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에서 20대 여성 근로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계열사에서 다시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연속된 사고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절감하게 된다. 사망한 근로자는 적절한 작업 환경에 있지 못했다. ‘건강의 공정’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SPC에서 회장 이름으로 직접 올린 사과문. 이미지=SPC 홈페이지 캡처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2022년 한국사회에서 벌어졌다. 이 사고를 접하면서 최근 읽은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김준혁 지음, 반비, 2022)가 자꾸 겹쳐졌다. 저자인 김준혁 연세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개인이 삶에서 누려야 할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려면, 그 기반이 되는 건강 수준 또한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라며 “이때 건강을 분배하는 일은 그에게 생활 습관을 변경할 공간을, 결정권을 행사할 영역을, 기본 조건을 충족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49쪽)이라고 강조했다. 건강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행동·조건이라면 ‘건강의 공정’이란 표현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SPC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건강의 공정 밖에 있었던 셈이다. 그녀의 작업장에서 2인 1조라는 기본 개념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건강의 공정에서 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개인의 가치 추구를 강조한다. 건강의 공정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개인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서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누군가 건강을 잃음으로써 그의 가치 추구가 제한된다면, 그에게 의료 서비스가 주어져야 한다”(51쪽)라고 밝혔다. 사망한 근로자는 과연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싶었을까.
장애·노화는 관리의 대상 아니라 삶의 조건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는 의료윤리학 혹은 의료인문학 차원에서 코로나19를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다. 각종 사례와 논리는 정교하다. 특히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울러 저소득 국가의 건강 문제에도 저자의 주장을 담았다. 예를 들어, 장애와 노화의 문제를 바이러스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평상시 생각해보지 못한 주장을 펼친다. 김 교수는 “장애와 노화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의 조건”이라며 “탈시설화는 단지 지역 바깥의 시설에서 지역 내 돌봄시설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장애인, 노인과 함께 살 수 있는 장소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107쪽)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환자를 격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듯이, 장애인과 노인을 특정 장소에만 가두는 것으로 사태가 진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발생한 혐오와 폭력에 대해서도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는 윤리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코로나19 환자에게 얼마나 따가운 시선을 보냈던가. 폭력의 층위는 확진자에 대한 폭력부터 정부가 개인 정보를 공개 하도로 강요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폭력이 벌어지는가? 책에선 질병에 대한 공포를 계속 기억하는 트라우마로 설명했다. 질병이 무서우니 그에 대한 트라우마를 폭력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김 교수는 “질병이라는 불확실성을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전적으로 껴안는 태도”(120쪽)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의료인문학에서 주장하는 ‘불확실성의 허용’이다. 질병의 공포는 이제 일상이라는 인식이 폭력이 아닌 다른 대응을 찾도록 하는 출발선이 된다.
“한국 역시 미국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들의 백신 과잉 확보를 비난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백신 공정 분배의 요구가 제기되는 가운데 공평의 실현을 저해한 셈이기 때문이다.”(73쪽)
백신 국가주의는 자국의 안전과 건강만을 추구하기에 비판을 받는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에 따르면, 2021년 4월 저소득 국가에서 받은 코로나19 백신은 전체 생산량의 0.2%뿐이었다. 그 당시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사망자도 많이 나왔다. 5개월이 흐른 같은 해 9월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고소득 국가의 사람들이 80%가량 백신 1차 접종을 마쳤을 때, 저소득 국가는 20%의 국민만이 1차 접종을 끝낼 수 있었다. 다시 7개월이 흐른 2022년 4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112억 회분이 접종되었다. 하지만 여러 국가는 10% 정도만 접종 완료율을 보였다. 예멘은 국민의 1%만이 접종을 완료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국제사회의 의료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런데 의료현장은 언제나 선택을 요구한다. 부족한 자원과 재원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한때 병동 확보가 사회적 이슈가 됐던 적이 있다. 김 교수는 ‘말기 환자 대 코로나19 환자’가 대치하는 상황이라면, 후자에 의료서비스를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 “사회적 최약자 층이 있는 공공병원 호스피스 병동이 아니라 ‘일반’ 호스피스 병동이라면” 전제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위기 상황이라는 전제 아래, 호스피스 병동을 코로나19 병동으로 전환하기 위한 병원 소개는 공정한 처사라고 말할 수 있다”(54쪽)라고 밝혔다.
과연 건강이란 무엇일까? 사회 종합적, 과학적, 개인적 차원의 성찰이 필요하다. 이미지=픽사베이
건강에 대한 사회·건강·개인적 차원의 고민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의 백미는 과연 무엇을 ‘건강’이라고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K-방역은 한 때 성공적이라고 여겨졌지만, 갈수록 일일 확진자는 늘어나고 있다. 2022년 3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일 확진자 수를 기록했다. 이에 대한 분석으로 김 교수는 세 가지 차원을 들여다봤다. 첫째 종합적 차원이다. 우리나라 방역 전략은 ‘3T(Test-Trace-Treat)’로 2022년 6월에는 국제 표준화까지 추진되었다고 한다. ‘검사·확진-역학·추적-격리·치료’는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 차원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하면 양상은 달라진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2020년 11월 24일 블룸버그의 ‘코로나바이러스 시대, 최고와 최악의 장소’에서 4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백신 준비 정도나 봉쇄 수준, 그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 항목에서 점수가 깎였기 때문이다.
둘째 과학적 차원이다. 코로나19 PCR 검사는 바이러스를 이루는 E 유전자, N 유전자, RdRp 유전자를 주로 증폭해 감염을 확인한다. 그런데 감염 초기의 경우 바이러스의 양이 적거나 유전자 형태가 일부 다른 경우 유전자 증폭량의 부족으로 감염이 되었다고 해도 PCR 검사 키트로는 밝혀낼 수 없다. 거꾸로 코로나19에서 회복이 되었더라도 바이러스의 잔여물이 남아 있거나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는 확진자로 판명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과학 방역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셈이다. 김 교수는 “K-방역의 빠른 검사는 바꿔 말하면 더 많은 사람을 검사 대상자로 잡는다는 뜻”이라며 “누군가는 실제로 감염되었으나 감염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고 안심해서 돌아다니고, 누군가는 실제 감염되지 않았음에도 감염되었다는 판정을 받고 격리 대상자가 된다”(18쪽)라고 적었다.
더욱이 PCR 이외에 자가검사 키트나 신속항원검사는 민감도와 특이도 때문에 위음성과 위양성이 발생한다. 검사 도구는 민감도 90%, 특이도는 99%를 띤다. 민감도 90%는 감염자 100명 중 90명만 감염되었다는 걸 밝혀낸다는 것이다. 특이도 99%는 비감염자 100명 중 99명이 비감염되었다는 걸 알려준다는 뜻이다. 즉, 검사 도구는 완벽하지 않다. 책을 보면, 비인두도말(코에서 검체를 채취) PCR 검사는 민감도 98% 이상, 특이도 100퍼센트라고 한다. 김 교수는 “K-방역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빠른 검사 결과에 더 많은 신뢰를 부여한다”라며 “위양성과 위음성 판정은 그 안에서 더 늘어나고, 검사 키트로 확인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부적절한 안심 또는 경계를 갖게 한다”(18쪽)라고 지적했다. 건강을 과학만으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셋째 개인적 차원이다. 건강은 개인의 행동이나 습관이 좌우한다. 건강은 과학적 수치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질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혈압이나 혈당과 체질량 지수 등이 정상 측정치라고 그 사람이 정말 건강한 것은 아니다. 건강 행동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지, 혈압과 혈당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등산 등 운동을 하는지 말이다. 김 교수는 “건강을 완전한 안녕 상태로 정의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건강하지 않게 된다”라며(34∼35쪽) “ 건강의 말뜻을 바꿔내는 과제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건강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추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35쪽)이라고 강조했다.
“외부에서 주어진 행동 양식에 순응하는 능력이 아니라, 나의 상태를 판단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에 맞게 행동하려는 의지를 ‘능력’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곧 건강이라고 여길 수 있다”(39쪽)
노동력 회복이 아니라 건강 회복이 먼저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한 건 한 개인이 한 세계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이 위협받으면 세계가 붕괴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건강=노동력’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닌지 김 교수는 지적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신속히 도입되었으나, 노동력 회복에만 관심을 둘 뿐 ‘건강’ 회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돌봄은 단지 개인과 가정의 몫인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감염 확산이 사회를 위협하고, 사회의 감염 대응 역량 약화는 다시 개인의 생활을 위험에 빠뜨린다”라며 “그러나 아직까지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이론적, 담론적 틀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김 교수는 “이것은 임상의학은 환자에만, 보건학은 인구에만 집중하며 각각 개인의 원인과 사회의 원인만 탐색해왔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근로자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건강이 곧 우리의 건강이고, 이러한 인식이 한 사회의 건강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작성자: 김재호 기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