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 실라 재서노프 지음 ∣ 박상준·장희진·김희원·오요한 옮김 ∣ 동아시아∣2019년 1월 30일 출간
East_Asia
(2019-02-01 16:44)
생명과학은 법과 제도, 국가 정책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까? 정답은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었다"이다. 20세기 초중반에는 화학과 물리학이 두 차례 세계 대전을 일으키며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생명과학이 국가를 위해 새로운 역할을 했다. 생명과학과 유전공학이 발전하면서 동물 실험에 특허를 인정할 수 있는지, 배아 복제를 허용해야 하는지같은 질문이 제기되었는데, 이러한 질문은 사회질서의 근간과 관련된것이었다. 국가는 전에 경험하지 못한 질문들을 마주해 어떻게든 질서와 제도의 틀 안에 과학기술을 묶어둬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경합하고 충돌했다.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는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 이루어진 생명과학 정치의 사례들을 세밀하게 기록한 책이다.
책은 세 서구 사회 국가, 미국, 영국, 독일의 사례를 다룬다. 왜 한 국가가 아니라 세 국가인가? 왜 다른 나라가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을비교 연구의 사례로 삼았을까? 과학은 검증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학문이다. 미국에서 어떤 실험에 성공하면 한국에서도 비슷한 조건이 갖춰졌을 때 그 실험 결과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다르다. 과학 실험에서처럼 '비슷한 조건'을 갖출 수 없다. 미국이 어떤 법과 제도를 시행했을 때는 미국의문화적·역사적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제도를 시행해도 똑같은 효과를 거두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생명과학 기술이 개발되면 곧 그 기술은 여러 나라로 전파된다. 하지만 그 기술을 수용해서 제도화하는 과정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들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살펴보면서 미국, 영국, 독일이 각각 어떤 과정을 거쳐 생명과학의 이슈들을 수용했는지 비교해서 분석한다.
그러면 왜 하필 미국, 영국, 독일인가? 이 세 국가는 서로 다른 문화적·역사적 맥락 속에 놓여 있지만, 서구 민주주의 사회라는 점에서 유사한 정치적 전통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생명과학 이슈가 등장했을 때 그 사건들의 충격을 거의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국가였다. 20세기 중후반 무렵에는 대부분의 생명공학 발전이 미국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나타난 갈등을 최초로 마주한 것도 많은 경우 이 나라들이었다. 그리고책이 주목하는 민주주의 거버넌스 측면에서이 나라들의 특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생명공학 정치에서 어떤 일이 생겨나면 국가가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국민들도 이와 관련된 의사결정에 참여하려고 한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과학기술과 과학기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책은 국가 간의 갈등뿐 아니라, 과학자, 기업, 정부, 시민 사이에 나타난 갈등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아실로마 회의는 재조합 DNA 연구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아실로마 회의는 과학적 책임과 자기 규제의 모범으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이가 아실로마 회의를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DNA 구조를 밝혀낸 생명과학계의 스타 제임스 왓슨은 아실로마 회의가 ‘부조리극’이라고 혹평했다. 유전공학을 평가하고 규제하려는 노력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심각한 판단 착오”라고 주장한 것이다. 기술이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왜 기술이 사회운동가들이 내세우는 미지의 공포나 두려움과 결부되도록 방치해야 하는가? 왓슨의 입장에서 아실로마 회의가 과학자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보였을 것이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이 회의에 과학자들만 참여했다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아실로마 회의가 학자들의, 과학자들에 의한, 과학자들을 위한 규제였다고 비판한다. 재조합 DNA 기술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진 기술이며,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인류, 모든 생명체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과학자이 그런 기술을 완전히 책임질 수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시민 인식론이 등장한다. 시민 인식론이란 간략하게,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선택해 지식 주장을 시험하고 사용하는 제도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주장이나 시연은 불법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무시되었다. 이런 집단적 지식방식은 문화적 시민 인식론을 구성하며, 독특하고, 체계적이며, 제도화되고, 공식 규정보다는 실천을 통해 명료화된다. 시민 인식론이 성립되는 과정에서는, 전문가인 과학자뿐 아니라 정부와 대중도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된다. 광우병 사태, 유전자 조작 식품 수용 문제와 관련해 미국, 영국, 독일에서 서로 다른 시민 인식론이 자리 잡은 것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이 시민 인식론이 성립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이 책은 생명과학의 사례만을 다루지만, 우리는 최근 원자력발전소 유지 찬성/반대 논쟁을 통해 이러한 갈등과 과정이 여러 사례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런 일은 늘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논의할 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대타협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때 사회가 어느 정도로 강하게 규제를 펼칠 수 있는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시민 인식론은, 앞으로 과학기술을 사회적으로 적용하는 많은 사례에서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