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은 수십년 동안 완두콩을 키우고 교배하며 유전학의 대원칙인 멘델 법칙을 정립했다. 중세시대 영국에서 흑사병이 돌던 시기, 휴교령 기간 홀로 연구했던 뉴턴도 단독으로 연구한 결과로 광학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이처럼 몇백 년 전에는 한 명의 과학자가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더 이상 혼자 할 수 없고, 그 결과 논문 한 편에 저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평균 공동연구자는 2명이었는데, 이것이 2000년대에 이르면서 평균 7명으로 늘었다. 논문에 등재되는 최대 저자 수도 1975년 이전에는 38명이었던 데 비해, 2000년 이후에는 저자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논문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런 경향이 발생하는 이유는 연구 주제가 세분화되고 한 사람의 과학자가 담당할 수 있는 분야가 좁아지는 데 반해, 한 편의 논문에 요구되는 연구 양이 늘어나면서 여러명이 함께 해야 논문 한 편을 완성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명이 일했다고 해서, 저자들이 모두 똑같은 만큼 이바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저자들의 기여도를 알릴 방법이 필요하게 됐다. 분과마다 규칙이 다르지만, 생명과학의 경우에는 연구 및 실험을 주도한 사람이 저자 중 첫 번째 위치에 자리하게 되고, 그 저자를 지도하고 연구비를 수주한 교신저자는 저자 순서 맨 마지막에 배치된다. 연구자의 기여도를 논문에 저자를 나열하는 방식에 부여하는 것이다 (지난 이로운넷 글 “일저자? 공저자? 과학논문 저자 정하기” 참조). 하지만, 과학이 점점 복잡해지고, 저자 수가 많아지면서 연구를 주도한 사람이 여러 명이 되는 경우가 흔해졌다. 특히 생명과학 계열에서는 여러 명에게 제1저자 역할이 주어지는 제1공동저자를(co-first author)를 둔 논문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그 경향이 과열되어 제2공동저자까지 등장하는 경우도 생겼다. 과학자들은 왜 이렇게 순서에 집착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출간되는 논문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연구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연구자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연구자를 평가하고 줄 세우는 방법이 필요해졌다. 이에 논문이 출간된 학술지의 인용지수, 그리고 논문상 저자의 위치 등을 수치화하여 연구자를 평가하는 방법이 생겨났다. 제1저자나 교신저자에게 가중치가 발생하는 때도 많다. 이 평가 방식으로 인해 연구 내용보다는 논문 수와 논문을 출간한 학술지, 그리고 논문 내 저자 위치가 더욱 중요해지며 주객전도가 됐다. 샌프란시스코 연구평가 선언(DORA)과 같이 연구 내용을 기준으로 연구자를 평가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여전히 논문 인용지수 등으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것이 주된 방식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고자, 연구자들은 논문 안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위치에 있으려 하고, 이에 불필요한 분쟁도 종종 발생하게 됐다.

CReDit 프로젝트에서 제공하는 기여도 뱃지./이미지=Bastián González-Bustamante 박사 페이지
CReDit 프로젝트에서 제공하는 기여도 뱃지./이미지=Bastián González-Bustamante 박사 페이지

하나의 논문을 내기 위해 여러명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차라리 논문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 역할을 기록할 수 있으면 어떨까? 여러 가지 실험이 논문에 실리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각자 진행한 실험이 따로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실험 방법을 수립하거나 실험 결과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자 노력했을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며, 연구에 필요한 기타 자원을 제공한 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CReDit 프로젝트'이다. 논문에서 해당 저자의 기여도를 따로 언급하는 방식으로, 논문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총 14가지로 분류했다. 그중에는 직접 실험하는 연구도 있지만, 개념화, 논문 작성(초고 작성과 검토자도 구분한다), 데이터 분석, 방법론 개발, 데이터 시각화, 연구비 수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논문의 어느 부분을 누가 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연구 프로젝트의 대형화, 그리고 협동 연구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이로운넷 글 “'협력'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참조). 학문 분과를 넘나드는 다학제간 협동 연구를 통해 인류는 자연의 신비를 풀어내고 있다. 아니, 다학제간 협동 연구가 아니면 연구가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1저자와 교신 저자에게만 인센티브가 많이 돌아가는 연구 평가 방식으로는 협동 연구를 촉진할 수 없다. 저자 수가 적을수록 개개인이 논문 한 편에서 얻어낼 수 있는 ‘점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역할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저자의 위치만으로는 누락되는 정보가 너무 많다. 논문에서의 역할을 적었을지라도, 그것이 향후 연구자의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연구를 주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 논문에서 수행한 역할이 해당 연구자의 연구 주제 정립 및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연구자를 전인적으로 평가하는 데 더 핵심적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자에게 논문은 몇 년간 모든 노력을 쏟아낸 연구를 모든 이들에게 공개하는 결과물이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데 쓰이는 간단한 서류가 아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으로 고등학생들에게도 논문이 하나의 화폐 단위처럼 여겨지는 요즘이지만, 논문을 준비하고 쓰는 것의 본질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많은 저자 중 제일 앞사람, 혹은 제일 뒷사람만이 아니라 모두 그 나름의 노력이 빛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많이 이용되어 연구자의 연구가 평가받는 시기가 되길 바란다.

※참고

Brand et al. (2015) Beyond authorship: attribution, contribution, collaboration, and credit. Learned Publishing 28:151-155

Allen et al. (2014) Nature Publishing: Credit where credit is due. 508: 312-313

Science WATCH Newsletter (Christopher King). Multiauthor Papers: Onward and Upward

http://archive.sciencewatch.com/newsletter/2012/201207/multiauthor_papers/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