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구 경력이 길지는 않습니다. 학사 졸업 후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잠깐 있다가 진짜 연구를 하고 싶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박사까지는 하지 않고 책상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인 직장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하는 일도 연구와 무관하지는 않아서, 연구 안 하는 사람 중에서는 손에 꼽힐 만큼 연구와 가까운 삶을 살기는 할 겁니다. 그럼에도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연구와 연구자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을 느끼곤 합니다. 브릭에 서평을 쓸 때도 감히 연구자에게 책을 추천해도 될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KIST 정종수 박사가 쓴 <나는 연구하고 실험하고 개발하는 과학자입니다>는 연구 경험과 방법론에 대한 책입니다. 지식에 대한 책은 많지만 방법에 대한 책은 거의 없는 과학출판계에 나타난 귀한 책입니다. 이제 연구를 하지 않는 저에게는 필요 없는 이야기지만, 과거의 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 현업 연구자 분들께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저자는 40년 가까운 연구 일생 동안 여러 논문과 특허를 내고,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세운 분이십니다. ‘연구하는 법’만으로 대학에서 외부 강의를 하기도 했고요. 연구에 관한 한 다양한 경험을 두루 겪은 분이라, 본인의 전공인 환경공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연구와 실험 전반에 쓰일 만한 요령을 책에 잘 담았습니다.
책은 가설 설정부터 결과 해석까지 이르는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하는 단계를 설명하고, 어떻게 각 단계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저자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합니다. 교과서 같은 책은 아닐까 걱정하며 읽었는데, 당연한 말인 듯하면서도 돌이켜보면 실전에서 생각하지 못한 지침이 많아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시약이 잘 작용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한다면, 예상되는 작용량보다 더 많은 양의 시약을 넣어 결과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시약을 필요 이상 쓰는 것은 낭비 같지만, 애매하게 처리했다가 결과도 애매하게 나와 실험을 두 번 하는 것이 진짜 낭비입니다. 한 번에 많은 시약을 넣어 반응이 나오는지 확인한 후, 다음번 실험에서 반응에 필요한 양을 측정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외에도 그래프를 예상하고 해석하는 법, 내 데이터와 다른 레퍼런스의 데이터를 비교하는 방법 등 전공 무관하게 연구자라면 유익할 조언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시약 낭비 하지 말라는 말에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과학을 공부하는 것과 연구하는 것은 다른 활동입니다. 그럼에도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미 존재하던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차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세세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제자리에서 돌고, 지도교수나 선배의 조언을 들으며 조금씩 나아갑니다. 이러니 실험 프로토콜이 비슷하면 차라리 비슷하지, 문제에 대처하는 각자의 방식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만 빼고 전부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 같은 보편 연구 요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해 매번 시행착오에 빠지고, 선배가 시키는 일이 쓸데없는 노가다처럼 느껴지는 연구 초년생이라면 이 책이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연구가 업인 분들이라면 저자의 조언에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겠고요.
책을 읽으며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은 물음에서 시작해 프로젝트를 키워나가며 느끼는 순수한 성취감은 연구로만 얻을 수 있으니까요. 책을 먼저 알았다고 연구를 계속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지닌 멘토를 만났다면 연구가 더 즐거웠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아직 연구를 하고 계시고, 지금의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고 싶으신 분이시라면, PCR 하나 돌리면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쉽게 쓰이고 빨리 읽히는 책이라, 그렇게 긴 DNA가 아니더라도 괜찮을 겁니다.
작성자: 이지아
* 본 서평은 "BRIC Bio통신원의 연재"에 올려진 내용을 "이 책 봤니?"에서도 소개하기 위해 동일한 내용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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