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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 타미플루 탄생시킨 ‘꿈의 현미경’, 코로나 치료제 개발에도 참여한다

입력
2020.05.20 16:00
수정
2020.05.22 10: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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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짓는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의 모든 것>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조원대 사업비가 투입되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입지로 충북 청주를 선정했다. 방사광가속기 조감도. 충북도 제공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조원대 사업비가 투입되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입지로 충북 청주를 선정했다. 방사광가속기 조감도. 충북도 제공

지난 8일 정부는 1조원대 사업비가 투입되는 ‘방사광가속기’를 충북 청주에 추가 건설한다고 최종 결정했다. 워낙 파급효과가 큰 프로젝트라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이 뜨거웠고 청주와 나주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 청주로 낙점됐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기만 한 방사광가속기가 대체 뭐길래 정부는 이렇게 큰돈을 쏟아 붓고, 지자체들은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펼쳤던 것일까.

빛의 공장, 빛의 백화점

방사광가속기란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킨 뒤, 자석으로 휘게 하여 방사광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말 그대로 중심에서 바큇살(나선) 모양으로 나가는 형태다.

방사광은 기본적으로 빛이다. 방사광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외에 적외선, 자외선, X-선을 모두 포함한다. 과학자들은 각자 연구 목적에 따라 원하는 빛의 파장대가 다른데, 방사광가속기가 그러한 다양한 빛을 제공한다. 방사광가속기는 빛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빛의 공장’이며, 직접 실험하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빛을 골라 사용할 수 있는 ‘빛의 백화점’이자 빛을 통해 정밀하게 실험할 수 있는 ‘거대 현미경’인 셈이다. 포항가속기연구소에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있는데 이러한 현미경 35대가 동시 가동 중이다.

3세대와 4세대, 선형과 원형

1960년대 들어 방사광은 기존의 X-선 발생 장치보다 훨씬 강력한 양질의 빛을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광원이 됐다. 이러한 방사광을 원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1970년대부터 방사광가속기 건설이 시작됐다. 2극 자석만으로 방사광을 만들었던 방사광가속기를 2세대라고 부른다. 이후 영구 자석을 이용한 삽입 장치를 방사광가속기에 도입하면서 수천 배 밝은 광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980년 후반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50여대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건설됐다. 우리나라는 1, 2세대를 건너뛰고 1988~94년에 걸쳐 둘레 280m, 빔 에너지 20억 전자볼트(eV)급인 PLS(Pohang Light Source)라는 3세대 가속기를 세계 5번째로 건설했다. 이후 2009년부터 3년간 성능 향상 작업이 이뤄져, 지금 가동 중인 장치는 30억 전자볼트급의 PLS-II로 불린다.

2011년부터 건설이 시작된 길이 1.1㎞, 100억 전자볼트급의 직선형 4세대 방사광가속기(PAL-XFEL)는 사실 방사광이 아니라 X-선 레이저를 만드는 장치다. 이 장치는 광범위한 파장 대역의 방사광 대신, 딱 하나의 파장만을 생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빛은 PLS-II에서 나오는 3세대 방사광보다 대략 1억배 밝다. 태양보다 100경배 밝다는 설명은 4세대 ‘선형가속기’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빛은 레이저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결이 맞는 빛이다.

빛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빛 알갱이 하나인 광자는 하나의 물결처럼 지나간다. 광자가 두 개면 두 개의 물결이 지나가는데 일반적으로 두 물결은 서로 다르게 흔들린다. 하지만 특정 조건을 잘 맞춘다면 마치 국군의 날 행진하는 군인들이 손발 동작과 앞뒤 간격을 맞추는 것처럼 빛 알갱이들이 모두 일정한 위상을 가지게 만들 수 있으며 이런 빛을 레이저라고 부른다. 마트에서 보는 바코드 스캐너처럼 레이저를 이용하는 장치들은 우리 주위에 흔하다.

하지만 이런 레이저의 특성을 가진 X-선은 4세대 선형가속기로만 만들 수 있다. 이 장치가 3세대 다음에 건설되었기에 자연스럽게 4세대로 이름이 지어졌다. 국제적으로 무심하게 지어진 이 이름 때문에 지금 4세대 원형과 4세대 선형이라는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2016년 세계에서 3번째로 완성된 PAL-XFEL은 현재, 시간분해능이 100조분의 1초에 이르는 등 핵심 성능에서 세계 5대뿐인 X-선 레이저 중에서 단연 최고다. 한 예로 이렇게 찰나의 순간에만 발생하는 빛으로 식물의 광합성 과정을 연구 중인데, 이 과정을 이해하면 인공 식물이 태양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바꾸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산소를 만들게 되어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동시 해결할 수도 있다.

경북 포항시에 있는 3세대(오른쪽 원 모양), 4세대(가운데 막대 모양) 방사광가속기. 포스텍 제공
경북 포항시에 있는 3세대(오른쪽 원 모양), 4세대(가운데 막대 모양) 방사광가속기. 포스텍 제공

무한한 용도

현재 6,000여명의 국내 과학자는 포항 PLS-II를 통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연간 500여편의 수준 높은 논문을 발표한다. 학문적 연구 외에 반도체 2차전지 등 국내 핵심산업은 물론 생명과학, 의학, 화장품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직접적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소자에 불량률이 높아 원인을 찾고 싶어도 현미경이나 눈만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다. 이럴 때는 X-선처럼 투과하는 성질의 빛이면서, 반도체 내부 구조보다 더 짧은 파장을 이용해야지만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방사광은 유기반도체 소자 특성 분석으로 휘거나 접는 디스플레이 개발,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 고분자 특성 연구를 통해 인공근육과 관절개발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 또한 미술계에서는 고흐, 렘브란트, 피카소 등 거장들의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작품을 찾아내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다.

물론 꼭 방사광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실험실에서도 이러한 비파괴 분석을 위한 X-선 장비가 있다. 하지만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면 일반 실험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비를 이용하여 3개월에 걸려 관측해낸 결과를 3일 만에 얻어낼 수 있다. 또 결과가 훨씬 정확하며, 일반 실험실에서 보지 못했던 구조를 분석하거나 해상도가 낮아 깨끗하게 볼 수 없었던 모습까지도 얻어낼 수 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 치료제로 사용된 타미플루는 미국 스탠퍼드 가속기센터(SLAC)의 방사광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방사광가속기가 없던 과거의 신약 개발의 과정을 보면, 신약후보 물질을 합성한 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오랜 기간 임상 테스트를 거쳐 약으로 만들어 내는 기법을 사용했다. 비유하자면 자물쇠의 구조도 모르고 가상의 열쇠를 만든 뒤 자물쇠에 끼워 보는 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방사광가속기로 질병의 단백질 구조와 특성을 분석해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만들 듯, 질병 단백질을 무력화시키는 신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COVID-19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는 현재 최우선으로 지원되고 있다. 포항 역시 국내 진단시약 제조업체들의 요구에 적극 대응하고 있으며, COVID-19 치료제를 연구하는 전문기관과의 협력 체계도 마련하였다.

새 방사광가속기는 청주 아닌 모두의 자산

우리나라의 산업 규모가 커지고 연구자들의 연구 역량이 발전함에 따라 포항 PLS-II만으로는 수요를 다 충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PLS-II가 제공하지 못하는 더 짧은 X-선 파장 영역에서 수요까지 포함하는 새 방사광가속기가 한 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작년 여름 일본으로부터 소재 부품 장비 관련 위협이 대두되자 새로운 방사광가속기가 더욱 필요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청주에 다목적 방사광가속기가 지어지게 됐다. 4세대 원형의 새 가속기는 빔 에너지가 40억 전자볼트급이며, 전자의 원형 궤도는 약 800m에 이른다. 포항의 PLS-II보다 100배 이상 더 밝고 가용 X-선 영역이 훨씬 넓다.

지난 32년간 가속기 건설과 관련된 일에 몸 담았던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새 방사광가속기 건설 역량은 충분하다고 보지만 몇 가지 걱정되는 점은 있다. 먼저 선정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간의 유치 경쟁이 과열된 면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새 방사광가속기는 유치한 지역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산이자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하는 일은 반드시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 언급하자면 지금까지 구축된 대형 연구 설비들과는 달리, 이미 가동 중인 설비에 기능이 훨씬 더 좋은 설비가 추가되는 경우이다. 앞으로 두 설비를 모두 잘 활용하려면 기존의 PLS-II와 새 방사광가속기가 상호보완적이면서도 우호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체제가 처음부터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

고인수 소장은 미국 UCLA에서 물리학 박사를 취득한 국내 최고의 가속기 전문가다. 미국 로렌츠 버클리 방문과학자,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한국 최초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 건설에 참여하였으며,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단장으로서 성공적 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이끌어낸 바 있다.

※Deep&Wide는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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