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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미국 생활] EP 6. 실패에 대한 관용을
Bio통신원(이승원)
아마도 한국 스포츠 스타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세웠던 사람은 누구였겠느냐고 질문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될 사람 중 하나가 김연아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김연아 선수의 업적은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오히려 저보다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를 돌이켜본다면, "과연 김연아 선수가 우승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과연 몇 점이 나올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더 화제였었던 적도 있었을 만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시 피겨스케이팅의 1인자였었죠. 그런 시기에 김연아와 같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경쟁하던 선수 중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은 아사다 마오겠네요.
최근 그 시기에 경쟁했던 선수들 중 한 명인 조아니 로셰트(Joannie Rochette)를 뉴스에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으로 올림픽에서 메달도 획득했던 대단한 선수죠. 흥미로운 것은 미국 뉴스에서 그녀를 Former figure skater and Canadian physician now, 즉 이제 의사가 되었다고 소개하더군요. 현재 로세트는 코로나바이러스 판데믹 상황에 퀘벡에 위치한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보통 예체능 영역에서 두각을 이룬 사람들이 본인의 영역에서 진로를 이어가는 것은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의사와 같은 학계 혹은 학계와 연결된 전문직으로 전향하는 것은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한국의 오래된 E-sports 팬들이라면 익숙한 이주영 전 선수가 치과의사로 의료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에 화제가 되었을 정도니까요.
사실 이렇게 은퇴 후 진로를 크게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불가능한 건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제 경험에서만 보더라도 미국 혹은 서구권에서는 한국보다 찾아보기 쉬운 것으로 보입니다. 유명 프로 운동 출신 선수가 의사가 되어 응급실을 지킨다던가,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라던가와 같은 이야기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심지어 제 주변에 음악을 하던 두 친구는 석사과정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은 의사, 다른 한 명은 CPA를 통과한 회계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뒤늦게 완전히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는 것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가 아닌 정도로, 학계 내에서 분야를 바꾸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박사과정 중 의대에서 세미나를 듣다 보면 연사의 화려한 이력에 놀라는 것이 일상다반사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하다가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biomedical engineering을 공부하기 위해 의사가 된 사람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미국은 의사가 되기 위한 의과대학이 대학원 과정입니다만 편의상 한국 명칭인 의대로 명칭 하겠습니다) 환자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연구만 해왔다는 교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물론, 이들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과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 덕분에 이런 진로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림 1]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로셰트 (맨 위) [1], 그리고 의사가 된 NFL 선수 출신 마이런 롤(왼쪽 아래)과 MLB 선수 출신 마크 해밀턴 (오른쪽 아래) [2]. 특히 로셰트는 경기 이틀 전에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이야기는 꽤나 유명하다고 한다.
제가 아무래도 학계에 있다 보니, 학계에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네요. 한국에서 교수가 되는 분들의 이력을 찾아보면 거의 대다수가 학부-대학원-포닥 트레이닝 과정이 같은 분야 그리고 같은 주제를 경험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합니다. 특히 학사 후 학위(석사/박사)를 한국에서 취득하신 분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같은 영역에서 트레이닝을 받으시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학부로 생물학을 전공한 분들은 생물학과 혹은 그와 상당히 밀접한 학과에서 대학원을 보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문화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앞선 글들에서 꾸준히 이야기했지만, 저는 한국의 방식을 평가하거나 다른 방식과 비교하여 우열을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한 분야에 집중해서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은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가진 상황에서 전문성을 기르는데 분명히 효과적인 전략이니까요. 다만, 이런 문화로 인해 "제한된 시간과 자원"에 대한 조급함이 강조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주변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은 충격적일 수도 있는--어찌 보면 공공연한 비밀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반례를 하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많은 경우 고용인(교수이건 일반기업이건)은 직업윤리 의식을 가지고 본인의 일과를 수행합니다만, "한국인이니까" 대학원생 혹은 박사 후 연구과정을 뽑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동양권에서 교육을 받고 영어에 익숙하지 않지만, 미국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만 뽑고 싶어 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주요 타겟은 한국인과 일본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휴가 따윈 없이 열심히 일하고, 교수 혹은 상사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교수가 원하는 데이터를 어떡하든 만들어온다라고 하는 선입견을 품은 사람도 있죠. 특히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는 "제한된 시간과 자원"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문화, 다시 말해 최대한 빨리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혹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의 바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빨리"라는 말은 짧은 시간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빨리라는 단어는 상대성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패하지 않아야 하죠. 그리고 만약 해결하기 위하는 과정이 제한되어 있다면, 실패가 가지는 부정적 가치는 더더욱 커집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제한된 시간과 자원"이라는 상황과 파생된 문화의 기준으로 볼 때 실패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개인에게 상대적으로 무겁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성공에 대한 기준은 엄격해지고 실패라고 평가내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지는 아이러니도 발생할 수도 있겠죠.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 동안 많은 일들 경험하면서 여러 가지로 놀라긴 했습니다만, 지식습득과 연구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꽤나 놀라운 점이긴 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 외의 것들에서 다른 점들이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제일 다른 점은 '지도교수 변경'에 대한 인식입니다. 학교, 학과마다 그리고 교수마다 다르겠지만,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페널티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아예 없다는 건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물론, 학생 개인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중도 탈락시키는 경우에야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연구주제에 관련하여 혹은 피치 못할 사정이나 개인적인 희망에 의해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문제시될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도 과정 중 벌어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저 역시 지도교수님을 자의 혹은 타의로 여러 번 바꾸었기 때문이죠. 개인사를 전부 풀어놓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그래도 한마디만 짧게 하자면, 제 지도교수님 James Sham과 저를 항상 도와주셨던 Steven An 교수님께 감사드린다고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림2] 졸업식에 지도교수님 James Sham과 같이 찍은 사진. 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배울 점이 너무 많은 분이다.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다라고 누구나 쉽게 말합니다. 이제는 보편적 상식이 되었죠. 실패는 당연히 두렵습니다. Do not afraid of failure라는 말이 한국이나 미국에서 참 많이 사용되는데, 이건 반대로 이야기하면 세상 어디에서나 실패에 대해서 부정적 가치를 투영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동네 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왜 미국에 왔냐?"이고, 제가 어떤 대답을 하든지 종국에 가서는 "The era of American dream is over and never again."이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American dream이라는 말에 미국인들이 코웃음을 칠 정도로 과거와 비교해 정말 많이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적 관점에서 보는 실패는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점을 내포하는 미국인들의 습관적인 말이 있습니다.
"It is what it is."
직역하면 "그건 그거다" 정도 되려나요. 그런데 보통 저 말이 사용되는 상황을 고려해서 의역해보자면 "그렇게 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시 말하자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상호 간의 인정 아닐까 합니다. 즉, 누군가에게 실패 혹은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닌 상황에 따른 관용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미국과 한국은 정말 아주 다릅니다. 한국에 깔린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이용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문화는 기본적인 역사와 사회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해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성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실패에 대한 엄격함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어떤 실패는 생존의 실패와 직결하기 때문이었죠. 미국은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성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을 허락할 여유가 있었겠죠. 물론 역사적으로 미국 역시 수많은 비극과 부조리를 겪어왔었고 그것들이 이제 와서 하나둘씩 터져 나오는 것을 목격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에 대한 기준과 실패에 대한 시선이 한국의 그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성공한 사람에게 사회적 권위와 보상을 허락하는 소위 엘리트주의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등은 결과와 과정에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1등을 다룰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해지고, 다양한 사람과 사회들로부터 채워지길 희망합니다. 그런 희망은 성공의 기준에 다다르지 못한 것을 실패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박사과정 혹은 연구자로서 학교와 관련된 조금 다른 미국 생활의 사소한 팁]
1. 학위 과정에서 지도교수를 뜻하는 영어단어는 일반적으로 academic advisor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합니다. Research advisor와 구분되어 칭하는 학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mentor라는 말이나 advisor를 사용합니다.
2. 랩 로테이션(lab rotation)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학교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한 곳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물론, 다양한 곳에서 여러 일을 해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상황에 따라 면담과 요정에 의해 변동이 가능한 때도 있습니다.
3. 학과 사무 스태프(student administrator)들과 친해지면 좋습니다. 특히 졸업과 관련해서 의무사항들을 놓치기 쉬우니 학기 초와 학기 말에 본인이 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4. 학위 과정이건 연구자과정이건 비자와 관련한 일들은 international office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관련된 일들은 무조건 조속히 예약하시고 방문하셔서 해결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출처:
[1] https://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340279
[2] https://www.sedaily.com/NewsVIew/1Z1F65ZKOY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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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생활 속에 녹아드는 삶을 바라는 소시민이자 생명과학 노동자. 현재 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Postdoctoral researcher로 생체시계(biological clock) 분야를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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