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진화발생생물학은 생명체의 발생과정과 기작을 진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진화적으로 보전되어있는 발생기작들을 밝히고 이를 통해 진화적 관계를 추론하는데에 의의를 두었다면, 최근에는 발생기작이 분화되는 과정과 그것이 진화에 미치는 영향에도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NGS와 CRISPR 기술의 등장으로, 기능적 실험이 불가능 했던 수많은 비 모델생명체들로까지 연구가 확대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에 이루어진 발생유전학 혁명 이후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논문은 다양한 파리 종에서 초기 발생기작이 분화하는 과정을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잘 알려진 초파리 배아발생의 경우 "앞 결정인자"라 불리는 bicoid가 몸의 앞-뒤 축 방향을 결정하는데, 이 유전자는 대부분의 파리들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른 파리들은 어떻게 몸의 축 방향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또 어떻게 새로운 "앞 결정인자"가 진화하는지를 묻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발생학 연구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나방파리, 모기, 깔따구, 각다귀 등을 랩으로 불러들였고, NIH와의 협업과 더불어 야외에서 파리를 채집하기도 하며 어렵게 실험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연구 결과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앞 결정인자" 셋을 찾아냈는데, 신기하게도 나방파리, 모기, 각다귀는 각각 전혀 다른 종류의 "앞 결정인자"를 갖고 있었고, 모두 alternative RNA processing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던 mRNA 외에 새로운 isoform을 만들어 냄으로써 위와 같은 기능을 얻었음을 발견했습니다. 파리들의 경우 초기 발생 네트워크가 매우 빠르고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앞 결정인자가" 진화하는 일반적인 패턴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는 유서 깊은 진화생물학 연구의 전통을 이어 현재 Darwinian Science라 불리는 클러스터 아래 3가지 박사학위 프로그램(Integrative Biology, Ecology and Evolution, Evolutionary Biology)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진화이론, 진화발생학, 진화유전학, 생태학, 고생물학, 계통발생학 등 진화 전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종 곤충, 영장류, 파충류, 조류 등 비 모델생명체를 활용한 연구가 대부분이며, 인접한 세계적 규모의 쉐드 수족관, 필즈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메사추세츠 주의 해양생물연구소와 긴밀한 협업이 가능한 곳입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발생유전학적 관점에서 거의 연구된 적이 없는 동물들을 기반으로 실험시스템을 만들고, 하나씩 장애물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참 재미있었습니다. 나방파리 알 인젝션 시스템을 처음 구축하는 과정에서 6개월 내내 실패를 거듭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동안 반복한 일이라곤 새로운 형태로 주조한 유리 주사바늘과 인젝션 프로토콜을 테스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치의 진전도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 성공하고 보니,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파리 종으로 까지 순탄히 시스템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버티는 것이 실험생물학자의 숙명이자 필수 덕목이라는 것. 둘째, 혼자서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IGTRCN이라는 곤충유전기술 단체에서 주관한 워크샵에 찾아가 비모델곤충을 연구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을 만났고, 여기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접근법을 완전히 바꾸어 시스템 구축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는 본래 과학을 전공하던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문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다 학부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진화의 신비에 매료되어 세 번째 전공으로 생물학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참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오히려 미국에서는 저의 특이한 배경을 좋아해주었고 감사하게도 대학원 오퍼를 여럿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기엔 연구경험으로 보나, 과학적 지식으로 보나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문적 글쓰기, 발표, 연구맥락파악 등에는 자신이 있었고, 결국 저만의 니쉬를 잘 찾아 재미있는 연구를 즐기며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유행하는 연구를 추구하지 않고 과학의 목표를 경쟁 그 자체라 여기지만 않는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이 충분히 묻고 답할 수 있는 중요하고 흥미진진한 질문들이 널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저처럼 길을 조금 돌아가며 고민하는 분들이 있지나 않을까 하여 제 경험을 공유해봅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얼마 전부터 로스쿨에 진학한 아내를 따라 캘리포니아주 UC Irvine에서 포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박사과정 시절 연구가 alternative RNA processing이 새로운 유전자 기능 진화에 기여함을 보여주었다면, 현재 연구는 이미 alternative RNA processing의 중요성이 잘 밝혀진 면역세포를 시스템으로 삼아 유전체학/생화학적 접근을 통해 그 분자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방법론적 전문성을 획득하여 향후 alternative RNA processing이 진화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비모델생명체들을 통해 탐구하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박사 기간 동안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주신 존경하는 지도교수님과, 갑작스런 진로 변경에 대한 혼란 속에 큰 도움을 주신 장수철 교수님, 최광민 교수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6년에 걸친 장거리 연애를 극복하고 함께 살게 된 사랑하는 아내와, 언제나 제 결정에 힘을 실어주신 부모님께도 항상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