐도 좋겠죠. 인체에는 어떤 원리가 있을까요, 어떻게 연구되었고, 어디까지 알게 되었을까요?

빌 브라이슨의 <바디>는 인체의 여러 가지 면모를 재미있게 엮은 책입니다. 작가는 인체와 인체 연구 일화를 자신만의 기준으로 조합하고 차근차근 내놓습니다. 연구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기도 하고요. 과학자가 직접 쓴 책은 아니라 어물쩍 넘어가거나 아쉬운 설명도 있지만, 과학자라면 역사 속 사건과 라틴어 어원까지 줄줄이 엮어 쓰지는 못했겠지요.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정보를 조사해서 엄선했는지, 그걸 이렇게 재미있는 어조로 엮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제가 쓰는 서평 시리즈 제목인 [PCR 돌리고 한 장]에 어울리는 책입니다. 유익한 이야기와 황당한 일화가 문단마다 번갈아 나옵니다. 한두 페이지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기 좋습니다. 반면 한꺼번에 읽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읽을 때는 재미있어도 기억에는 잘 남지 않습니다. 책을 다 읽었지만 재미있었던 수많은 토막 상식은 다 사라졌고 요로결석 수술에 네 명의 성인 남성이 동원되었던 끔찍한 수술 삽화만 기억에 남아버렸네요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다음 그림은 흐린 눈으로 넘어가 주세요).

A surgeon performing a lithotomy on a patient, c. 1747.
Wellcome Library, CC BY-SA
여느 교양 과학서와 비교하자면 빌 브라이슨은 숫자를 잘 쓰는 작가입니다. 단순히 수치를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기 좋은 규모로 바꿔서 이야기합니다. 과학에 등장하는 숫자는 너무 작거나 크기 마련입니다. 어렴풋하게 대단하다는 인상만 남고 잊어버려요. 이 책에서는 작가의 설명 덕분에 손에 잡히지 않던 개념도 가늠하게 됩니다. 평생 분비하는 침의 양을 3만 리터라고만 말하지 않고, 욕조 200개를 채우는 양이라고 덧붙이는 식입니다. 같은 사실도 숫자를 가져와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합니다. 인간의 세포 수는 약 30조이고 미생물의 수는 3-50조라고 합니다. 통념과 달리 미생물 숫자가 그렇게 큰 건 아니라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유전 정보 차원에서는 세포마다 거의 동일한 2만 개 유전자 대비 각기 다른 유전자 2천만 개가 있는 셈이라며 인체 미생물의 다양성을 설명합니다.
인체가 주제다 보니 스스로의 몸에 적용 가능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사람들 중 14%는 긴손바닥근 (장강근)이 없다고 합니다. 혹시 제가 14%는 아닐까 기대하며 긴손바닥근을 따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찾아보니 긴손바닥근 확인법도 나왔습니다. 엄지를 새끼에 붙이고 손목을 굽히면 나오는 힘줄이 긴손바닥근입니다. 저는 긴손바닥근이 있었고, 한국인 중 긴손바닥근이 없는 사람의 비율은 4%밖에 안 된다네요. 고중량 바벨을 들기 어려워 혹시나 했지만, 그냥 힘이 약한 것이었습니다.

긴손바닥근 확인 방법. 엄지를 새끼에 대고 손목을 굽혔을 때 보이는 힘줄이 긴손바닥근을 연결하는 힘줄이라고 합니다. Abu-Hijleh, Marwan. (2020)
인체 연구를 읽다 보면 사람이기에 연구할 수 없는 영역도 느끼게 됩니다. 삶에 생기는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영원히 원인을 모를 질병부터, 자의식 말고는 측정할 방법이 없는 여러가지 느낌도 있습니다. 책에 나온 여러 사례 중 ‘이유 없는 가려움’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가려움에 대한 암시만 받아도 등 어딘가가 가려워집니다. 저자는 대상 포진 후 생긴 이유 없는 가려움으로 고통받은 환자를 이야기하며, 이런 주제는 연구가 거의 불가능하리라 장담합니다. 글쎄요. MRI 기기에 들어간 실험 참여자에게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그런데 혹시 지금 등이 가렵지는 않으세요?’라고 물어보면 가능할까요? 참여자가 등을 들썩여서 안 될 것 같네요.
책을 소개하며 아주 일부 내용만 가져와 보았습니다. 이외에도 빌 브라이슨은 다양한 분야 정보를 모아 자신만의 어투로 책을 썼습니다. 유명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나 <~산책>으로 끝나는 여행 책을 비롯해, 작년에는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와 <언어의 탄생>이라는 책도 한국에 나왔습니다. 전자는 집과 생활 방식, 후자는 영어를 비롯한 언어에 대한 책입니다. 보장된 재미를 선사하는 작가이니, 인체 외에도 관심 분야가 겹친다면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재미있는 인체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도 좋습니다. 인터넷 연재 때부터 봤던 팬이었습니다.
<참고자료>
* 책 표지 출처: 알라딘(www.aladin.co.kr)
* 참고: 국가별 긴손바닥근이 없는 사람의 빈율
Ioannis, D., Anastasios, K., Konstantinos, N., Lazaros, K., & Georgios, N. (2015). Palmaris Longus Muscle's Prevalence in Different Nations and Interesting Anatomical Variations: Review of the Literature. Journal of clinical medicine research, 7(11), 825–830. https://doi.org/10.14740/jocmr2243w

Abu-Hijleh, Marwan. (2020). The Prevalence of Absence of the Palmaris Longus Muscle in the Bahraini Population. Clinical Anatomy 2010, 23(8): 956-961.
작성자: 이지아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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