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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활용한 신약개발 속도 예상보다 느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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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활용한 신약개발 속도 예상보다 느린 이유는

2022.09.26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019년 홍콩 바이오기업 인실리코메디신과 캐나다 토론토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인공지능(AI) 플랫폼으로 섬유증 치료제 후보물질을 46일만에 도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명공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당시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섬유증 관련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분자를 21일 만에 3만 개 찾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 7월 인실리코메디신은 섬유증 치료제 최종 후보물질(INS018_055)을 임상 1상 지원자에게 투여했다고 발표했다. 후보물질 발굴 3년 만에 임상시험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인실리코메디신 사례는 신약 개발에 AI를 활용하면 빠르게 후보물질을 도출해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물질이 신약이 될 수 있는지 찾아내는 '스크리닝'을 빠르게 할 수 있지만 실제 신약 개발에는 임상 절차 등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펑 런 인실리코메디신 공동 최고경영자(CEO) 겸 최고과학책임자(CSO)는 "AI가 발견하고 설계해 임상 단계에 진입한 최초의 약물"이라며 "섬유증 환자가 가능한 한 빨리 치료제의 혜택을 받도록 글로벌 임상 개발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실리코 메디슨의 AI 신약개발 과정. 출처=인실리코 메디슨 홈페이지
인실리코 메디슨의 AI 신약개발 과정. 출처 인실리코 메디슨 홈페이지

 

● AI 신약개발 플랫폼, 약물 스크리닝 과정에 한정돼 있어

 

AI 신약개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급격히 성장했다. 순식간에 확산되는 팬데믹을 억제하려면 새로운 백신과 치료제 개발 기간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데 전세계 과학계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AI 플랫폼으로 약물을 개발해 승인받은 사례는 없다. 신약개발 AI 플랫폼이 대부분 약물 스크리닝 과정에 한정됐기 떄문이다. 약물 스크리닝은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과정 중 하나로 신약개발 전체 과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아니다. 기존에도 많은 양의 화합물을 한 번에 시험할 수 있는 고속 대용량 스크리닝(HTS) 기법이 정립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운영하는 '의약품안전나라'에 따르면 의약품을 개발하는 과정은 기초·탐색 연구로 개발후보물질 선정(5년), 전임상시험(1.5년), 임상시험(6년), 허가 검토 및 승인(2년)의 순서로 이뤄진다. 개발후보 물질 선정은 1만여 개의 약물 후보물질 중 효능이 있는 물질을 추려내는 과정으로 AI 플랫폼이 주로 적용되는 약물 스크리닝은 개발후보물질 선정 과정 중 일부에 해당한다.

 

전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은 일반적으로 전임상시험·임상시험이지만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AI 플랫폼은 아직 이론 수준에 머무는 상태다. 임상시험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환자 선별용 AI 알고리즘 등이 개발 중이지만 아직 현실화하기에는 요원한 수준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외의 AI신약개발자문위원회로 활동 중인 황대희 서울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신약개발 과정 안에는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대체하거나 시장 조사에도 활용하는 등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다"며 "다만 AI를 적용하려면 약효, 독성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 확보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 AI 플랫폼은 신약개발 '대체자'가 아닌 '조력자'

 

다국적제약업체 머크앤드컴퍼니(MSD)와 생명공학기업 리지백 바이오테라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몰누피라비르. 연합뉴스 제공
다국적제약업체 머크앤드컴퍼니(MSD)와 생명공학기업 리지백 바이오테라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몰누피라비르. 연합뉴스 제공

아직 AI 플랫폼이 약물 스크리닝 과정에만 한정돼 있더라도 신약개발에 있어 AI 활용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약물 스크리닝은 질병의 표적 단백질에 작용하는 화합물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기존의 고속 대용량 스크리닝 기법을 활용하려면 화합물과 병원체 단백질의 실물을 준비할 수 있어야 실험이 가능했다. AI를 활용하면 실험적 준비가 돼 있지 않아도 가상으로 화합물과 단백질 구조를 바탕으로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아스트로제네카, 얀센, 머크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앞다퉈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국내에서도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이 AI 기반 플랫폼 기업과 협약을 맺고 신약개발에 나섰다.

 

실제 AI 신약개발 전문가들은 AI로 기존의 신약개발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AI의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신약개발 AI 플랫폼을 운영하는 신테카바이오의 신지윤 책임연구원은 "AI는 인간이 가능한 규모 이상의 계산을 빠르게 해낼 수 있어 신약개발 중 약물 스크리닝처럼 '양으로 승부해야 하는' 과정에 최적화된 기술"이라며 "같은 시간 내 더 많은 화합물을 검증하면 후보물질을 도출할 확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반면 임상시험의 경우 인간에게 직접 후보물질을 투여해 약효를 확인해야 하는 만큼 AI가 대체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 다만 AI가 연구자가 하는 실험의 효율을 극대화하도록 도울 수는 있다. 최근에는 임상 시뮬레이션(in silico clinical trials) 등 임상시험용 AI 플랫폼도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영국 리즈대 연구팀은 컴퓨터 임상 시뮬레이션이 뇌동맥류 치료용 의료기기의 임상평가를 재현할 수 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신 책임연구원은 "전반적인 신약개발 과정을 모두 AI로 대체하는 것보다는 AI가 유리한 과정은 AI가, 사람이 유리한 과정은 사람이 수행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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