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가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회피하는 원리를 밝혀냈다. 이번 연구로 기존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 세인트주드 어린이연구병원 연구진은 암세포가 조절 T세포만을 활성화해 면역세포의 공격을 막는다는 것을 밝힌 연구논문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 2월 24일자에 게재했다. 임선아 미국 세인트주드 어린이연구병원 면역학과 박사가 1저자로 참여했다.

조절 T세포는 면역세포 중 하나로 불필요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세포를 스스로 공격하는 자가면역을 막아주는 세포다. 하지만 암이 자라나는 미세 환경에서는 면역 억제를 유도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SREBPs’ 단백질이 조절 T세포만을 활성화해 자가면역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종양세포를 공격하지 않도록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SREBPs는 우리 몸속 지질 성분의 양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종양세포를 포함해 모든 세포막은 지질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세포가 분열하고 형성되는 과정에서 SREBPs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진은 SREBPs가 암세포의 성장과 분열에 도움을 주고, 조절 T세포의 표면에서 ‘PD-1’ 단백질 양을 늘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PD-1은 T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암세포 표면에 있는 ‘PD-L1’ 단백질과 결합하면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종양의 면역 회피 반응이라고 부른다. 임 박사는 “암세포가 면역 시스템은 유지하면서도 조절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대사 과정만 억제하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연구진은 종양세포에서 SREBPs의 활성을 막는다면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쥐 모델에서 이 단백질을 차단하자 암세포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에 참여한 홍보 치 면역학과 박사는 “현재 항PD-1 치료법은 전체 암환자의 약 20%에서만 효과를 나타낸다”며 “우리 실험은 효과가 적거나 없는 환자들에게도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